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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06. 2021

문이 있는데 굳이 벽을 뚫고 가는 사람이 있다

존중과 배려

 

얼마 전에 KF94 마스크를 쓰고 영화 ‘세자매( 2021, 이승원 감독)를 집 앞 영화관에 가서 보고 왔다. 코로나가 재확산되고부터 영화보기가 꺼려졌지만 문소리, 김선영 배우가 출연했다고 해서 응원도 할 겸 영화를 보았다. 개봉 이틀째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관람객이 많아서 오히려 코로나 걱정 때문에 한 번도 마스크를 내릴 수가 없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수고를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영화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열연을 펼쳤던 배우 문소리가 영화 ‘세자매’ 홍보차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길래 반가운 마음에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뿐, 함께 나온 패널들과  ‘1987’(2017, 장준환 감독) 영화를 감독해서 더 유명해진 그녀의 남편인 장준환 감독과의 연애와 결혼 생활 얘기로 접어들면서 어느 한 부분에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남해 금산 보리암


 그 내용인 즉, 한 패널이 장준환 감독이 배우 문소리가 ‘오빠’라고 한 번만이라도 불러주길 소원한다며 그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장 감독은 네 살 차이가 났는데 연애시절부터 서로 존댓말을 사용했고 지금도 서로 존댓말을 하고 있으며 그녀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저는 사실 그런 마음이 있다. '오빠'라고 하면 남자들은 여성을 조금 귀여워하는 것 같고. 부부관계일수록 더더욱이나 '내가 나이가 많지, 넌 어리지, 나한테 넌 귀여운 존재지'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라고 지금껏 한 번도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평소에 나도 공감하던 내용이라 무척 반가웠다. 부부는 서로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일 때 존중과 배려가 함께 할 수 있다..



 배우 문소리가 남편 장준환과 결혼 생활 16년째 존댓말을 쓰는 이유,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했으며 그 이유를 듣고 나서도 함께한 아이돌 패널이 그럼 자기가 오빠라고 부르겠다며 묘하게 강요하기 시작하자마자 옆에서 함께 보던 아내도 그 장면이 불편하다며 아무리 예능이라고 해도 예의가 없는 것 아니냐고 내게 동의를 구했다.


 이에 배우 문소리는 마지못해 쑥스러워하며 "제주도에 계시는 준환 오빠, 오래오래 다정하게 늘 살았으면 좋겠고, 좋은 작품 많이 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웬만하면 나 좀 쓰자"라며 애정 가득한 영상편지를 전했다.  그리고 강요된 분위기 속에서 그 예능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배려한 배우 문소리가 더욱 돋보였고, 닐슨코리아 조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했다고 한다.



 서로의 전문적인 영역을 존중하고 일을 사랑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쾌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와 아내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꼈던 그 장면을 지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휴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트위터를 보던 아내가 아직도 아침잠에 취해있던 나를 깨웠다. 그리고 트위터 내용을 복사해서 내게 보내주고 읽어보라 했다.


“문소리라는 대배우를 앉혀 놓고 아이돌의 애교를 주문하며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일방적인 귀여움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하는 답에, 남편분 소원이니 오빠라고 한번 불러 보라고 하여 기어코 그 씬을 얻어내는 지상파 방송국. 문소리 배우에게서 저 반응을 끌어내는 방법 또한 교묘하게 악질적인 것이어서 더 경악했다. 제삼자인 아이돌분에게 대신 오빠라고 해달라고 압박한 것. 본인의 거부로 인해서 타인이 피해 보는 게 싫어서 내키지 않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게 더 슬펐다.”



출처, 어느 트위터리안의 글 중에서



 아무도 그 장면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반응을 보고 우리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하고 위로가 되었다. 이 트위터리안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우리보다 훨씬 더 불쾌하게 생각했던 분이 있었구나 싶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아무런 비판 없이 제도적인 교육에서, 무심히 전해 내려온 세습적 관습에서 선진화되지 못한 부분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면 세계 10대 경제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선진화된 문화, 교육, 제도와 생활이 발전되고 진화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나만의 생각은 아닐 듯하다.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결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든 그것은 두 사람의 자유 의지고 비난받거나 폄하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분명히 밝혔으면 설사 게스트가 아닐지라도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해주어야 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작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이런 작은 부분에서 알게 모르게 왜곡된 젠더 인식이 또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고 할 수 있다. 금방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스토커 방지법까지 생겨났으니 말이다.


 연애는 올림픽 금메달이나 히말라야 최고봉을 도전하는 게 아니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먼저인 마음가짐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해가고 있고, 그 변해가는 속도와 맞추어 함께 변해가지 않으면 지체된 게으름에 대해 사회에서 강제로 변화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때는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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