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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거리두기

by 봄날


하루 종일 봄비가 내린다.


주말 집콕 생활을 끝내고 오랜만에 집 밑 카페로 내려왔다. 먼저 지하 식당가에서 봄나물 반찬과 순두부찌게를 챙겨 먹고 속이 든든해져서 카페에서 엣지 있게 에스프레소 싱글 한잔을 시켜 원샷을 했다. 입안에 가득 머금은 커피 향이 너무 기분을 날아가게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은 띄엄띄엄 사람들이 많지 않다. 힐끗힐끗 눈치를 보며 옆에 앉은 커플들이 애정행각을 귀엽게 하고 있다. 나는 혼자서 주말에 서너 시간 카페서 보내는 걸 좋아한다.


평일에는 지치도록 일하고 치열하게 생활하다 보니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린 것도 같고, 삶의 속도만 느껴질 뿐 방향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아 주말에 하루 정도는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 밑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 특별한 것은 없다. 신문도 읽고 책도 보고 인터넷 뉴스도 검색하고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주일을 반성하기도 하고 다음 주를 계획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세 시간을 넘게 머무르면 커피나 페리에 생수를 한병 더 주문하며 눈치를 피해 가고 예의를 지킨다.



운동할 때 만나는 지인들이 어제 뭘 했느냐고 물어보면 카페에서 혼자 오후 시간을 보냈다고 하면 대개 반응이 두 가지다. 첫째, 혼자서 어떻게 카페에서 앉아 있느냐고 묻는다. 눈치를 채셨겠지만 대개 오십 대 이상이다. 두 번째, 어제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의심한다. 부부싸움이라도 했느냐는 눈치다. 물론 부부싸움을 했을 때도 있다.


오히려 나는 지인들에게 주말에 운동만 다니지 말고 혼자서 카페에 내려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한다. 나는 이십 년 전부터 동네 카페에서 이렇게 주말마다 시간을 보내곤 했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겨울에는 연 이틀을 내려가곤 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시작하는 조조영화를 그 전날 인터넷 예약하고는 주말 아침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찍 일어나서 혼자 영화도 많이 본다. 가끔은 영화관에 나 혼자 밖에 없을 때가 있는데 사실 그럴 때는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곧 영화가 시작되면 몰입이 되어 걱정이 없다. 또한 혼자서 밥 먹기는 기본이다.



혼자서 무얼 하는 것을 대부분의 어른들은 멋쩍어하고 어색해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차피 우리는 혼자서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그리고 함께 있어도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돌아보면 혼자일 뿐이다. 일을 그만두게 된다던지,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아갈 일만 남게 될 그날은 누구에게나 도래한다. 아무도 피해 갈 수는 없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결국 혼자일 뿐이다. 지금 사랑에 빠져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순간들도 잠시일 뿐, 연인과 함께 연애를 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혼자일 때 보다 더 절절하게 외롭고 고독할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은 연애를 제대로 해본 사람들이라면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식의 저변에는 ‘사회적 시선’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혼자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에 앉아 있으면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그런 아무짝에도, 정말 쓸데없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일단 혼자서 그 무엇이라도 해보기를 도전하면 금방 알게 된다. 그 어느 누구도,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다. 그냥 눈을 돌리다 보니 보이기 때문에 보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눈을 감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무엇이 중헌디?”의 정말 소중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영화 어느 가족 (2018)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이나 추측을 할 만큼 우리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각자 도생하느라 한순간이라도, 알지도 못하는 남들에게 허투루 시간을 소비할 여력이 없는 차가운 도시 생활인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직장 동료나 가족 구성원들에게 조차도 관심을 가지지 못해 서운하게 만들고, 때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 사람들 일 뿐이다.


사회적 시선과 거리두기를 하고 홀로 선다는 것은 세상과 나와 단 둘만이 조용하게 서로 소통하고 얘기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면 인간은 성숙해질 수가 없다. 인생의 진리는 언제나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나 세상 속에서 누구와 늘 함께 해야만 고독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몰려다니지 말고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결국에는 모두 이런 저런 이유로 그들 자신의 삶을 위해, 또는 자연스럽게 세월이 가면 우리 곁을 떠나게 되고 상처 받기 쉬울 뿐이다.


영화 어느 가족(2018)


세상과 내가 단 둘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동안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다가와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기쁜 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존재 그 이상의 집착과 기대는 조금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늘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고 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결국 상처 받을 수밖에 없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로운 관계 구성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 영화의 대사 한 구절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 피가 안 이어져 있으니 괜한 기대를 안 하게 되어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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