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군인과 검사, 그리고 정치

1년 전, 총선을 앞둔 2024년 2월에 썼던 글

by THE RISING SUN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직업이 있을까. 그런 건 없다. 더군다나 우리 정치는 비례대표제를 통해 직능별 다양성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직업적 커리어를 가진 국회의원들이 분야별 상임위에서 활동하며 우리 정치를 풍성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때 군인의 정치 참여를 금기시했었다. 그것도 아주 치를 떨 만큼 말이다. 첫째는 군 출신 대통령들이 장기독재를 하며 민주주의를 탄압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군 출신 정치인들이 세력화해 자신들의 보스와 조직원들을 위한 정치를 했기 때문이며, 셋째는, 첫째, 둘째 이유에서 이미 입증된 바와 같이, 무력이라는 힘과 이의 효율적 행사를 위한 상명하복을 본질로 하는 군의 직업적 특수성이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막스베버는 그의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윤리, 책임윤리, 목측능력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치인에게 신념윤리만 있다면 목적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고, 책임윤리가 없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야기하며, 목측능력이 없으면 전체를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균형감각을 잃게 된다고 부연했다.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과거 군인의 정치 참여를 금기시했던 이유들이 지금 우리 시대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있고, 그를 추종하는 이들은 사조직처럼 세력화됐는데, 그들은 기소권이라는 힘과 검사동일체라는 상명하복을 본질로 하는 검찰 출신 정치인들이다. 또한, 막스베버의 저 예언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고 있다. 그들의 검사적 흑백 신념윤리에 치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고,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로 인해 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했으며, 정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어 첨예한 대립만 남은 불균형의 시대가 되었다.


전쟁은 흑백지대, 외교는 회색지대라고들 한다. 또 법은 흑백지대, 정치는 회색지대라는 말도 있다. 전쟁을 하는 군인과 법을 다루는 검사는 직업적 특성상 흑백논리에 익숙하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긴데, 군부독재시대가 종식된 후에는 수많은 군 출신 정치인들이 국방·안보·외교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고, 지금의 검찰독재시대 이전에도 역시 수많은 검찰 출신 정치인들이 큰 정치를 했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성공한 군, 검찰 출신 정치인들은 군인, 검사로 일하며 쌓았던 전문성만을 정치의 영역으로 가져오고 그 직업적 특수성은 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특정 직업을 비하할 생각은 없다. 모든 직업은 그 성격이 다르고, 그에 따른 특수성을 내재하기 마련이고, 심지어 그 특수성은 직업의 본질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우리 시대를 검찰독재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검찰 출신 정치인들이 법률가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고, 그 직업적 특수성, 즉 권력의 행사와 상명하복 질서에 매몰되어 보스를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의 눈을 가려 간발의 차로 대권을 잡았고, 행정부를 접수했으며, 여당을 장악했다. 그리고 장차 입법부까지 수중에 넣기 위해 총선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 이뤄낸 민주화인가. 막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잡아야 한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9화헌법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