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시선과 거리두기 2단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이종필)이라는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밀폐된 공간에 오래 머문다는 것도 두렵고, 마스크를 쓰고 두 시간 가까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영화를 못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코로나가 재확산되었지만 역발상으로 오히려 영화관에 사람이 없을듯해 용기를 내서 집 앞에 있는 영화관을 다녀왔다. 역시 생각대로 영화관 좌석은 한 칸씩 띄어 앉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총 다섯 명이서 여기저기 십 미터 이상 떨어져 앉아서 마치 부산 앞바다의 오륙도와 같은 모습이었다.
영화 포스터에서 90년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라 어둑어둑한 초겨울 저녁에 따뜻한 추억 여행이 될 것 같은 기대가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영화가 좋다’와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특별히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고 영화 제목과 소개 프로그램만 봐도 대충 영화의 내용을 알 것 같아서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영화의 탄탄한 구성과 사회의 문제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나름 좋은 평점을 줄 수 있는 영화였다. 특히 여주인공 세명의 호흡이 잘 맞았고 연기 또한 훌륭했다.
그 영화의 가장 큰 울림은 마지막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여주인공중의 하나인 정유나(이솜)가 같은 팀의 대졸 여사원이자 은근히 매사 이솜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대리에게 승진 후 던진 말,
이 한마디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타이틀롤이 올라가는데도 금방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한테 하는 말 같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행복과 불행은 우리들 서로의 상호 관계에서 출발하고 기인하는 것이 삶의 진실이고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세상과 떨어져 사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삶을 살 수도 없고, 아무런 인간관계가 있을 수 없는 무인도로 가서 살 수는 더더욱 없다.
언제가 보았던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1)란 영화가 생각난다. 비행기 사고로 우연히 망망대해의 무인도에 떨어지고 그 섬에서 배구공(윌슨)을 친구 삼아 대화를 나누고 살아가던 모습에서, 우리가 싸우고 지지고 볶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새삼 일깨워주었던 영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방법은 있다.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의 삶,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사는 남의 삶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가 삼성전자 주식을 이주일 전에 6만 원에 샀는데 그동안 만원이나 올라 7만 원에 팔았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멀쩡하던 나는 갑자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고 불행해지고 만다.
내게는 아무 잘못도 없고 내가 무엇을 시도해서 실패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에게 한심해지고 자괴감을 느낀다.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란 별로 아름답지 못한 말이 현실로 다가온다. 어찌 보면 다른 사람을 보고 배가 아픈 건 나의 삶이 없다는 징조일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처럼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함께 어울려 어울렁 더울렁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웬만큼 인생을 살았으면 지적으로, 경험적으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을 부정할 수 있어야 우리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들을 낳아주신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게 특별한 관심이 없다.
가끔은 누군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을 물어보는 실례를 한다면 오지랖이거나 그냥 인사치레로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음에 또 오랜만에 만나면 똑같은 말을 다시 물어본다. 내게 관심이 없다는 반증이다. 그런 사람이 친구라면 멀리하고, 연인이라면 빨리 헤어져야 상처 받지 않는다.
때로는 가족조차도 서로 관심이 없어 불화를 만들고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우리들의 부모님들도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면 이젠 그들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고 그들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식들도, 부모들도 서로 행복해질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평생을 자식들 주변을 맴돌면서 자식들을 위한 삶만 살다 보면 먼 훗날에 인생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때 가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란 말은 호소력이 없다. 하늘을 나는 새들조차도 새끼를 그렇게 키운다. 오히려 자식들에게 부담만 줄 뿐 자식은 자식이다, 부모가 아니다. 자식들도 그들 자신의 치열한 삶을 살아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과 자식들을 위한 삶의 아름다운 균형이 필요하다.
코로나 시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의 위험과 확산을 줄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을 불행에서 구하고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사회적 시선과의 거리두기를 해야만 한다.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조금은 과장된 말을 신뢰하고 스스로의 삶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의 시선과 거리를 두고 혼자 영화도 볼 수 있어야 하고, 혼자 밥도 먹고 혼자 여행도 갈 수 있어야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우리들의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 선후배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보너스이고 감사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삶에 집중할 수 있고, 자신만의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