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적절의 의미
지난 주말에 길을 걷다가 나무 백일홍 붉은 꽃이 아직도 피어있는 걸 보면서 마음이 쓸쓸해지고 말았다. 나무 백일홍은 유월 중순 초여름부터 구월 말 초가을까지 계속 피는 꽃이라 나무 백일홍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은 배롱나무다. 이제 가을도 깊어지고 일교차가 십 도 이상 나면서 실제로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찬바람이 분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올해는 유례없는 긴장마와 큰 태풍이 몇 개 지나가면서 나무들도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도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닌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으면 철 지난 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스스로는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동아 전쟁, 보릿고개, 육이오 동란, 새마을 운동까지 지금의 시대 정신과 맞지 않는 꼰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경우를 보고 있으면 공감도 할 수 없을뿐더러 꼰대인 내가 봐도 싫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그런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뒤늦게 피어난 그 나무 백일홍이나 가을 벚꽃을 바라보는 쓸쓸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떠날 때가 되었으면 추운 겨울까지 기다리지 말고 햇볕 좋은 가을에 바로 떠나야 한다. 언제나, 조금 아쉬울 때 떠나야 아름다운 법이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어도 추하지 않고 아름다운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한분,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는 송해 선생님뿐이다. 대개 회사나 공직은 직급 정년, 정년퇴직, 또는 임기라는 것이 있다. 굳이 그렇게 제도로서 정해 놓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직책이나 어떤 자리도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한 사람이 같은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 효율성보다는 물도 고이면 썩는 것처럼 여러 가지 폐단이 더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늦가을이 되면 나무들도 새로운 봄을 맞기 위해 붉게 물든 가을 단풍잎을 떨어 뜨리고 겨울을 준비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봄을 맞을 수 없다. 열매를 맺고도 너무 많은 수분을 품고 있으면 추운 겨울에 얼어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어서 가질 만큼 가져도, 오를 만큼 올라도, 머물 만큼 머물러도 스스로 떠날 줄을 모르고 합리화를 하고 더 욕심을 낸다. 주변 사람들이 안쓰럽게, 때로는 탐욕스럽게 바라보아도 그 사람은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일수록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날 멀리서 찾아온 친구도 이삼일 머물다 떠나야지만 처음의 그 반가운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법이다. 더운 여름날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 그 초심은 사라지고 그 집 안주인의 마음은 폭염처럼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여름 손님’ 같은 사람들이 꽤 많다. 누군가에 폐를 끼치면서도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고 미련과 욕심 때문에 미룰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미룬다. 이 세상에서 내일로 미루어서 아름다운 것은 직장인들이 날마다 사표 쓸 생각을 하지만, 가족 생각에 매번 내일로 미루는 일이다.
옛날 선비들도 나이가 들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스스로 사직을 청하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래서 공직에 있을 때의 사사로운 인연에 휘말리지 않고 후학들을 기르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우리네 자랑스러운 전통이었다. 하지만 요즘 매일매일 뉴스를 보고 있으면 아직도 자기가 일했던 기관이나 회사 주변을 맴돌며 직연(함께 일한 인연)을 이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고, 힘들게 하면서 탐욕스러운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것도 모자라 한창 앞날이 창창한 후배들까지 끌어들여 인생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 못해 분노할 때가 있다. 젊은 날 고생해서 그 자리에 오른 만큼, 이제 누릴 만큼 누리고 가질 만큼 가졌으면 새로운 인생의 모험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한다.
능소화나 동백꽃이 더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이 꽃피운 가지에서 말라죽지 않고 떠날 때를 알고 가장 찬란하게 꽃 피운 그 순간에 가지를 떠나 온전히 낙화하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자신이 몸담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또 다른 멋진 꿈을 꾸면서 세상 일에 신경 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멋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사회적 이슈가 되긴 했지만, 대학 교수로서 후학 양성의 소임을 마치고 조금 일찍 은퇴한 후 그의 꿈과 도전을 위해 대서양 무동력 요트 항해를 떠났던 분이 있었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새로운 모험을 위해 떠나는 것이다. 삶은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항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