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지난해 가을 무렵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올해 봄날, 올리브 나무 한그루를 사 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안달루시아 평원에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밭을 보았던 그 느낌을 추억하고 싶어서 올리브 나무 한그루를 집 안에 들였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정성을 들여 키운 결과 나뭇잎이 제법 무성해지고 올리브 나무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며칠 전 그 올리브나무를 바라보며 칭찬하다가 아내와 둘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접한 하얀 플라스틱 화분을 세련된 세라믹 화분으로 바꾸어주면 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겠다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생각 즉시 행동을 실천하고자 지난봄에 들렀던 천호동 경계의 하남 농원에 다녀왔다. 농원 옆 화분 도매상에서 매끄럽고 하얀 화분을 사고 분갈이할 거름과 화분 위에 깔아 둘 화산석 자갈을 사 와서 분갈이를 해주었다. 물론 연말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시클라멘 빨간 꽃도 사 와서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분갈이를 하는 동안 TV에서 강호동, 황제성 그리고 임지호 셰프가 진행하는 ‘더 먹고 가’란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분갈이를 했다. 이날 ‘산꼭대기 집’의 주인 임지호 셰프, 강호동, 황제성은 겨울을 앞두고 김장 준비를 했다. 김장을 준비하는 동안 강호동이 조그만 일에도 임지호 세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옆에 있던 초대손님으로 출연한 영화배우 박중훈에게서 배웠다며 인사를 건넨다. 박중훈은 일상을 생활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또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에 박중훈이란 배우를 보면 유쾌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어 좋아했지만, 또한 가끔씩은 삶에서 경험했던 말 한마디가 철학적인 존재의 이유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그의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제곡 ‘비와 당신’을 좋아해서 창 밖에 빗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콧노래를 부르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노래가 문득 생각나고는 한다. 박중훈에게는 늘 함께 하는 사람, 인생의 동반자이자 멘토, 친구 같은 영화배우 안성기가 있다. 그런 존재를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다.
영화배우 박중훈은 말한다. 박중훈은 아버지가 생전에 유언 비슷하게 “너는 무조건 안성기만 따라가라”라고 하셨을 정도라며 안성기를 향한 무한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안성기는 80km로 달리는 대형 트럭이라면 박중훈은 180km로 달리는 스포츠카인데 그 트럭이 앞에 가고 있어서 속도조절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고마운 존재, 감사한 사람이란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 내게 그런 고마운 존재가 있었던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고맙다.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너무 아끼고 살지는 않는지도 말이다. 소소한 일상에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조그마한 기쁨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호의에도 고맙다고 말하고 작은 잘못에도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아끼지 말고, 아낌없이 그때그때 표현해야 한다.
생활하면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건 그때그때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이다. 아끼지 말고 낭비해도 비난받지 않는 말들이다. 풍부하게 사용하고 낭비해도 우리의 삶을 품격 있고 풍요롭게 하는 말들이다. 정말 우리가 살면서 아껴야 하는 말들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다. 실천의 문제일 뿐이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말끝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생활화하면 우리의 습관이 된다. 김장을 준비하면서 임지호 셰프는 순무를 손질하고 나온 잔뿌리들을 모아 수육을 삶는 들통에 넣었다. 그는 “순무 뿌리가 육질을 부드럽게 한다”며 “못 쓴다는 생각 때문에 못 쓰는 거지, 얼마든지 유익하게 쓸 수 있다”며 음식물 쓰레기가 될 뻔한 순무 뿌리의 귀한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그처럼 우리들의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