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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국외훈련

세금으로 보수, 체류비, 학비를 지원하는 2년

by THE RISING SUN

열심히 일한 공직자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보상 중에 ‘장기국외훈련’이 있다. 한 번에 2년까지 해외에 체류하면서 외국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거나 외국기관에서 연수형식으로 근무한다. 국내에서 근무할 때와 동일한 보수가 지급되고, 본인과 동반 가족의 체류비가 지급된다. 학위취득의 경우 학비까지 지급된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과거에는 석사과정 다녀온 후 몇 년 근무하고 박사과정을 또 갈 수 있었고, 주로 힘 있는 부처의 공직자들이 그 기회를 독점하듯 누렸다. 인터넷 포털에서 직업공무원 출신 장관, 차관들의 학력 란에 기재된 외국대학의 석사, 박사 학위는 그렇게 땄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한 번만 가능하도록 바뀌었을 거다.


공무국외출장과 마찬가지로 후진국 시절, 개발도상국 시대의 유산이다.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공직자들이 선진국의 앞선 문물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논리로 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힘 있는 부처의 공직자들이 더 많이 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선진국이다. 우리의 문물이 앞서있고, 많은 나라의 공직자들이 우리 것을 배우고 있다.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서, 보수와 체류비와 학비까지 지급해 가며, 그렇게 2년 동안 본인의 자리를 비워둔 채로 장기국외훈련을 실시해야 할 논리가 아직 남아있나.


더욱이 ‘열심히 일한 공직자’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보상’의 실체를 알게 되면 장기국외훈련이라는 제도의 개편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유사한 제도로 대학교수의 안식년이 있다. 6년을 근무하면 7년째 되는 1년을 쉬거나 해외대학에 교환교수로 가는 제도인데, 사실상 좀 더 여유 있는 환경에서 연구에 집중할 기회를 부여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공직자의 장기국외훈련과는 실질이 다르다.


장기국외훈련 대상자로 선발된 ‘열심히 일한 공직자’ 중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 공직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본연의 업무를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성, 경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는 대학교수의 안식년과 같은 반드시 필요한 제도가 된다. 하지만 대상자의 상당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이 아닌, 과장과 국장을 위해 일한 이들이다. 과장과 국장의 눈에 들기 위해 일이 아닌 사내정치를 택한 이들이다. 그리고 업무시간에 시험통과를 위해 외국어공부를 한 이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외장기훈련 대상자 선정의 권한은 과장과 국장이 쥐고 있다. 과장이 승인을 해야 신청을 할 수 있고, 국장들이 모여서 대상자를 선발한다. 선정위원회 테이블에는 후보자들의 공적서가 올려져 있지만 누구도 그걸 읽어보진 않는다. 어차피 사실도 아니다. 과에서 동료 직원들이 한 일들을 모조리 자기가 한 일로 둔갑시킨 소설이다. 그리고 대상자는 선정위원회 개최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후보자는 미리 충성을 해두었던, 뒤를 봐주는 국장을 찾아가 청탁을 넣고, 그 국장은 다른 국장들을 미리 만나 언질을 해둔다.


결국 열심히 일한 공직자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보상인 국외장기훈련의 실체는, 과장, 국장이나 차관, 장관 등 윗사람들이 원하는 일, 그들과 친해지는 일을 열심히 한 공직자들이, 대상자를 선정하는 권한을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윗사람들에게 받는 보상이다.


이러한 부조리의 원인은 첫째 공공분야는 민간분야처럼 매출, 수익, 성장 등으로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둘째 국가와 국민이 공직자를 직접 평가할 수 없어 대통령에서부터 장관, 차관, 실장, 국장, 과장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먹이사슬과 그 실체적 수단인 인사권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셋째 장기국외훈련 대상자를 선정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은 전액 국민의 세금에서 지출되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인 없는 눈먼 돈’, ‘공유지의 비극’의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행 장기국외훈련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전면적인 재설계를 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해서 공직자들이 반드시 배우고 경험할 필요가 있는 과제로 훈련분야를 한정한다. 둘째,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절차를 통해 훈련 대상자를 선정한다. 셋째, 훈련이 끝난 후 획득한 지식과 경험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에 사용되는지 실질적으로 검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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