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중심
’아바타:물의 길‘을 보고 왔다. 세 시간 이상의 러닝타임을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아내를 위해 샤롯데 상영관을 예매하고 편안한 츄리닝 팬츠를 입고 집을 나섰다. 2009년에 아바타를 보고 난 후 지금까지 컴퓨터 그래픽 발전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눈 맛이 화려한 CG와 나비족의 대서사를 함께하며 아바타 영화를 보고 나니 아쿠아리움에서 금방 나온 기분이었다. 영화 줄거리는 오히려 가족 영화 같았지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3년 동안 준비한 나비족의 대서사와 CG의 화려한 영상미만으로도 돈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었다. 4억 달러, 초당 2억이라는 제작비를 짐작할 수 있는 영화다웠다.
아침부터 서둘러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점심때가 지나 허급지급 점심을 챙겨 먹고는 허기를 면한 아내가 한마디 했다.
“여보, 아바타에서 나비족이든 물의 부족이든 아내가 더 용감하고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 남자들이 가정의 중심인 줄 알고 살았는데 결국 가정의 중심은 여자, 아니 어머니인 것을 또 한 번 깨닫네요”
모든 가정이 그렇듯 특히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면, 가족은 결국 아내 또는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으면 가족의 결속력도, 화목함도 두 배, 세배 또 다른 가족 구성원중 누군가의 노력과 배려가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은 모르겠지만 점점 더 살아갈수록 가정의 중심은 남자, 남편, 아버지가 아닌 여자, 아내, 어머니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로 꼽히는 ‘나의 아저씨’ 또는 ‘나의 해방일지’ 같은 드라마를 보더라도 금방 이해가 된다. ‘나의 아저씨’에서 삼 형제의 우애가 그들의 어머니(고두심)가 아닌 아버지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나의 해방일지’ 역시 삼 남매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후 홀로 남은 아버지(천호진)와 집안 분위기는 너무 썰렁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곧 재혼을 했고, 삼 남매 모두 각자의 삶으로 독립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할 때는 아내보다는 하루라도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 얼마 전 신문에 50,60대 남성 1인 가구 고독사가 하루 평균 10명 이상인 것을 보고 남자들이 평소 얼마나 여자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아내가 말했던 얘기 중에 할아버지가 없는 할머니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고 편안한 얼굴이라며 내게 자주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팔로잉하는 육십 대의 어느 트위터리안은 팔순이 훨씬 넘은 성치 못한 노모가 건강한 아버지를 부양하는 것을 지켜보며 남자의 무병장수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불행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 또한 우리의 죽음도 윤리적으로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비난받아서도 안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건강관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단순히 그냥 오래 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은 있다.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으로 잘 생활하고 주변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폐 끼치지 않는 삶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건강 생각도 해야 하지만 건강한 생각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네 번 결혼하고 네 번 이혼한 대배우 김지미 선생님께서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다른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씀에 백번 동의한다. 새해에도 그 부족함, 그 불안함에 맞서기 위해 용맹정진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