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김명훈

공직자 1

by THERISINGSUN Feb 28. 2025

김명훈은 현재 50대 중반의 중앙부처 4급 과장이다. 군(郡)에서 9급으로 공직을 시작했던 그는 7급으로 승진하자마자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유는 한마디로 ‘뭔가 좀 촌스러워서’였다. 자신이 마치 대통령이나 된 듯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이는 군수도 꼴 보기 싫고 과거 국회의원들이 하던 못된 짓들을 그대로 따라 하는 군의원들도 못마땅했다. 어떻게든 조금 더 빨리 승진해 보겠다고 납작 엎드린 간부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는 동료들까지.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 그 안에 내가 같이 있고, 앞으로 내가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서 제대로 된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중앙부처, 더 넓은 세상은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9급 출신에 이름도 모르는 지방 사립대 출신, 그것도 촌에서 이장들 뒤치다꺼리나 하던 사람이 중앙행정에 대해 뭘 알까 하는 은근히 아래로 보는 시선만 빼면 말이다. 장관이 군수와는 달리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이다 보니 잘 보이기는 해야 하겠지만 대놓고 줄을 설 것까지는 없었다. 또한 군청에서는 직원들이 대부분 학교 선후배, 동네 이웃이라서 정이 있다지만 불편한 점도 많았다. 그런데 중앙은 상대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됐고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지방보다는 덜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근본적으로 행정이 ‘헛짓거리’, ‘쇼’, ‘긁어 부스럼’인 것은 지방이나 중앙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양상이 달라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다. 지방은 군민들을 직접 대면하는 일선이다 보니 그나마 행정에 현장성이 있고 거기서 오는 보람이 컸다. 그런데 중앙은 숫제 탁상공론이다. 전입 초기에 중앙행정이니 정책입안이니 하며 자신을 무시하던 그것의 실체다. 명문대 나와서 20대 중반에 5급 공채 합격한 인재들이 모인 곳 아닌가. 군청에서는 60세 되기 전에 5급 과장 하고 퇴직하는 게 소원인데 말이다. 예산이 수에서 수백억까지 투입되는 일들을 책상에 앉아서 결정하는데, 똑똑한 머리로 기가 막힌 논리를 만들어낸다.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의 기획 보고서다. ‘저 돈이면 우리 군민들 이것저것 별 거 다해 줄 수 있을 텐데,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면서 허공에 뿌려버린다고?’


군에 10억짜리 교량이 하나 들어서는 과정은 이렇다. 군민들이 수없이 민원 신청하고 시위하면서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러면 군은 도청에서부터 지역 국회의원, 기획재정부까지 찾아다니며 읍소한다. 군수가 대통령실과 네트워크가 되거나, 지역 국회의원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나 당에서 힘 있는 자리에 있으면 예산이 바로 편성된다. 하지만 보통은 몇 년이 걸리고 아예 불발되기도 한다. 그런데 중앙부처에서는 수백억이 들어가는 사업을 한 달 만에, 그것도 책상 위에서 확정 지어 버리는 것이다. 대통령 지시사항이었고 국정과제였고 장관의 최우선 관심사항이었다. 그 사업이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 증진에 실질적 효과가 있는지는 한참 후에 생각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었다. 그냥 보고서에 그럴 듯한 통계 몇 개 넣고 화려한 미사여구 몇 군데 붙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담당하는 특수 계층이 있었다. 5급 공채 출신, 즉 고시 출신들이다. 군은 모두가 9급 공채 출신이라서 입직 경로의 차이에서 오는 차별이나 위화감 같은 건 없다. 그런데 중앙에는 신분제가 있었다. 일단 고시 출신들은 귀족 내지는 지배층으로 보면 된다. 벼슬을 할 수 있는 6두품 정도? 거기에 대학이 어딘지, 학과가 어딘지에 따라서 성골, 진골이 결정된다. 고시 출신들은 폐쇄적인 카르텔을 형성해서 끌어주고 밀어준다. 대통령, 장관에게 들이밀 보고서를 쓰는 고급 기술 같은 것들은 도제식으로 자기들끼리 전수한다. 어느 조직이든 상대적인 허드렛일이 있기 마련이다.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이다. 물건을 주문하고 사람을 섭외하고 식당을 예약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게 7급, 9급 공채 출신, 즉 비고시 출신들의 일이다. 그들이 치른 시험은 시험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자리는 벼슬도 아니다. 고시 출신들이 귀족이라면 비고시 출신들은 평민, 천민이다. 재미있는 것은 고시 출신들이 그런 상황을 만들고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비고시 출신들까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보상과 처우 체계, 즉 승진, 성과급, 표창과 같은 것들을 나누는 방식에서도 중앙과 지방은 달랐다. 어떻게 보면 조금 불합리할 수도 있지만, 군에서는 계급에 따라 연차에 따라 나름 질서 있게 운영됐다. 그건 군수도 어쩌지 못하는 룰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직원들이 다들 선후배, 이웃이다 보니 정치질, 사내정치 같은 것들이 끼어들 수 없는 어떤 최소한의 윤리 같은 게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중앙에는 완전히 다른 질서가 존재했다. 일단 앞에서도 언급했던 대통령, 장관, 국장, 과장으로 이어지는 권력과 인사권의 라인이 원하는 핵심 사업을 잘 포장해서 만들어내 최고 에이스들이 가장 좋은 열매를 선점한다. 물론 고시 출신들이다. 다음 남은 열매는 생존 능력이 빼어난, 고시 출신 간부들에게 이쁨 받는 비고시 출신들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적당히 일하는 척하면서 정치질만 하는 부류들이다. 어차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하느라 힘 빼기보다는 승진, 성과급, 표창, 유학 같은 것들 놓치지 말고 실용적으로 살자는 주의다. 군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그런 일들이 중앙부처에서는 가능했다.


그 결과 중앙부처에는 ‘일은 해서 뭐하나’하는 허무주의가 팽배했다. 군에서는 군수가 뭐라 하든, 지방의원이 뭐라 하든 간에 내 고향, 내 이웃들을 위해서 뭐라도 한다는 보람이 있고, 행정 서비스의 수요자인 군민들을 직접 대면하다 보니 실체적 성취감도 있다. 그런데 중앙에서는 하는 일이 실체가 없는 보고서 놀음, 숫자 놀음인 데다가, 신분제가 확고해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은 바뀌지 않고 차별은 당연시되며,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그에 합당한 보상과 처우를 받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어차피 때 되면 월급 나오고 정년은 보장되고 퇴직하면 연금이 나올 텐데 스트레스받으면서 아등바등할 거 뭐있나” 이렇게 되는 거다.


김명훈은 ‘다시 군으로 돌아가야 하나’하는 고민을 수없이 했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가려야 돌아갈 수도 없다. 7급일 때 떠나온 군에서 4급을 받아줄 수는 없다. 군에서는 4급이 국장이고, 자리도 몇 개 없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 잘해야 5급 과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김명훈이 군에서 이장들 뒤치다꺼리나 하던 9급 출신에, 이름도 모르는 지방 사립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중앙부처의 4급 과장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건 그의 탁월한 판단 능력과 처세 때문이었다. 그건 좋은 학교나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일정 부분 타고난 부분도 있을 것이고 군에서 국민들을 직접 대면하는 일선행정에서부터 중앙부처의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제일 윗 단계의 행정까지 경험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안목과 지혜도 있을 것이다. 업무에 대해서든, 사람에 대해서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김명훈의 혜안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잘난척하는 고시출신 간부들도 그를 불러 의견을 듣게 됐고, 그런 것들이 모여 김명훈의 평판이 됐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영전이든, 승진이든 더 얻을 수 있었지만, 그는 지금 주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7화 지방자치제도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