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은 입에서 생기고, 근심은 눈에서 생긴다

경계인

by 봄날


트위터에서 팔로윙하고 있는 어느 트위터리안이 최근에 올린 글을 보고 격하게 공감이 가서 하트를 눌렀다.



“60대가 되면 정신적인 성장은 멈추고 아집만 늘어난다. 모두들 자기 이야기만 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에는 귀를 닫는다. 유튜브와 카톡에서 얻은 정보로 세상을 읽는다. 학력이나 경력과는 신기하게도 관계가 없어 보인다. 60대에는 인간 평준화가 달성된다. 내 주위의 모습이다.”




최근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면서 조금 줄어들던 확진자수가 오미크론으로 인해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모두들 백신을 부스터 샷까지 맞아서 그런지, 그래도 한번 보자고 하는 지인들이 무척 많아졌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코로나 상황을 봐가면서 보자고 양해를 구하곤 한다.


많이 미안한 마음이지만 다 함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뉴노멀이니 이해를 바랄 뿐이다. 매일 이루어지는 질병관리청의 발표와 그들의 호소를 들으면서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생활할 수는 없다. 아마도 정점이 지나면 곧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듯하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어차피 인생은 길다.



코로나 사태가 몇 년째 길어지면서 이제 제법 혼자만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일상이 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다. 세상만사 불필요한 주변 일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점이 많다.


혼자 있다고 외로운 것은 아니다. 혼자 있기 싫어하니까 외로운 것이다. 외로운 사람은 어차피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그 외로움을 채울 수 없고, 더 외로워질 뿐이다. 그 트위터리안이 올린 다른 글이 생각난다.




“친구와 통화하는데 어떤 친구를 거론하며 자기 이야기만 하니까 함께 술 마시기 싫다며, 통화 중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끊음. 옛날 어떤 상사는 윗사람과 술 마시면 힘들고 여러분과 마셔야 즐겁다고 했다. 모두들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 이치를 통달한 자신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듣기는 싫고.”



가끔은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들과의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늘 후회하는 것이 있다. 약속 장소에 나가기 전에 미리 아이폰 일정 알림에 두 시간으로 알림 메모를 하고 나간다. 얘기를 하다가 조용히 아이폰 메모 알림이 뜨면 십 분 후 일어나기 위해 대화를 정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늘 모임을 하다 보면 막상 상대방의 얘기에 집중하고 반응하느라 그 알림 메모를 놓치기 일쑤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하고 싶은 얘기의 절반만 하고 더 많이 들을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남에게 충고를 안 함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것. 나는 이게 반복해서 말해도 부족할 만큼 두렵다.”



김 혼비, ‘다정소감’ 중에서



먼저 묻기 전에는 후배들에게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이제 이 말이 반복해도 부족할 만큼 두려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과 젊다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젊음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줄 아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지천명, 세상 이치를 다 아는 것 같지만, 택도 없다. 매일매일 잘못하고 반성하고 깨닫는다. 늘 세상의 변화를 학습하고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오직 인간만이 퇴행한다. 몸은 오늘을 살고 있지만, 정신은 어제에 머물고 있는 경계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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