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
며칠 전부터 영화 버닝(Burning, 2018, 이창동 감독)중의 한 대사가 문득 생각나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일인칭 단수’를 읽고 있다가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라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영화관에서 보고 무언가 많은 메타포가 숨겨져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아서 집에 돌아와 영화 평과 줄거리를 다시 인터넷 검색을 하고 나서야 왜 그 장면이 나왔는지, 왜 주인공들이 그런 대사를 했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과는 달리, 정말 시간 가는 줄 알았던 영화였다.
영화 ‘버닝’중 해미(전종서)의 대사
영화를 보고 난 후, 삶의 의미를 잃고 그 의미를 찾고 싶은 해미의 대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우리의 삶에는 목적과 수단 그리고 의미가 중요하다. 우리는 삶의 목적을 가지고 치열하게 생활하는 중에서 너무 힘들거나 지칠 때, 또는 너무 바쁘게 살다 보면 삶의 목적이나 수단이 전도되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한다. 그리고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우울해지기도 한다. 또한 가끔은 영화의 주인공 해미의 말과 같이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어 질 때도 있다.
단지 삶이 힘들고 지칠 때보다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나 의미를 찾지 못했을 때, 우리는 특히 삶의 방향 감각을 잃고 부정적인 생각에 휩쓸리기 쉽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가슴속에서 베이스가 울리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주인공중 하나인 벤이 몰고 다니는 포르셰 911 카레라 시동음처럼 묵직한 베이스가 우리 가슴을 울릴 때가 있다.
그런 인생의 베이스가 가슴에 느껴질 때는 어떤 대상이든 사랑에 빠졌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역경을 뚫고 결국 해냈을 때, 어떤 머리 아픈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을 때, 꿈꾸던 것들이 실제 이루어져서 꿈만 같을 때 등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인생은 누구나 문제가 끊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포말처럼 사라지길 반복한다. 문제는 항상 있다.
문제를 해결했을 때는 삶이 한낮처럼 밝아지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땐 삶이 밤처럼 어두워진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삶의 과정에서 그런 끊임없이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해법을 생각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고, 문제의 답을 찾아나가고 해결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우리들의 인생도 해수욕장과 같아서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 여름 바캉스 시즌의 성수기가 끝났다고 해서 겨울 비수기의 철 지난 바닷가 식당들이 문을 닫지 않는 것처럼, 준비하고 기다리면 다시 성수기는 돌아온다. “인생은 또 왜 이래” 하고 테스 형에게 물어봐야 소용없다.
또한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꿈을 가지고 지속해서 또 다른 꿈을 꾼다면, 그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들은 매번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일들이 또 하나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을 제공해 준다. 우리가 꿈꾸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의 의미에 굶주린 자( great hunger )가 살아갈 이유를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적 성취로 인해 우리의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에 머물게 되면 우리는 자신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게 된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에게 어떠한 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그처럼 어떤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는 위기에 처한다. 아마도 영화 속의 주인공 벤의 삶이나 그가 내뱉은 말처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