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one door closes, anothet door opens
인생에서 아무 걱정 없게 살았던 때가 있었던가 돌이켜 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그때는 없었다. 와인병에 붙은 레이블이 너무 예쁜 Far niente는 미국 나파밸리의 Far Niente Winery의 와인으로 라틴어로 do nothing 이란 뜻이라고 하는데, 이태리어 Dolce far niente, 무위 안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한 게으름’이라고 한다.
'Far Niente'는 그 와이너리 건물 앞의 돌에 새겨져 있던 글로서 이탈리아의 'il dolce far niente'에서 나온 말로 'without a care' 즉 '근심 걱정 없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달콤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수 있다니 당연히 걱정이 있을 리 없다. 한국에서는 장&고 커플의 결혼식 때 건배주로 사용했다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아무 걱정 없게!!!”
과연 우리는 아무 걱정 없게 살 수 있을까. 결론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삶 자체가 크고 작은 근심거리일 뿐만 아니라, 그 걱정거리들과 항상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단지, 중요한 건 그 근심 거리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심거리가 가장 작은 근심일 수도 있다. 물론 그 돈마저 없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가장 큰 근심거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나라의 복지 정책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가 그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심거리를 줄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심거리도 많다. 죽고 사는 근심거리가 아니면, 대개는 자신의 한계나 능력을 뛰어넘는 욕심이나 탐욕에서 비롯된 근심일 때가 많다. 그래서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때가 있다. 해결해 줄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걱정거리를 없애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앞질러 출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매일 회사에서, 가정에서, 주변에서 이런 잔소리를 듣고 있다. 물론 대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된다. 일상을 생활하면서 너무 지나친 근심,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 근심으로 많이 힘든 사람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무책임한 말보다는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라는 희망적인 말이 좋겠다. 인생은 다가오는 문을 하나씩 열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Like you know it all, 홍상수, 2009), 쓸데없이 걱정해주는 그 당사자는 “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는 말도 꼭 빼놓지 않고 한다. 조언을 구하지도, 면담을 요청하지도 않았건만 이런 예의 없는 대사를 건네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해주고는 스스로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을 눈치챘는지 말끝엔 항상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해서 더 기분 나쁘게 만들고 지나간다. 충고든, 조언이든 언제나 누군가가 요청할 때만 하는 게 정석이다. 단, 가족끼리만 빼고.
가정에서 부모의 다른 이름은 ‘걱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너무 늦게 자지 말고 일찍 자거라” “ 날씨 추운데 옷 따뜻하게 입고 가라” “ 비올 것 같으니까 우산 가져가라” “ 게임 그만하고 공부해라” “ 편식하지 말고 나물 반찬도 먹어라” 등, 부모는 늘 사랑으로 걱정하는 일이 그들의 본업이기 때문이다. 항상 잔소리나 걱정 때문에 아이들이 엄마에게 불평하면 나는 그때마다 아내 옆에서 대답해준다. “엄마, 아빠의 다른 이름은 ‘걱정하는 사람’이거든.” 그래도 아이들에게 너무 지나친 걱정이나 관심은 해로울 뿐이다.
연애할 때와 똑같다. 처음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하고 그때그때 모두 다 말하고 표현한다면, 그 연애의 끝은 다시 혼자가 되는 역설처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의 절반만 하는 것이 오히려 그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충. 조. 평. 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언제나 누군가의 요청이 있을 때만, 그렇지 않으면 나이 들고 외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