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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n 08. 2023

바쁘게만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변하기 전에,

하루살이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SNS를 둘러보고 있는데 하루살이 한 마리가 노트북 주변을 날아다니며 귀찮게 한다. 몇 번 참아봤지만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오른손을 뻗어 하루살이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하루살이는 어찌나 빠른지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갑자기 쓸데없는 승부욕이 발동해서 벌떡 일어서서 잡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도망가는 하루살이 한 마리를 따라다니며 허공에 손뼉을 치듯 몇 번 잡기를 시도했지만 사활을 걸고 도망 다니는 하루살이의 최선에는 역부족이었다. 옆에 앉아 트위터를 둘러보던 아내가 산만하다며 핀잔을 주었다.


비조불통(飛鳥不通) 계곡, 인제


 어차피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를 쓸데없이 잡으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보기가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아내는 하루살이 한 두 마리는 살 수 있는 공간이어야지 건강한 생활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래전 ’페이스북에서 함께 한 시간‘에 올려놓은 과거의 오늘, 아니타 무르자니의 글(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을 보게 되었다.



  그 글을 다시 읽고는 조금 전 위협을 무릅쓰고 먹이를 찾아 열심히 날아다니던 그 하루살이를 바라보면서 아무리 열심히 생활한다고 해도 운이 나쁘면 그 하루마저도 온전히 살아낼 수가 없겠구나 하고 철학적인 사유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나 역시 그 하루살이처럼 그저 늘 바쁘고 조급하기만 했던 삶을 살았던 것 같았다.



 또한, 그 글처럼 항상 자신을 칭찬하기보단 스스로의 부족함을 나무라고 채찍질했다. 언제나 매사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기에 바빴다. 수도승도 아니거늘 때로는 샘솟는 에너지와 욕망을 절제하고 억누르기만 했다. 하루살이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는 바보처럼 살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선택에 맞춰 사는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방태산


 특히, 20,30,40대에는 왜 스스로를 혼내기만 했을까. 왜 따뜻하게 감싸주고 자주 칭찬해주지 못했을까 후회했다. 나라를 구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누구처럼, 또는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읽었던 책들, 내가 여행 다닌 곳들 그리고 내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이 나를 더 성장하게 했다. 반면, 성공하려고 노력했던 것들은 진정한 내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가면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저 유일한 성취라면 이제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내 마음을 돌보지 않고 애쓰다 보면, 결국 그들에게 만만한 사람,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나를 희생하는 것과 나를 잃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들을 배려하며 억지로 관계를 이어간다 한들  그런 불편한 관계는 반드시 깨지게 되어있다. 바쁘게만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변하기 전에,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제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또 내 마음이 무너지거나 상처 입지 않는 선에서 남들에게 베풀고 배려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에게 그냥 쉬운 사람이 되고 만다. 그리고, 남들이 자신을 너무 편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남들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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