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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n 23. 2023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현상유지


 얼마 전 욕실 세면대의 팝업 물마개가 고장이 났다. 수리기사를 부르고 겸사 욕실 두 군데의 수전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 욕실의 수전을 바꾸고 팝업 물마개를 수리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아내는 수리기사가 돌아가고 난 후에도 계속 뒷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욕실 수리를 하고 있는 동안 유튜브에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OST를 듣고 있던 나는 미안한 마음에 커피 한잔을 내려와 수고한 아내에게 서비스했다.



 그리고, 정리된 두 욕실을 둘러보고 와서는 집안일은 ‘현상 유지’가 목표인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한 시간 동안 수전도 바꾸고 팝업 수리도 했지만 얼핏 보면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회사 여자 후배가 결혼 후 매일 아침에 욕실을 사용하고 난 후, 퇴근 후 다시 욕실을 사용하면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스트레스성 탈모가 아닌지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친정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난 후 욕실 머리카락의 수량을 되묻고는 웃으면서 시집가기 전에도 늘 그랬다고 하면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자신이 한 번도 욕실 청소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는 욕실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고 늘 정리된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었다.



 현상유지, 그처럼 늘 집안일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유지하는 것이다. 어지럽혀지면 정리하고, 사용하고 나면 다시 깨끗하게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부족하면 채워 넣고, 고장 나면 고쳐놓는 것이 가사노동의 본질임을 깨닫고 가족을 위해 평생 표 나지 않는 헌신을 해온 아내에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희원, 호암미술관


 누군가 방이 지저분하면 천장을 보라고 말했다. 천장은 항상 깨끗하게 치워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머리가 복잡할 때는 거실의 천장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사노동에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똑같은 일을 하면서 질리지 않는 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며 사명감이고 헌신이다. 가사노동의 본질이 현상유지인지라 아무리 일해도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생색나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해온 주부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꾸준함은 재능이다.



 집안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가사노동의 본질이 ‘현상유지’인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늘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이 들수록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마음이 휘둘리면 삶의 태도가 된다. 우리가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은 자기 연민과 자기주장, 그리고 자기 고집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또한, 말이 거친 사람은 화가 많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을 욕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초라한 탓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좋으면 밖에 싫은 게 하나도 없다.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지만, 화가 쌓이면 그 일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아침마다 수염을 깎고 세수를 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매일매일 정리 정돈하지 않으면 마음의 쓰레기가 쌓이고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방안을 청소하듯 아침에 한번 청소했다고 해서 그 방이 계속 깨끗하게 유지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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