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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05. 2020

군만두와 콩국수

No, thank you!!!


  7월에 소백산 자연 휴양림을 다녀오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옛날 얘기를 하다가 군만두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생활에서는 살가운 얘기를 많이 할 수 없지만 함께 드라이브를 하면 옆자리의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마음도 가까워지는 장점이 있다. 그러면 아내는 나의 졸음운전도 예방할 겸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목적지까지 가게 된다. 가끔은 집안일, 아이들에 대한 히든 스토리를 덤으로 듣게 되는 경우가 많고 나 또한 아내에게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게 되면서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고 이해가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큰 아이에게 아내가 군만두를 간식으로 주었는데 마침 배가 고팠던 큰 아이는 너무 맛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아내는 하교시간에 맞추어 군만두를 튀기고 있었고, 한 달 내내 군만두를 아무 말없이 먹던 아이는 어느 날 아내에게 이제 군만두를 그만 먹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에만 몰두한 나머지 아이도  싫다는 말을 안 했기 때문에 한 달 내내 군만두를 튀겨준 아내와 함께 큰 아이도 엄마의 정성을 배려한다고 한 달 내내 군만두를 맛있게(?) 먹은 인내심도 고맙고도 유쾌한 추억이 되었다. 그 군만두 트라우마 이후로 큰아이는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거나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아내는 말했다. 나도 큰 아이처럼 요즘 같은 여름철이면 구수한 콩국수가 가끔은 먹고 싶지만 밖에서 사 먹을지언정 아내에게 콩국수가 먹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 던 오. 대. 수.(최민식)가 15년 동안 감금방에서 군만두만 먹고살았던 그 장면이 문득 생각이 났다. 왜 자신이 갑자기 납치되어 감금방에 갇혀 중국집서 배달된 군만두만 먹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15년 동안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비록 가족이라 할지라도 부부,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 서로를 배려해 할 말을 참고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 현실에서도 한 달 정도는 매일 오후에 간식으로 군만두만 먹게 될 수도 있다. 조금은 불편한 상황, 조금은 시끄러운 상황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함께 가까운 관계일수록 제대로 소통해야만 더 큰 불편함이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아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숙제일 것이다. 설사 부모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군만두 사례처럼  서로 너무 배려하다 보면 결국은 겉으로 드러난 사실관계로만 파악될 수밖에 없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특히 남자들은 자식들에게 고려가요 ‘사모곡’처럼 그 날이 호미와 같아서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낫처럼 잘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호미는 호미대로 밭을 일구거나 잡초를 제거할 때 그 무디지만 강한 무쇠 날의 용도가 있는 것이다.



 요즘 같은 여름철이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특별히 옥수수, 감자, 고구마와 같은 구황작물을 좋아한다. 반대로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그런 구황작물을 늘 가까이 두고 먹었던 탓에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내는 무더운 여름에 옥수수를 삶아와서는 너무 맛있다면서 꼭 내게 먹어보라고 권한다. 나는 배가 고플 때를 제외하고는 아내에게 항상 No, thank you!!!라고 말한다. 가까운 사이의 소통에서 정중한 거절의 가장 좋은 표현으로 많이 사용하는 ‘노 땡큐!!’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친밀한 사이의 배려나 호의, 정성이 담긴 권유나 제안에는 정중히 감사함을 표현하면서도 가볍게 거절하는 방식으로, 본인 스스로의 생각을 당당히 소통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너무 이해해주고 배려만 하지 말고, 더 당당하게 좋고 싫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표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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