외교는 계산이다
1592년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에서 명의 참전은 분명 도움이 됐다. 그러나 큰 도움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1593년 1월에 있었던 평양성 전투 정도다.
조선은 명의 참전을 재조지은(再造之恩)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명이 망한 지 60년(一周甲)이 되는 1704년 충청도 화양동에 만동묘를 설립한다. 파병을 결정한 신종(만력제)과 그의 손자이자 명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숭정제)을 기리는 사당이다. 또한 같은 해 창덕궁 북쪽에 대보단(大報壇)이라는 제단을 쌓고 앞의 두 황제와 함께 태조(홍무제)에게까지 제사를 지냈다. 제사는 1894년까지 200년 가까이 계속됐다.
도움을 받았다면 고마움을 잊어선 안 된다. 그러나 명의 참전 목적은 자국방위였다. 왜를 막아주는 조선이 망할 경우의 순망치한(脣亡齒寒)을 예방하고 자국 영토인 요동이 전화에 휩싸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한반도를 전장으로 만든 철저한 계산의 결과였다. 도움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수탈은 극심했다. ‘왜는 얼레빗 명은 참빗’이라 했다. 그래도 기억은 해야겠지만, 정묘년과 병자년의 두 호란을 치르고 수많은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몰면서까지 지켜야 할 존명의리(尊明義理)일 수는 없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참전은 큰 도움이 됐다. UN군 참전을 주도한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공산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참전도 자국의 이익을 고려한 철저히 계산된 결정이었다. 자본주의 진영의 맹주였던 미국은 동유럽과 동북아를 노리고 있던 소련의 공산주의에 한반도를 내줄 수 없었다. 그래도 절대 잊어선 안 되고, 기회가 될 때마다 갚아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국가와 국민과 자국의 기업들을 위기로 내몰면서까지 할 일은 결코 아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외교 전술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반중(反中) 쿼드(Quad)에선 미국·일본 정상의 손을 잡고,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선 러시아·중국 정상의 손을 잡았다. 냉전시대 제3세계 국가들을 대변하며 비동맹 외교노선을 견지해 왔던 인도는 최근 글로벌 강대국들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틈바구니 속에서는 특정 국가를 고르지 않고 ‘다자동맹’ 내지는 ‘전부 다 동맹’이라는 실용주의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외교는 의리가 아니다. 외교는 철저한 계산이다. 그런데 우리 외교는 의리를 고집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게다가 일관성도 없다.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국력을 쏟아부어 어렵게 쌓아놓은 것들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제로가 되고 심지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국가는 흔들리고 국민들은 불안하고 기업들은 망해간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수적 도움에 대해, 강대하지도 않은 우리는 기어이 의리를 지키겠다고 내 국가, 내 국민, 내 기업들을 볼모로 내놓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과정에 우리가 자꾸 소환되는 이유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위치를 차지한 자가 그 이점을 잘 활용하면 주변을 주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주변에 한없이 끌려다녀야 한다. 인도는 14억 인구 대국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인 나는 외교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함에 있어 철저하게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 우리 기업들의 이익만 계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