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 vales bene, valeo
코로나 시대에 넘쳐나는 택배물량을 배달하다 과로가 겹쳐 또 젊은 택배기사님이 과로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 택배 노동자의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한 말씀이다. 올해만 벌써 여덟 번째라고 한다. 마음이 아픈 건 당연할뿐더러 나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코로나 방역이 강화된 이후로는 외식을 한다거나 카페에 내려가는 것조차도 마음이 불편해 그만두었다. 매일 택배 배달 상품이나 퀵서비스 주문 상품이 하루 평균 네댓 개가 배달된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 필요한 것들을 주문하고 나면 친절하게도 주문 상품 배달 진행과정을 계속해서 알림을 매 단계마다 보내준다. 주문하고 상품이 도착하고 배달이 완료되고 난 후까지 대략 대여섯 번의 모바일 알림이 울린다.
특별히 급할 것도 없지만 이제 총알배송 덕분에 주문 후 이틀 이상 걸리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서 모바일에서 배송 진행과정을 챙겨보는 습관이 생겼다. 사실 내가 꼭 ‘필요한 상품’(NEEDS)은 제때에 배달이 되어야지만 그 쓰임새에 해당된다. 마트에서 주문하는 햇반, 생수, 농수산물 등을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발견해서 구매하는 ‘원하는 상품’(WANTS)은 제때 배달 안되고 하루 이틀 늦게 배달이 도착해도 별 문제가 없다. 단지 내가 조바심만 내지 않는 다면 말이다. 예를 들면 패션상품, 생활용품, 취미용품 등이다.
택배 배달시스템이 점점 발전해서 몇 시쯤 배달 예정이고, 경비실, 문 앞 등 어디에 배달할 건지 입력하면 그 장소에 비대면 배달해주고 돌아가면서 사진까지 보내주면서 배송이 완료되었음을 문자로 보내준다. 가끔은 이렇게 빨리 정확하게 배송되는 것에 감탄하면서도 추석 물류대란 때 알게 된 택배 노동자들의 수고와 고충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너무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한국, 특히 서울살이가 행복하고 좋긴 하지만 이런 빠른 택배 시스템이나 24시간 편의점, 식당 같은 경우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다른 누군가가 편리하고 행복해진다면 결국은 서로가 제로섬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다.
해외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니 이제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도 인터넷이나 글로벌 SNS만 봐도 이해할 수 있다. 해외 선진국 어디에도 한국처럼 휴일도 없이 유통업체가 영업을 하고, 편의점은 24시간 불이 밝혀져 있고, 택배는 당일 총알배송을 경쟁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조금 느리게 산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보다 불행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의 생활문화 모두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 문화 선진국에 이어 우리의 생활 습관도 조금은 더 여유 있게, 느림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선진국형으로 바뀔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서로 나누며 즐기는 그들의 생활 문화가 부러울 때가 많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가 빠름을 즐기는 만큼 누군가의 느림을 질책하고 여유를 빼앗는 것은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서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을뿐더러, 서로의 행복을 빼앗고 무너뜨리는 결과밖에 얻을 것이 없다. 맛있는 요리를 위한 기본은 숙성과 발효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행복한 삶도 결국은 여유로운 시간과 적절한 타이밍이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수고하고, 고생하시는 택배 기사님들이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을 겪지 않도록 배송이나 배달의 재촉과 캄플레인만이라도 하지 않는 배려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요즘은 얼마나 배송 시스템이 좋은지 조금만 늦어도 왜 늦는지, 어디쯤인지 모두 알려주고 배송사고는 거의 없다. 단지 조금 늦게 도착할 수는 있더라도 오지 않는 것은 없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으로 우분투(UBUNTU)가 근래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 또한, 로마인들은 편지를 쓸 때 그 첫 구절에 “Si vales bene, valeo.”라고 썼다고 한다. “당신이 평안하면 나도 평안합니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얼마나 따뜻한 연대 정신이고 아름다운 동행인가, 새삼 기원전후 로마제국의 문화가 꽃을 피우고, 왜 세계를 이끌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어느 트위터리안의 글
우리의 택배기사님들이 평안해야지 우리도 평안할 수 있고, 우리 택배 기사님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야 우리 모두도 함께 행복한 저녁을 맞을 수밖에 없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도 좋지만,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불철주야 노심초사한다는 정치인들이 나서서 분류작업이든, 적절한 택배 노동시간제한이든 법과 제도를 바꾸고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정치를 보고 있으면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