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편안함
이태원 참사 뉴스를 보면서 못난 어른들 때문에 또 꽃다운 청년들이 많이 희생된 것을 알고는 마음이 미어졌다.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 날씨마저도 며칠 째 흐리더니 모처럼 햇볕이 좋았다. 갑자기 아내도 나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세탁기 빨래를 꺼내고 햇살이 비추는 베란다 빨래걸이에 타월을 널면서 우울했던 마음이 맑아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내와 같은 생각, 같은 걱정을 하면서 하루하루 소중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스스로를 깨닫고는 혼자 실없이 웃는 일이 많아졌다. 부부는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인 것은 맞는데, 이제 점점 일상의 생각도 같아지고 있다. 가사노동을 조금이나마 함께 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다.
오후 열두 시가 되면 재택근무하는 아이들 점심 챙길 생각, 햇볕이 좋으면 빨래 널 생각, 저녁 여섯 시가 되면 함께 밥할 생각, 밤 열 시가 다가오면 음식물쓰레기 마감시간이 문득 떠오른다.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나니 아내가 이태원 참사 뉴스를 계속 보고 있으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며 여주 강천섬으로 바람도 쏘일 겸 나들이를 다녀오자고 말했다.
모처럼 햇볕도 좋고 우울할 때는 광합성을 위한 산책이 최고라며 함께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가는 내내 아내는 과거의 내게서 느꼈던 여러 가지 섭섭했던 일들과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부당함을 명랑하게 늘어놓았다. 물론, 과거의 나였으면 점점 기분이 나빠지면서 아내와 그 사실관계를 놓고 언쟁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생계를 떠난 삶의 여유와 함께, 아내가 과거의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니 오늘 나들이에 ‘기분이 매우 좋구나’ 하고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기까지 삼십 년이 넘게 걸렸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그런 이야기가 나를 비난한다고 생각했다. 주말 교통체증과 게으름을 떨치고 나들이에 나선 선의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이성적 판단 때문이었다.
아내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그렇게 명랑하게 지난 얘기를 하면서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털어낸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서운했던 얘기,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사는 게 가족이다. 심각한 얘기는 전문가와 해야 하고 맨날 공자님 같은 바른 얘기만 하면 아이들도 식탁에서 멀어진다. 교육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인간이 뭐, 막 대단한 존재 같지만 이런 깨달음을 하나 얻기까지 매일 함께 살아도 삼십 년이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아내가 내게 가스라이팅 했던 말처럼, 누구나 죽을 때 또는 몸이 아플 때 가장 그리워하는 것, 소원하는 것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라고 한다.
아내와 함께 시장을 보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하는 것, 또한 밤엔 함께 드라마 보다 잠들고, 아침이면 FM 음악 듣고 모닝커피를 마시는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너무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맨날 소원하는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하는 재테크도 아니고, 꿈꾸던 무언가가 되고 이루는 성취의 삶도 아닌 매일 변함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존재 그 자체의 삶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꾸짖으며 말한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서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오늘을 고치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매일의 평범한 일상, 지겨움과 초라함의 다른 말은 익숙함과 편안함인 것을 어쩌겠는가. 매일매일 반복되는 예측 가능한 루틴이 있는 일상,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감사하게 잘 살아내야 내일도 있고, 그게 모여서 우리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