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방자치제도

산소호흡기를 낀 중환자에게 헌혈을 시키는 가짜 의사

by THE RISING SUN

지역발전과 개발의 논리, 그리고 환경보호 논리 사이의 대립으로 40년 동안 진척이 없던 사업에 최근 허가가 떨어졌다.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다. 굳게 닫혔던 빗장이 풀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국에서 케이블카 설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산이 많은 강원도에만 6개에 달한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을 끼고 있는 산청군과 구례군은 진작부터 유치전을 벌이고 있고, 속리산, 월출산, 소백산, 북한산 등 다른 국립공원 인접 지자체들도 케이블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현재 전국에 케이블카는 총 41개인데, 이중 25개가 2012년 이후 건설됐고 앞으로 크게 늘어날 예정이다. 환경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지자체 간 과열경쟁을 벌이다 보니 대부분 적자에 빠지는 제로섬게임이 되어버렸다. 반면 해외에서는 생태 다양성 확보를 위해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를 금지하거나 철거하는 추세다. 미국의 63개 국립공원과 스위스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없고, 일본은 29개 국립공원의 40여 개 케이블카 중 일부를 철거하고 있다.


케이블카 개발 열기가 시작된 건 통영케이블카가 대박을 터뜨린 2015년 즈음이다. 2008년 개통한 통영케이블카는 국내 최장 거리(2km)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단숨에 전국적 명소로 떠올랐고 경제효과는 1200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전남 여수(2014), 부산 송도(2017), 경남 사천(2018), 전남 목포(2019), 경남 거제(2022)의 케이블카가 잇따라 개통됐다. 지자체 간 더 높이, 더 멀리 연결하는 경쟁이 불붙었고 결국 통영케이블카는 최근 39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케이블카만이 아니다. 출렁다리도 있다. 2009년 준공된 충남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는 최장 길이(207m)를 앞세워 연간 100만 명을 불러 모았으나 최근엔 2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청양의 대박 소식을 들은 인근의 예산과 논산이 더 긴 출렁다리를 건설하면서 관광객이 급감한 것이다. 이후에도 지자체들의 경쟁으로 최근 5년간 78개가 급증한 출렁다리는 현재 전국에 238개다.


최근 핫한 트렌드는 국가정원이다. 2013년 완공된 순천만국가정원이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당시 노관규 순천시장이 순천만 인근 음식점을 정비하고 전봇대 228개를 뽑아 생태가치를 회복했던 것이 시작이었는데, 최근 연간 입장객이 1,000만 명에 달하면서 경제 효과가 3조 1천억 원에 달하게 됐다. 순천만국가정원으로 인해 2015년 국가정원이라는 법률적, 정책적 개념이 정립됐고, 이후 울산에 태화강국가정원이 조성됐으며, 강원권과 충청권도 국가정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실패다. 정확하게 동일한 패턴을 보이며 반복되고 있다. 특정 지자체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뭔가를 만든다. 국비와 지방비 매칭방식이다. 관광객이 급증하며 대박을 친다. 지자체장은 다음 선거 또는 국회의원으로의 트랜스퍼를 위해 자신의 치적을 홍보한다. 인근 지자체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는 뭐하고 있나?”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지자체장들이 자극을 받는다. 지역 국회의원과 기획재정부 등을 찾아다니며 협의를 진행하고 홍보자료를 뿌린다. 지역 활성화, 지역 간 형평성 등을 명분으로 국비를 확보하고 빈약한 지방비를 짜내서 더 길게, 더 넓게, 더 높게 건설한다. 준공 직후 반짝 인기를 끌다가 적자로 돌아선다. 바로 옆 지자체에 더 나은 게 들어섰고, 전국에 수없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추진한다.


문제는 국비와 지방비의 중복투자와 낭비로 끝나지 않는다. 지자체가 관광지를 조성하고 홍보하면 주민들은 지자체를 믿고 상가를 매입하거나 임대해서 장사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수익이 나다가 몇 년이 지나면 적자가 된다. 지자체는 관광 콘텐츠를 추가하고 개선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니 곧 좋아질 거라고 설득한다. 투자한 자금이 있어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상인들은 몇 년을 더 버티다가 결국 문을 닫는다. 가게를 시작했다가 문을 닫게 되면 개인이나 가계는 사실상 파산상태가 된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이런 일들이 전국 주요 관광지를 순회하며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케이블카, 출렁다리, 다음은 정원일까. 몇몇 극소수의 성공사례를 제외하면 지방자치는 실패다. 처참한 실패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를 할 수 없는 나라고, 하면 안 되는 나라다. 첫째 우리나라는 서울 중심의 중앙집중화가 고착됐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여건이 안 되서 그렇지 여건만 된다면 서울에 살고 싶어 한다. 혹자는 “여건만 된다면 수도에 살고 싶은 건 어느 나라든 인지상정 아닌가?”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 독일 등 지방자치의 종주국에 가보면 그렇지 않다. 주거, 교통 등 기본적인 인프라, 일자리 상황 등이 수도와 큰 차이가 없고, 다만 지역마다 고유한 특색이 있어, 각자 선호하는 지역색을 찾아 지방에 거주하는 것이다. 마치 산이 좋아서 산속에 살고 바다가 좋아 바닷가에 사는 것과 같다.


그럼 우리나라는 왜 중앙집권화가 고착됐고, 또 미국, 독일과 달리 수도와 지방의 격차가 커서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한 것인가. 둘째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통일된 단일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행정 등 국가 운영 전반이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에 따라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서울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가 된 배경이다. 반면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13개 주가 각각 독립된 정부의 자격으로 참여했고 현재도 입법, 사법, 행정에서 독자적 권한을 가진 50개의 자치주들이 모인 합중국의 형식을 띠고 있다. 또한 독일도 중세 봉건주의 이래 300여 개에 달하는 소규모 국가들의 집합체 전통을 가지고 있는 연방국가다.


그렇다면 어느 모로 보나 우리나라 상황에 맞지 않는 지방자치제도를 왜 도입한 것인가. 셋째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 국민적 요구 등 실질적 필요를 고려했다기보다는 민주주의를 하면 '풀뿌리 민주주의'로 불리는 지방자치도 같이 해야 한다는 당위의 측면이 강했다. 우리 지방자치의 역사는 1948년 제헌헌법이 명시하고 1949년 지방자치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과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 시행으로 중단됐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면서 지방자치법이 부활했고 1991년부터 다시 지방선거를 치르고 있다.


역사적 배경, 국민적 인식이 어떻든, 필요가 아닌 당위로 도입했든 어쨌든 간에 기왕에 지방자치제도를 시작했으면 실질적인 지방분권과 지방자립을 실현해야 하는데 1991년 부활 이후 30년이 넘도록 달라진 게 없는 이유는 뭔가. 넷째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쥐고 있는 정치권이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아 권한을 넘기지 않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입만 열면 지방분권, 지역 살리기, 지방 활성화를 외치면서 뭔가를 하는 척 시늉만 하고 실효성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개헌을 계속 외치면서 개헌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방분권도 개헌도 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적, 국민적 이익이야 어찌 되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은 어떻게 중앙 권력들의 이익에 반하는가. 대통령의 경우 당장 전국을 한 손에 틀어쥐게 해 주던 자신의 권한이 대폭 축소된다. 지방분권의 핵심은 현재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입법, 사법, 행정의 권한과 예산권 등을 지방정부에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을 통제할 권한이 줄어들면 당장 대선, 총선 같은 전국 단위 선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회의원의 경우에도 지역구를 장악하는데 필요한 권력을 대부분 내려놓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와 관련된 공천과 선거에 더 이상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개헌과 지방분권 모두 반드시 필요하고 시급하기까지 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도 원하고 있다. 실질적 추진을 하려면 안건을 상정하고 통과를 시켜야 한다. 그건 당대표나 대선후보인 정파의 수장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정파의 수장은 하지 않는다. 당장 자신이 당을 장악하고 다음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겉으로는 계속하는 척하면서 실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다섯째 우리나라는 지방소멸이 급속하게 진행됐다. 청장년층은 모두 대도시로 떠나고 지방에는 노년층만 남았다. 거기에 저출산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20년 후에는 전국의 모든 시군구가 소멸위기 위험단계에 진입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정치 유통기한은 20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년 후에 소멸위기가 닥치든 말든 계속 케이블카를 만들고, 출렁다리를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로도 깔고 지하철도 뚫으면서 인프라 투자도 계속하고 있다. 주인 없는 눈먼 돈이고, 내가 안 써도 누군가는 쓸 돈이다. 몇 년 후에 적자가 나든 말든, 텅 빈 도로에 고추를 말리든 말든, 그걸로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 다음 세대, 국가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섯째 현행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진짜 지방자치가 아니다.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고 꽃 피운 선진국에서 지방의회라는 껍데기만 가져왔다. 현재 전국 광역의원 수는 872석으로 평균 연봉 5천만 원 기준 440억 원, 기초의원 수는 2988석으로 평균 연봉 3천만 원 기준으로 900억 원 등 연봉만 연간 1천4백억 원 가까이 투입된다. 거기에 지원되는 보좌진 인건비, 사무실 등 운영비, 기타 의전, 해외연수 같은 부대비용까지 감안하면 매년 지방자치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것이다. 그렇게 운영되는 전국 3천9백여 개의 자리는 중앙의 권력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공천을 통해 시혜를 베푸는 하사품,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국회의원이 되려는 자들의 커리어일 뿐이다. 일부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방의회의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지방자치제도 체제로는 답이 없다.


일곱째 스웨덴은 지방자치가 훌륭하게 자리 잡은 나라로 꼽히는데, 시의원은 보수를 받지 않고 봉사하는 명예직이다. 자신들의 본업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 중에서 시와 이웃 시민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은 이들, 그중에서 특정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등 시정에 의견을 낼만한 역량과 자격이 있는 이들이 나서서 봉사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나라도 1991년 지방자치제도를 부활할 때 지방의회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그러다가 최소한의 활동 경비는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해서 인재 수급과 부정부패 방지 차원에서 월정수당과 의정활동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로 빌드업을 하더니 매년 인상을 해서 현재 공무원 직급 기준으로 광역의원은 3~4급, 기초의원은 4~5급에 준하는 수준의 예우를 하고 있다. 보수를 받고 예우를 받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제 기능을 하고 역할을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무보수 명예직 안에는 내가 사는 지역과 지역민들을 위해 대가 없이 일한다는 진정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게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권력욕'만 있고 '국가와 국민'은 없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정치와 거기에 휘둘리거나 기생하는 '헛짓거리', '쇼', '긁어 부스럼' 행정이 콜라보한 부조리의 총아다.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자신의 지역 내에서는 대통령과 같다. 소통령이다. 지방의회의원들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과거 국회의원들이 하던 후진국형 부패, 갑질, 해태(懈怠)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가짜 정치와 잘못된 행정이 합작품을 생산하는 중앙의 문제공장을 그대로 복사해서 지방마다 하나씩 더 지었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한 30년쯤 전의 구식으로 말이다. 중앙권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출이 적은 지방권력은 크기는 작아도 비공개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 쏠쏠하고, 심리적 거리가 멀어 더 주인 없는 눈먼 돈인 국비를 빼다 뿌리는데 훨씬 더 부담이 없다. 그리고 그 뒤에는 중앙권력이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우리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만 사용하라고 넘겨준 주권을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더 키우거나 연장하는 데, 그리고 그 권력의 크기와 살아 움직임을 향유하는 데에만 오남용하고 있는 중앙권력, 지방권력들의 최고의 놀잇감이자 멋진 놀이터다. 지방소멸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6화성과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