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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현실에 길들여 지거나, 익숙해지지 말 것

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by 봄날


어느 날 문득, 이렇게 계속 열심히만 생활하면 미래에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직장 생활의 고단한 삶에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매일 회사 일에 씨름하다가 밤늦게 집에 와서 자고 또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마을버스 타고,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내리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회사에 도착해서 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 때가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비록 서울 외곽의 뉴타운이었지만 십 평대 후반의 내 집도 마련해서 겉으로 보기엔 부족할 게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아이와 함께 육아에 지친 아내의 유일한 희망이자 즐거움이란 하루 종일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이 집에 도착하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오손도손 얘기하며 저녁을 함께 먹는 그런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하루 종일 회사 일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나는 밤늦게 집에 도착하면 조용히 TV나 신문을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휴식을 취하며 또 내일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렇게 각자 독박 생계, 독박 육아의 맡은 역할에 따라 열심히 생활하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우리 둘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어긋나고 작은 불만이 쌓여가면서 점점 더 소통이 부족하게 되었다.


겨우 일요일 하루 쉬는 날마저도 봄, 가을 좋은 계절에는 회사에서 전사 또는 부서 단위로 가는 등산, 야유회, 특근 등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쉴 수 없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훗날 나는 내가 팀장 이상의 직책이 되었을 때, 주말이나 쉬는 날에는 그런 종류의 단합을 위한 회사 행사를 만들어 후배들을 불러내지 않았고, 또한 ‘저녁이 있는 삶’을 지켜주기 위해 오후 7시 넘어서는 일 년에 한두 번,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후배들에게 회사일로 연락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는 소통 부족과 서로의 기대치에 대한 차이로 인해 부부싸움을 할 때도 많았다. 중요한 건 오히려 그런 부부싸움이 서로의 불만에 대해 소통하게 하고 서로의 힘든 점을 이해하게 하는 건강한 소통 과정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 해보는 결혼 생활의 이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의 삶은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지나갔고 서로가 서로에게 대충 포기할 건 포기하고, 바랄 것만 바라는 타협을 하면서 평화를 유지해가게 되었지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서로를 애정 해서 임시 미봉책으로 냄새가 올라오는 하수구 구멍을 쓰다만 행주로 막아 놓은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은 알겠지만 냄새나는 하수구 구멍을 막아놓으면 얼마간은 냄새가 올라오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냄새는 고이고 썩어서 더 심한 냄새가 새어 나오거나 잘못하면 언젠가는 폭발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세면대에 물이 넘치고 새는 것은 상수도의 문제가 아니라 물이 흘러내려가야 할 하수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처럼 임시방편으로 냄새나는 하수도 구멍을 틀어막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구멍을 막지 말고 오히려 시원하게 뚫어서 순환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도 대부분 혈압이 오르고 기가 막힌다던지 하는 혈관과 호흡기의 순환기 장애로 삶이 위험에 놓이게 된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 방치하면 죽음에 이르는 원인이 되는 것과 같다.



치열하게 생활하면서 가끔은 삶이 꽉 막힌 것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한 번 씩 보았던 영화가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5)이었다. 주인공이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교도소라는 통제된 곳에서 억압에 길들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치밀한 계획과 반전으로 그 교도소를 탈출하고 그가 꿈에 그리던 멕시코의 바닷가 지와타네호에 도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답답한 현실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너무나 자유로운 삶이 되었고, 또한 그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의 불행한 삶과 비교해 샤덴프로이데(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 같은 위로를 받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저 벽을 원망하지. 하지만 시간이 가면 저 벽에 기대게 되고 나중에는 의지하게 되지. 그러다가 결국엔 삶의 일부가 돼버리는 거야"




영화 "쇼생크 탈출"중에서


영화, 쇼생크 탈출(1995)


가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고 내 삶을 결정한다고 생각해 직장 생활이 싫어지면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몸과 마음 또한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했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이란 말처럼 잘 먹고 잘 쉬고 틈틈이 책 읽고 영화를 보면서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지금의 현실에 길들여지거나 익숙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문득,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교도소 방송국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려놓자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노래, 편지 이중창 ‘저녁 산들바람이 부드럽게’가 교도소의 마당에 울려 퍼지고, 높게 매달린 스피커를 바라보기 위해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장면이 생각난다. 짧은 한순간이었지만 쇼생크 교도소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용산 가족공원


방이 지저분할 때는 천장을 보면 된다. 천장은 늘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또한,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하늘을 보면 된다. 하늘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물론 그 푸른 하늘마저도 먹구름이 밀려올 때가 있지만, 우리의 삶을 그런 먹구름으로부터 지켜주는 방어기제가 현실 부정이나 투사가 아닌, 자신만의 그 어떤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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