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과 역지사지
지난 주말, 휴일 아침인데 일찍 잠이 깼다. 침대에 누운 채로 소리를 줄이고 TV를 켰는데 우연히 ‘열상 앨범 산’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TV 소리에 잠을 깬 아내도 같이 경남에 있는 신불산의 억새숲길을 보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던 아내가 갑자기 남한산성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산성 산책로를 걷고 오전리에 있는 산성 안에서 재배한 농산물 장터에 들러 도토리묵도 사고 잡채를 만들 재료인 시금치, 쪽파 등을 사 오자고 제안했다.
며칠 전 많은 양의 늦가을비가 내린 후 날씨가 쌀쌀해지고 가을 단풍도 모두 떨어진 뒤였지만 오랜만에 산행을 제안한 아내를 배려해서 바로 일어나 세수를 했다. 그리고 집 밑에 있는 유명 베이커리에서 커피와 빵을 사서 아침 대신 먹으며 가자고 말했다. 차를 베이커리 앞에 임시주차를 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아내가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내가 좋아하는 작고 따뜻한 식빵을 사 왔다.
너무 오래 걸렸던지라 왜 늦었느냐고 묻기도 전에 아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먼저 꺼냈다. 우리나라도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시대가 바뀌면서 아침을 빵과 커피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터라 그런지 휴일 치고는 이른 아침인데도 동네 어르신들이 빵과 커피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오전 아르바이트하는 직원이 일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빵을 썰고 포장하는데 줄을 선 손님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본인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세월아 네월아 일을 했던 것도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주인이 보고 있지 않더라도 늘 ‘주인을 의식하고 일하는 것’이 진정한 ‘주인의식’이라고 가르쳐주고 싶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일한다고 했던 그 직원을 이번에 또 만났나 보다 했다. 하지만 얘기를 계속 들어보니 오래 기다리게 된 특별한 원인은 딴 곳에 있었다. 나는 남한산성 행궁터 앞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수 있을까 불안해하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출발과 함께 주문대 앞에 빵을 사기 위해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칠십 전후로 보였던 어르신들의 얘기를 시작했다.
한 어르신은 빵을 주문하고 캐셔가 계산을 마치고 나면 또 다른 빵을 추가하기를 두 번이나 하는 바람에 계산을 다시 해야 하니 자꾸만 늦어진 데다 , 빵을 주문할 때 캐셔가 미리 물어볼 땐 가만히 있다가 빵을 넣어갈 쇼핑백을 달라해서 백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니 화를 내서, 그 캐셔분이 그럼 이번은 그냥 드릴 테니 다음엔 그리하셔야 한다고 친절하게 말씀을 드렸다고 한다.
또 다른 어르신은 빵과 커피를 주문하고 동그란 진동벨을 받아서 자리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진동벨이 울리면 주문대로 가서 빵과 커피를 받아가면 되는데, 진동벨을 들고서 캐셔에게 빵이 왜 안 나오냐고 재촉하면서 대기줄에 같이 서 있었다고 했다. 그 장면들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집 밑에 있는 카페에서 어르신들이 들어오면 주문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충분히 상상이 갔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 번째는 이래서 세대 간의 갈등이 생기는 거구나 하는 공감이고, 두 번째는 시대가 달라지고 세상이 바뀌었으면 당대인 젊은 세대들과 함께 생활하고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하기 싫어도 배우고 업데이트해야만 품위 있고 편안한 삶을 그들과 함께 영위해나갈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평소에 양비론을 제일 싫어해서 정치인과 언론인, 특히 언론은 어떤 사안이든 기계적 균형을 맞출 생각하지 말고 사회나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옳고 그름, 시시비비를 반드시 가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비록 내가 중장년 시대에 서 있다고 해서 마냥 이해해 주고 기다려달라고 젊은 친구들에게 충•조•평•판 할 생각은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 중장년 세대와 노인 세대가 지금의 시대에 맞는 삶의 방식으로 바꾸고, 배우고, 고치고, 변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가정과 사회, 아니 세상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에 산다 한들 나이만 먹었다고 해서 존중받을 수는 없고, 스스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누구를 존경한다는 것은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누구를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가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존중받을 수 없는 사람까지 존중하면 상대로부터 무시당하거나 기분이 나빠질 수 있다. 또한 그 존중은 비굴하거나 비겁한 것일 수도 있다. 마땅히 누구나 존중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존중해서는 안되고 가려서 해야 한다.
옛말에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천하를 준다 해도 받지 말라고 했다. 서로 예의를 갖추는데서 모든 관계는 시작된다.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양식을 먹을 때의 테이블 매너처럼 좌빵 우물, 포크와 나이프는 제일 바깥쪽부터 사용하는 것들처럼 외우는 것이 아니고, 서로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만큼, 내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나만큼 다른 사람들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고 나에게 하듯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면 된다. 외울 필요도 없고 아주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