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빌바오 구겐하임, 일본, 금문교, 브루클린브리지, 하버브리지
건축과 토목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한번 만들면 쉽게 바꾸거나 없앨 수 없고, 작품의 반열에 오르면 시간적으로 거의 영원하다. 대기 중에 오픈되어 있어서 누구나 숨 쉬듯 향유한다. 심지어 작품의 반열에 오르면, 세계인 모두가 사진과 영상으로 즐기고, 그거로는 모자라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오기도 하는 만큼 공간적으로는 전지구적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산업 등 한 나라의 모든 분야가 직간접적으로 녹아있는 집합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미술관이나 다리를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
건축부터 보자면, 먼저 프랑스 파리 에펠탑(구스타브 에펠, 1889년)이 떠오른다. 스토리부터가 극적이다. 영원한 숙적 영국이 앞선 엑스포에서 선보여 큰 성공을 거뒀던 수정궁을 의식해 급하게 결정하고 급하게 지은 철탑이다. 구스타브 에펠은 건축비의 대부분을 부담하면서도 온갖 비난과 조롱에 시달렸고, 투자비 회수가 완료되는 20년 후 철탑은 해체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투자비는 3년 만에 회수됐고, 프랑스의 상징, 파리의 랜드마크, 철의 여인(La Dame de Fer)으로 불리며 아직 건재하다. ‘아직 건재하다.’는 표현은 틀렸다. 에펠탑은 영원할 것이고, 감히 그녀를 뛰어넘는 철탑은 영원히 나올 수 없다.
다음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프랭크 게리, 1997년)이다. 미국의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현대미술을 수집하고 보존할 목적으로 지은 미술관들이 뉴욕(1937년), 베네치아(1951년), 아부다비(2025년)에도 있지만, 나는 빌바오 구겐하임을 사랑한다. 티타늄이 구축한 60톤의 매스가 순간 압도하는 듯하나, 0.3미리의 실키 커튼이 빛과 바람에 흔들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쇠락한 공업도시를 단숨에 문화와 예술의 도시, 세계적 관광지로 끌어올린 빌바오 구겐하임은 성공한 도시재생의 상징이 되면서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신조어도 낳았다.
다음은, 현대건축의 총경연장 일본, 그리고 도쿄, 그리고 오모테산도, 다이칸야마, 나카메구로. 다 나열할 수 없다. 미국 하얏트재단이 운영하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9명 배출한 일본이다. 일본은 뭘까. 열도, 류쿠왕국의 오키나와에서 원령공주의 야쿠시마, 설국의 북해도까지(설국에는 홋카이도보다 북해도가 어울린다.). 고립. 공포(화산과 지진과 해일과 태풍). 상존하는 죽음과 초연과 본질 추구. 오랜 내전. 대륙에의 열망. 옥쇄 같은 것들? 그들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고, 제일 깊은 곳까지 파헤치고, 그리고 한번 시작한 일은 아주 오랫동안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토목에서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조셉 슈트라우스, 1937년)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수교(suspension bridge) 중 하나다. 태평양으로 지는 석양에 황금빛으로 물드는 다리라서 금문교(Golden Gate Bridge) 일 거라 생각했는데, 태평양과 샌프란시스코만을 연결하는 골든게이트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라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골든게이트해협은 1849년의 골드러시 시대에 명명됐다고 한다. 유래야 어떻든 금문교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 중 하나이고,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다. 왠지 다리라기보다는 대양으로 나가는 커다란 금빛 문인 것 같다.
다음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브리지(존 로블링, 1883년)다. 역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수교(懸垂橋) 중 하나고 뉴욕의 랜드마크다.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하다. 토목기술자 존 로블링은 공사 첫 해 부상으로 다리를 절단한 후 파상풍으로 사망하였고, 아들인 워싱턴 로블링이 뒤를 이었으나 잠수병으로 불구가 됐다. 이후 며느리인 에밀리 로블링이 이어받아 장장 16년 만에 다리를 완공하였다. 때로는 위대한 인간의 삶이 랜드마크가 된다.
다음은,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존 브래드필드, 1932년)다.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시드니, 그리고 호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철제 아치교(Arch Bridge)로 파일런이라 부르는 4개의 석조기둥, 한해 마지막 날 수십만 개의 폭죽을 터트리는 불꽃축제, 야경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시드니 하버 디너 크루즈가 있다. 앞서 얘기했던 모든 것들을 한 방에, 근사한 저녁식사까지. 랜드마크는 황홀한 경험이다.
대한민국엔 랜드마크가 없다. 탑, 미술관, 수많은 현대건축물, 그리고 길고 높은 다리들이 많이 있지만, 랜드마크는 없다. 우리는 대만 타이베이 타이베이 101(삼성물산, 2004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삼성물산, 2010년),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쌍용건설, 2011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메르데카 118(삼성물산, 2024년) 등 세계의 하늘에 마천루를 쌓아 올리고 있고, 말레이시아 페낭 페낭대교(현대건설, 1985년), 쿠웨이트 쿠웨이트시티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현대건설, 2024년) 등 세계의 바다에 초고난도, 최장급 다리들을 놓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랜드마크가 없다.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인 포스코, 세계 최고의 시공사인 현대건설을 보유한 대한민국이 금문교, 브루클린브리지, 하버브리지 같은 멋진 철교를 우리 땅과 바다에 건설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대통령으로서 그렇게 만들겠다. 그리고 시공능력뿐만 아니라 사실상 외국회사들이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설계능력도 갖출 수 있게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