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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데 성과급을 지급하는 역설

by THE RISING SUN

공직자들은 민간기업과 같은 성과급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S, A, B, C 등 4개 등급이 있다. 공직사회의 성과중심주의를 확대하겠다며 더블에스(SS) 등급을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적이 있고, 최근에는 3년 연속 S 등급을 받으면 성과급의 50%를 추가해 주는 제도가 도입됐다고 한다.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하겠다는 취지로 자꾸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고, 실질과 실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허상이다.


행정부에 ‘직무성과급제’가 도입된 건 지난 2001년이다. 민간기업에서 시행하는 연봉제와 유사한 개념으로, 담당업무 및 성과와 상관없이 계급과 호봉만을 고려해 급여를 지급해 온 공직사회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업무 분위기를 정착시키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민간부문의 매출, 수익, 성장과 같은 정량적 성과평가 기준이 공공부문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돼도 계속 투자를 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정책성과는 행정서비스 수요자의 만족과 같은 정성적 지표로, 정확한 측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공직사회의 활력 제고를 위해 계급과 호봉만을 반영한 획일적 급여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됐으나, 성과를 측정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정부는 개개인의 직무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분석이 전제되어야만 성과를 측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부처별 직무분석전문가를 양성하기로 했다. 또한 상급자의 주관적 판단에만 의존하는 행정부의 일반적 평가 방식을 타파하고, 각 업무에 대한 평가지표와 목표치를 설정하여 평가를 계량화, 객관화하기 위해 각 부처별로 이를 전담할 인사행정담당관을 신설하였다.


정부가 하는 ‘쇼’, ‘헛짓거리’, ‘긁어 부스럼’의 전형이다. 첫째 현실을 모르는 권력자가 한 마디 했을 것이다. “공직사회가 너무 무사안일, 복지부동이야. 열심히 일한 공직자가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민간기업의 성과평가와 보상체계를 도입해 봐.” 둘째 윗사람이 쥔 인사권으로 줄줄이 연결된 소관부처의 장관부터 담당 실무자까지 비상이 걸린다.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근본적으로 안 되는 것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만 하는 상황에서 ‘쇼’, ‘헛짓거리’, ‘긁어 부스럼’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셋째 관련 규정과 직무를 만들고 직책과 부서와 사업을 만든다. 넷째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현장에서는 온갖 부작용들이 속출하는데, 최초 지시자인 권력자에게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보고서로 추진경과 및 성과가 보고된다. 다섯째 한번 만들어진 규정, 직무, 조직, 예산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된다. ‘국정과제의 탄생’에서 지적한 문제들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다.


공공부문에 성과급제를 도입함으로써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경쟁이 얼마나 일어났는지, 그로 인해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이 얼마나 증진됐는지는 측정이 불가능하고, 투입되는 예산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측정이 가능하다. 국가직 공무원의 인건비 총액은 1999년 10.9조 원에서 제도 도입 초기인 2001년 14조 원으로 증가했고, 2006년에는 20.4조 원으로 거의 두 배가, 2022년에는 41.3조 원으로 다시 그 두 배가 됐다.


근본적으로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되게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장의 괴리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공공분야의 업무는 수치화되는 정확한 정량평가를 할 수 없다 보니, 처음부터 직무분석이니 목표치와 평가지표 설정이니 하는 것들은 빛 좋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괜히 직무분석전문가니, 인사행정담당관이니 하는 자리를 만들고 불필요한 업무를 늘려서 이래저래 번거롭게만 했을 뿐 결국은 과장 국장과 같은 상급자들이 순위를 결정하게 됐다. 그나마 계급과 호봉에 따른 보수체계는 지극히 객관적이어서 승복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그런데 그걸 혁신하겠다며 성과급제를 도입해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니함만 못한 긁어 부스럼이다. 낮은 등급을 받은 이들은 승복하지 않았고, 불평과 불만, 시기와 질투가 팽배해지면서 조직 내에 위화감이 조성됐다.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경쟁을 유도해 성과를 높이기는커녕 “일은 해서 뭐 하나”하는 무력감만 높이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역량평가와 성과급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져 불신을 받는 상황에서 “나도 부당하게 최하위 등급이 됐다.”는 직원들의 불만과 사기 저하, 동료 간의 불화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자체적으로 균등하게 배분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2012년 기준 서울 자치구 10여 개, 전국 시군구 100여 개가 해당됐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는 성과급 재분배 적발 시 당사자를 파면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 역시 앞서 밝힌 정부가 하는 ‘쇼’, ‘헛짓거리’, ‘긁어 부스럼’의 전형이다. 근본적으로 안 되는 일을 밀어붙이고, 그러다 문제 생기면 규정을 새로 만든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 하지 않고 덮어서 문제를 키우는 패턴이다.


기왕에 도입된 성과급제이고, 운영 기간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이제 와서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현실적 대안은 없을까. 최초 도입 당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공부문은 정량적인 성과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직무분석이니 목표치와 성과지표 설정이니 하는 그럴듯한 보고서, 즉 ‘빛 좋은 개살구’로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성과 측정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공공부문을 공직사회라고도 부른다. 사회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다. 조직을 경험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평판이 얼마나 정확한지.


직원이 12명인 팀에서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무기명으로 높은 성과를 낸 팀원 3명을 각자 적어 내도록 했다. 순위를 매기고 점수에 차등을 두게 했다. 당시 규정에는 팀장이 평가를 하도록 되어있었지만, 항의와 팀 내부 불화를 원치 않았던 팀장이 팀원들의 동의를 얻어 자체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팀원들이 부여한 총점 순서로 만든 성과평가 순위가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실제 업무실적과 일치하는 것이다. 팀원 중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팀 외부에 있는 제3자, 즉 국장과 같은 상급자들은 알 수 없겠지만, 1년 365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누가 열심히 일하는지, 누가 실질적 성과를 냈는지, 그리고 누가 동료들과 팀을 위해 희생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12명이지만 집단지성으로 합쳐지다 보니 지극히 현실과 일치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평가방식을 다면평가라고 한다. 통상 인사권자인 상급자에게만 권한이 주어지는 평가와 달리, 동료들 즉 함께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급자, 하급자에게까지 권한이 주어지는 평가다. 평가대상자를 제일 잘 알고, 그가 하는 일을 제일 잘 아는 이들이다. 또한 무기명으로 진행되기에, 즉 평가자가 블라인드 처리되는 것과 같기에 공정하다. 청탁의 가능성도 원망의 여지도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혹자는 친한 동료들을 포섭하거나 서로 담합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면밀한 설계만 이뤄진다면 단 12명만으로도 합리적인 평가가 가능함이 입증됐고, 모집단이 확대된다면 훨씬 더 현실에 부합하는 평가가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량적 평가가 불가능한 공공부문에 억지로 이식된 현행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유일한 대안인 다면평가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그래서 당초 성과급제를 도입하며 천명했던, “공직사회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업무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그를 통해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증진에 크게 기여하는 공직자들이 되도록 하겠다.”는 본래의 목표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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