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깨닫는 것
아파트에 살 때 아래층에서 밤마다 아이와 함께 공부를 가르치는 엄마가 그 아이의 등짝 스매싱을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우리 집 아이가 컴플레인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집 아이도 고3이었으니 집중이 안되고 예민할 때였다. 그래서 아이방에 가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 보니 매일 밤마다 난리가 아니었다. 고충을 호소하는 우리 집 아이를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랫집 초등학생을 걱정할 정도였다.
아내가 우연히 마주친 아랫집 엄마와 아이를 보았지만 특이한 점은 없다며 신기해했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게 전부다. 그 정도 아는 것을 가지고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도 없고, 그럴만한 정보를 가진 것도 아니니 당연하다. 그 후 우리 아이는 어쨌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그 아랫집 소식은 알 길이 없다. 그냥 아무 일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한다.
유퀴즈란 예능 방송을 보면서 여섯 군데 의대에 모두 합격했던 초대손님과 얘기하던 중, 유재석이 수학을 4점 맞았던 일화를 소개하며 모두 다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처럼, 또한 모두 다 연예인이 될 필요도 없다. 누구나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아니면, 이웃에 폐 끼치지 않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사는 남의 삶이 아닌,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가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
모든 부모는 자식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경제적으로도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부모가 나름 그런 사람이면 자신의 성공 경험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전수해주길 원하고, 또한 그렇지 못한 부모들은 더더욱 자식들 만큼은 자신이 후회하고 아쉬웠던 점들을 자식들에게 제대로 학습시켜서 자신들보다 더 잘 살아가기를 원한다. 모든 부모들의 마음은 모두 한결같다.
문제는 이런 한결같은 부모의 마음이 정도를 벗어날 때 문제가 된다. 잘 낫건 못 낫건, 그런 이유로 모두 자기 자식들에게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전수하고 자신들이 생각하고 디자인하는 안정된 삶 속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물론 부모님들은 이미 경험했겠지만 골프와 자식들의 문제만큼은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고, 될 수도 없다.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사유를 할 수 있는 동물이기에 그렇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긴 하지만 자연의 동물들이 대개 비슷한 패턴대로 살아가는 것과는 다르게 인간은 주체적인 자유 의지대로 각자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 동물들처럼 매일 먹을 것만 생각하고 살 수는 없다. 설사 부모들의 생각처럼 디자인된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 삶이 행복하다고 정의할 수는 없다. 세상은 또 그 부모들이 살았던 세상과는 이미 다른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고 변하는 것을 무시하고 과거 자신의 성공 경험을 그대로 강요할 때 우리는 그를 꼰대라고 부른다. 그들의 시대에 경험했던 성공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그렇게 수학 공식처럼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는 사회과학적인 것일진대, 가끔 우리는 수학 공식처럼 어떤 법칙이 있어 그 법칙에 집어넣기만 하면 바로 정답이 나오는 것처럼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들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우리들이 가진 무한한 삶의 에너지 또한 모두 다르다. 그래서 자식들의 삶과 나의 삶을 동기화하거나, 또는 동기화시키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데서 문제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대우하고 존중하는데서, 또한 그렇게 대우받고 존중받는 데서 우리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말 그대로 상처 없는 영혼이 될 수 있다. 모든 상처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어떤 강요된 권위에 지배당할 때 우리의 영혼은 상처 받고, 그 상처의 크고 작음에 따라 우리들의 삶은 종속될 수밖에 없다. 빨리 깨달으면 빨리 깨달을수록 좋다. 그냥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에서
한 번뿐인 인생, 남의 시선에서 왜 내가 살아내야 하는지, 남의 시선에서만 보기 좋으면 과연 나는 행복한 것인가. 한 번쯤 이런 의문이 들어야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 부모들 또한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남의 시선에서 볼 때 겉으로 드러나는 자식들의 삶의 형식만 잘 갖추어놓으면, 그 내용과는 무관하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조금만 인생을 살아보면 누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도, 불행도 결국 잘 갖추어진 어떤 형식이나 조건보다는 자기 하기 나름에 달려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인생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무한한 인생의 비밀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생에 정답은 없다”란 말에 정답이 있다. 단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식들의 생각을 지배하지 말고, 그들이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그들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성공하지 못하면 어떤가.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