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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만,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The best is yet to come.

by 봄날

우리는 어떤 사실 관계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떨 때는 칭찬하고, 어떨 때는 비난하고, 또 어떨 때는 위로하고 남의 일에 함부로 나설 때가 있다. 대개는 좋은 의도에서, 선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습관적으로 남의 말을 함부로 하고 다니는 오지랖이면 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 ‘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년)의 대사처럼 딱 아는 만큼만 나서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 보고 당해보지 않으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공감은 할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은 또는 자주, 우리 주변 사람들의 상처나 아픔을 위로한다고 선한 마음에서 출발한다지만 너무 쉽게 위로의 말들을 건넬 때가 있다. 그러나 가끔은 직접 당해보고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분들의 위로의 말들이 힘이 되고 격려가 되기보단 또 다른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딱 아는 만큼만 말해야 한다.


“별일 아냐, 힘내라” “괜찮아, 울지 마라” “그냥 용서해라” “아무것도 아냐, 괜찮아”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쉽게 남의 아픔이나 상처, 슬픔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아껴야 할 때가 있다. “그래, 많이 힘들겠구나” 하고 따뜻한 시선과 함께 조용히 지켜보며 스스로 털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때로는 아무 말도 안 할 때가 위로가 될 때도 있다


동백꽃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가 다가오면 유난히 조문 갈 일이 많아진다. 직접 조문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상주를 만날 때 특별히 할 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부모가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란 있을 수 없다. 그냥 예의를 갖춘 눈빛과 상주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밖엔 드릴 말씀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힘내라고 하는 것도 한편으론 어색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힘을 내야 할 때가 수없이 많다. 굳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꼭 힘을 낼 필요는 없다. 슬픈 일을 당하거나 아픔을 겪었을 때는 그냥 그대로 그 슬픔과 아픔을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해야만 하는 것은 그저 건강만 해치지 않도록 조용히 배려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어떤 큰 슬픔이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밥때가 되면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기운내고 있는 모습은 더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오히려 무섭기까지 하다. 몇 끼 굶고 먹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지내도 안 죽는다. 그냥 스스로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된다. 큰 슬픔이나 아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땐 소리 내서 울고 망연자실해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오래전 어느 신문에서 언젠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겉으로는 무표정하게 태연한 척 아픔을 삭이고 있는 그런 모습을 비교하면서, 세월호의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들에게서 품격을 논할 때가 있었다. 너무 마음 아픈 일이라 그 일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의 모습이 더 그로테스크(grotesque) 해 보이고 극도로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들먹이며 남의 일에 참견하고 묻지도 않은 옛날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때가 스스로 제일 잘 나갔던 때라고 스스로의 한계를 단정 짓고 꿈을 잃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우리들의 삶이란 누군가와 애틋한 추억을 쌓아가는 일이고, 또한 살아가면서 그 아름다운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자주, 자꾸 과거를 들먹인다면 문제가 있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지금이 없고, 꿈이 없다는 반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절은 먼지 쌓인 유리창처럼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기에
그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유리창을 깰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갈지 몰라도.




영화 ‘화양연화’(2000년, 왕가위 감독) 중에서



누구나 모두 인생에서 화양연화(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제일 좋은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고 살아야만 삶의 희망과 꿈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 아마도 여든셋에 찬란한 생을 마감했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묘비명에 쓰여 있다는 이 말, 'The best is yet to come'은 누군가의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처럼 우리가 꿈을 잃지 않는 한 우리들의 최고, 최선의 그 시절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금을 살고, 내일을 계획하며 오늘을 챙기고 살아야 한다. 이제 과거의 옛날 얘기는 그 애틋함을 함께 했던 누군가를 만났을 때만, 또한 충고, 조언, 평가, 판단처럼 누군가가 요청하거나 물어볼 때만 해야 한다. 특히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누구나 자기보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린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그런 말들을 더더욱 아껴야 한다. “고맙습니다만,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상대방이 예의 없다고 서운해할 게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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