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기술자들과 지적 게으름
“벨기에 남자가 한 주에 두 번, 자전거를 타고 독일 국경을 통과했는데 그의 소지품은 언제나 모래가 가득 든 여행가방이었다.
독일 세관원들은 밀수품이 숨겨지지 않았나 매번 뒤져봤지만 허사였다.
때로는 밀수품을 적발하기 위해 모래를 죄다 쏟아보기도 했다.
그러던 그 벨기에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지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야 진상이 밝혀졌다.
그가 밀수한 건 자전거였다.”
한국경제 (2008.06.08)
그 똑똑한 벨기에 남자는 모래가 든 여행가방을 세관원의 시선집중용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실제로는 자전거 밀무역을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사실 관계의 혼란과 판단 오류에 있어서 겉으로 나타난 현상이나 형식에 너무 몰입하고 치우치다 보면 정작 어떤 사실의 본질과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때로는 생각의 전환, 즉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보아야 한다.
어떤 사실 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사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의 주장을 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하여 비평을 할 때 거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거나, 옳고 그름에 따라 어떤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주의 주장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언어의 기술이다. 대개 지적 수준이 낮거나, 아니면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이 잘 속아 넘어간다. 요즘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금방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은 복잡하고 진실은 단순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이런 본질을 벗어난 언어의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어떤 사실관계에 대한 진위를 충분히 파악하고 얘기하는 것이 먼저 일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인터넷 기반이 세계에서 가장 잘 되어있고 정보화 사회의 첨단을 걷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노소를 떠나 조금만 노력을 하면 글로벌 SNS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방송채널, 뉴스만 모아놓은 포털 뉴스 등에서 어떤 사건이나 사안에 따라 금방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고, 또한 다양한 관점에 따른 여러 의견들도 찾아서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청년이든, 노인이든 그렇게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고 말해야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지 않으면 정보화 고속도로를 놓아두고 익숙한 오솔길만 걷는 것과 같다. 물론 오솔길을 걷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며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우기면 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학습하고 똑똑해지면 그것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집단지성이 된다. 집단지성이 올라가면 그 사회는 그 수준에 맞는 훌륭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와 현명함이 생긴다. 미제, 일제를 선호하며 살았던 우리 세대는 세계 최고의 힘과 부를 소유한 미국 대통령 선거의 혼란, 그리고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보복 전쟁을 겪으면서 보고 느끼는 점이 많다. 20세기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미국, 일본을 제치고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이룬 21세기, 당대의 각 세대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우리의 보람으로 삼는다.
문제는 우리, 자기 자신이다. 불행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운명을 쉽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삶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옳고 그름에 대한 사실 관계 파악의 작은 노력만 있으면 국가나 사회, 기업이나 가정이 올바른 길로 전진할 수 있고, 본질을 벗어난 마술과 같은 원리의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는다. 특히 옳고 그름을 떠나서 좋아하는 프로 야구팀을 응원하듯 네 편, 내편으로 나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란한 언어의 기술자들에 휘둘리지 않아야지만 단군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당대의 훌륭한 젊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나라가 이루어낸 유사 이래 가장 국운이 상승하고 있는 경제와 문화의 강대국,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함께 누리고 즐기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리적으로 잦은 외세의 침입과 삼십오 년의 식민지배, 동족상잔의 육이오 전쟁 등 우리나라의 지난하고도 불행했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우리의 불행했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체념하지 않았다. 세계열강들 속에서 우리의 운명을 똑바로 직시하고 도전에 응전한 결과, 불행한 운명에 길들여지지 않고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왔다. 모두 우리 민족의 뛰어난 기상과 존경스러운 조상들(예나 지금이나 양심의 털을 모두 뽑아서 덕 다운을 만들어 입고 싶은 부패한 탐관오리들은 제외) 덕분이다.
지금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복잡다단해지는 요즘의 삶이란 공부하지 않으면 무식이 늘고,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이 늘고,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이 말은 젊고, 나이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얼마나 세상을 향하여 깨어있고, 열려있는지에 달려 있다. 노소를 떠나서 이젠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지금까지 학습한 지식과 경험한 지식만으로는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기엔 이미 매일매일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