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판사, 정치인
의사는 수술을 할 때 인체를 물체로 여겨야 한다.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잊어선 안 된다. 인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과 소중한 생명으로 대하는 것, 그 전혀 상반되는 성질이 충돌하는 딜레마의 외줄타기에 가까스로 성공했을 때, 비로소 의사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판결을 할 때 법의 엄정함을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인간애를 잊어선 안 된다. 경직된 법의 적용만을 고집해서도 안 되고, 양형이 불가능한 여러 정상들의 참작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드러난 것들이 진실인지 감춰진 것들은 없는지 자신만의 눈으로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정답도 없고 명확한 기준도 없는 그 칠흑 같은 딜레마의 심해를 헤매다 기어이 작은 빛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판사는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정치인도 수많은 딜레마들 안에 있다. 정치가 곧 딜레마이고, 딜레마는 정치인의 숙명이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절대적 도덕법칙을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거짓말로 국가와 국민을 위기에서 건져내야 할 수도 있다(임마누엘 칸트, 의무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하지만 개인의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제러미 벤담, 공리주의). 원칙과 결과 중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하는가(막스 베버,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어려운 선택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이다.”라고 했다. 또 막스 베버는 “가장 도덕적인 결정이 때로는 가장 어려운 결정이다.”라고 했다. 의사가 대상과 생명 사이의 외줄타기에서 떨어지면 수술이 실패할 수 있고 성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판사가 법과 인정이 혼재된 어둠 속에서 끝내 한줄기 빛을 찾지 못하면 오판을 하거나 억울함을 낳을 수 있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딜레마들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 딜레마들 안에 결코 파묻히지 않고 다 풀어내겠다. 정직하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루되 개인의 희생을 용납하지 않으며, 원칙과 결과를 모두 잡겠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처럼, 정의를 실현하는 판사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