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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Sep 08. 2023

꿈꾸기를 멈추면 우리의 영혼은 죽는다

Caruso


 저녁무렵, 아내가 지인에게서 구해온 음악회를 갈 시간이니 준비하라고 했다. 팔월에만 대관령음악제를 시작으로 훌륭한 후배의 협찬과 직접 예매한 음악회를 비롯, 본의 아니게 네 번을 다녀왔다. 클래식을 듣기 시작하면서 롯데 콘서트홀의 빈야드 블랙 회원에 가입해 놓았더니 매번 공연 안내가 온다.



 몇 년 전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클래식 음악을 무작정 듣고 있다. 오전에는 어김없이 FM라디오에서  ‘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듣고, 클래식 음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어느 트위터리안의 트윗 글을 읽고 그가 들었다는 클래식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 무턱대고 듣는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클래식 관련 음악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짬짬이 그냥 막 듣는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언젠가는 나도 귀가 열리면 잘츠부르크 여름음악제에 함께 가자고 약속했던 적이 있었다. 또한, 얼마 전에는 가끔 보고 있는 진회숙 선생이 소개하는 클래식 음악 관련 유튜브(Jinnie tv)를  보다가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카프리섬


코로나 전에 이탈리아 일주 패키지여행을 하던 중 폼페이를 둘러보고 난 후 기차를 타고 소렌토로 이동했다. 다음 여행지인 카프리섬으로 가는 쾌속선을 타기 위해 소렌토 해안절벽에서 멀리 나폴리만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선착장으로 내려갈 때 절벽 위의 그랜드 호텔 엑셀시오르 비토리아 (Grand Hotel Excelsior Vittoria)를 보았다.


 다음에 또 이태리 남부를 여행 오면 전망 좋은 그 호텔에 묵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진회숙의 음악 유튜브를 보고 그 호텔이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가 마지막 투병 생활을 위해 뉴욕에서 돌아온 후 죽기 전까지 머물렀던 호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인연이란 보이지 않는 이심전심의 무선국이 있다.


Grand Hotel Excelsior Vittoria


1986년 어느 날, 작곡가 겸 가수인 루치오 달라(Lucio Dalla)가 카루소가 죽고 난 후 65년 만에 비토리아호텔을  찾아와 하룻밤 묵으면서 그때 카루소가 바라보았던 그 바다와 숨 쉬고 느끼던 그 공간에서 즉흥적으로 그의 생애를 기억하며 만들었다는 노래가 칸소네 ‘카루소’의 유래인 것을 그 유튜브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일 년 내내 풀북킹이라 예약하기 어렵다는 그 방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그 호텔의 테라스에 기대어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카루소를 듣고, 소렌토 해안의 저녁노을과 멀리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 문화적 사치를 꿈꾼다. 인간이 꿈꾸기를 멈추면 우리의 영혼은 죽는다(순례자)는 파올로 코엘료의 말을 믿는다.


소렌토 선착장


 음악회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콘서트홀에 도착해 티켓을 교환하고 입장해 제자리에 앉았다. 프로그램 팸플릿을 읽고 있던 아내에게 여기는 송년음악회 때면 합창단이 앉는 자리가 아니냐며 처음 앉아본 무대 뒷자리를 신기해했다. 맨 앞줄의 중앙에 앉으니 모든 객석의 청중들이 나만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곧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는 브람스 교향곡을 지휘하는 내내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그의 눈빛과 손짓, 몸짓만 보고 있어도 악기 하나하나까지 그 연주곡의 아름다운 선율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는 듯해 집중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신들린 듯한 지휘와 함께 몰입했고, 왜 그가 마에스트로라고 불리는지 금방 이해가 되었다. 모든 곡이 끝나고 손바닥이 아플 정도의 박수로 환호한 결과 그는 친절하게도 두 곡이나 앙코르연주를 해주었다.



 아내에게 몇 번 컴플레인을 당한 후, 이제 겨우 음악회 티켓을 예매할 때 피아노 협연이 있으면 무대를 바라보고 정중앙에서 좌측을 티켓팅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수준이다. 그래야만 날아다니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초보 수준의 내게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얼굴을 음악회 내내 마주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뜻하지 않은 큰 행운이었다.



 다만 선진국이라고들 하니 말하지만, 음악회가 시작되기 일이 분 전에 부산스럽게 입장하기보단 최소 십이십 분 전에는 자리에 착석하고 팸플릿의 곡 해석을 보는 것은 어떨까, 또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청중들의 박수세례 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 주차장 트래픽을 피해보겠다는 일념하에 먼저 일어나는 사람들은 연주자뿐만 아니라 그 음악회에 참석한 모든 청중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인데,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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