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땀 한 방울도 헛되지 않도록
국민의 세금으로 편성한 대한민국의 1년 예산이 700조 원에 달한다. 1월부터 5월까지, 예산안을 편성하는 기관인 기획재정부와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인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은 협의를 진행하고, 5월 말 각 기관들은 예산요구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한다. 6월부터 8월까지, 기획재정부는 각 기관들이 제출한 예산요구 내역을 정리한 예산안 초안을 가지고 정부 내부 협의, 정치권과의 협의 등을 진행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정부 예산안을 확정한다. 9월 초 정부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12월까지 예산안을 심의하여 확정한다.
대한민국헌법이 정한 이런 면밀한 설계와 체계에도 불구하고 예산 부조리는 해결되지도 근절되지도 않는다. 공공의 모든 부조리는 어렵고 복잡한 법과 절차, 그리고 화사한 정부의 홍보 뒤에 은폐, 엄폐되어 있다. 예산 부조리의 근원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주체 그 누구도 내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나에게 득이 되는가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나의 당선, 임명, 승진에 도움이 되는가만 따진다. 또한 예산 편성과 집행의 성과가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질적으로 평가되지 않고 양적으로만 평가된다.
그래서 돈을 많이 따오는 자가 승자고 못 따오는 자는 패자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업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산을 확보하면 승자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확보하지 않으면 패자다. 내가 안 따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가져갈 것인데, 그 다른 누군가의 쓸 데가 나의 쓸 데보다 더 중요하다는 보장도 없다. 많이 따오는 자가 당선되고 임명되고 승진한다. 얼마나 필요한 사업인지, 얼마나 적절한 금액인지는 한참 뒤의 문제다.
예산 편성은 '누가 원하느냐'와 '얼마나 필요하냐'의 싸움의 결과인데, 대부분 누가 원하느냐가 이긴다고 보면 된다. '누가 원하느냐'가 결정되고 나면 '얼마나 필요하냐'의 논리는 거기에 맞춰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정말 필요하다면 '얼마나'의 논리를 보강하기보다는 '누구'를 찾아 설득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 그리고 그 '누구'는 더 높을수록, 더 강할수록 좋다. 국민에게 절실한 예산이 '누구'의 요구에 밀려 날아가고, '누구'의 요구로 반영된 예산이 더 높고 강한 '누구'의 요구에 밀려 또 날아간다.
또한 돈을 다 써버리는 자는 승자고 남기는 자는 패자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업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산을 다 써버리면 승자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아껴서 남기면 패자다. 불용액은 절약이 아닌 사업 실패, 예산요구 실패의 증거가 되어 페널티로 돌아온다. 다음 해가 되면 사업이 사라지거나 축소된다. 그러니 다 써버릴 밖에. 어차피 내가 남긴 돈이, 내가 쓰려던 데보다 더 필요한 데에 쓰인다는 보장도 없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땀 흘려 번 돈은 국가에 납부되는 순간부터 돈이 아닌 숫자가 된다. 그리고 그 숫자는 권력자들과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자들에 의해 그저 통계로 해석된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는 스탈린의 말처럼. 또한 그 통계는 편안한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은 권력자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면서 즐기는, 여전히 잘 살아서 작동하는 권력의 박동소리일 뿐이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세금이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겠다. 첫째, 예산을 얼마나 잘 편성했는지, 꼭 필요한 곳에 배정했는지를 평가하여 상벌을 정하겠다. 둘째, 절약해서 남긴 예산을 정확하게 평가해서 인센티브를 주고 집행의 자율권을 부여하겠다. 셋째, 이와 같은 효율적 편성과 집행으로 확보한 재원을 국가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 국민 행복을 위한 복지에 활용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