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같은 아내
며칠 전 TV를 보다가 아내와 함께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방송에 나온 행복하게 생활하는 중년 부부가 있었는데 진행자가 남편에게 물었다.
“아내는 선생님에게 어떤 분이에요?”
그 남편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로또예요.”
인생의 로또라는 남편의 대답을 듣고 진행자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다시 물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아내를 로또라고 생각하세요?”
남편은 또 머뭇거리지 않고 툭 내뱉는다.
“ 정말 안 맞아요.”
오십이 넘게 살고 있는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아내를 로또 같다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다음 대답을 기다리던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빵 터졌다.
그리고 너무 공감한다는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아마도 이 얘기를 들으면 대개 십 년 이상 같이 살아본 부부들은 많건 적건 나름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서로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열심히 생활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부부일수록 그럴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공감할 수 없는 부부라면 서로를 “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너무나 잘 맞는 부부일지도 모르겠다.
찍기만 하면 대개 ‘꽝’이 나오는 것처럼, 너무 잘 맞는 부부는 서로가 웬만한 노력 없이, 사실 처음부터 그랬을 리가 없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같이 살아본 부부라면 알고 있다. 두 남녀가 서로 다른 장소와 젠더로서 삼십 년 가까이 살아온 사람들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금방 결혼할 확률은 로또 맞는 것처럼 쉽지는 않으니 대개 그럴 확률은 낮다.
누구나 서로 같은 상대든, 다른 상대든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결혼에 이른다. 연애와 달리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장미의 전쟁’을 여러 번 치르며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으로 존중하며 맞추어가는 것이 결혼생활이기 때문이다.
연애와 달리, 누구나 대개 처음 해보는 결혼 생활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절정의 순간에 어느 한쪽이 죽거나 끝나는 드라마틱한 결과가 아니라 계속되는 삶의 과정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연애의 절정 끝에 결혼을 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임신, 출산, 육아, 교육 및 재테크에 집중하면서 말 그대로 서로가 참된 생활인이 된다.
사실 연애할 때보다 오히려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랑과 존중의 연애 정신’이 필요하다. 연애에 빠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단점이 결혼에 이르게 한 장점보다 더 커 보이기 시작하고, 또한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자신의 판단을 믿고 서로를 선택한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taste&style을 맞추어가며 잘 살면 좋은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면, 자책하고 별수 없이 살 수밖에 없는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하고, 실수할 수 있다. 연애의 성공이 결혼이 아닌 것처럼, 결혼의 실패 또한 이혼이 아니다. 그냥 삶의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결혼과 이혼 또한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조금만 긴장이 풀어지면 언제 뒤바뀔지 모른다. 서로 신의, 성실의 의무에 기초한 일반적인 계약 관계가 어느 일방의 기망 또는 불이행으로 끝나는 것이다. 함께 참고 살 수 없을 만큼 결혼 계약에 치명적 하자 또는 결함이 있거나, 인내하고 살만한 ‘결혼생활의 가치’가 없을 뿐이다.
가끔은 가구나 물건처럼 상대방을 고쳐서 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 인내하며 살 수도 있지만, 아직 연애 중이라면 굳이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가구나 물건이 아니듯, 사람은 대개 잘 안 변한다. 누구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그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혼 생활에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할 그 무엇이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어쩔 수 없다.
미셀 오바마의 말처럼 결혼은 농구팀을 꾸리듯 늘 신중해야 한다. 연애의 환상이 결혼의 현실과 일치하는 경우는 로또 맞을 확률처럼 매우 낮다. 그래도 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방송에 나온 그 부부처럼 처음부터 잘 맞진 않았겠지만, 자신의 선택을 믿고 서로를 로또라고 생각하며 ‘사랑과 존중의 연애 정신( respect & tender)’으로 잘 맞추어 나가는 것이 결혼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결혼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항해를 떠나지 않았다면 ,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최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연애해 보고 신중하게 결혼을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여름에 산 집은 빗물 누수는 잘 알 수 있지만 겨울 동파나 외풍은 알 수 없고, 겨울에 산 집은 동파나 외풍은 알아볼 수 있겠지만 빗물의 누수는 알 길이 없다. 뒤늦게 잘못된 계약을 파기하려면 정신적, 물질적 손해는 물론이고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