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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번에 한겹씩 벗겨야 하고, 가끔은 눈물이 난다

꿈꾸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

by 봄날


추석 연휴 첫날에 새벽부터 서둘러 양평으로 좋아하는 후배들과 함께 운동을 다녀왔다. 이번 추석은 처음 겪어보는 비대면, 언택트 추석을 지낸다. 평생 처음 겪어보는 비대면 추석이지만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가끔은 이런 추석도 지내보면 또 추억할 일도, 할 말도 생긴다. 내년 설 명절은 가족 모두 모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요즘 실생활에서 가장 고마운 분들, 택배기사님들 편으로 몇 가지 정성을 배달하고 아침에 운동을 다녀왔다. 추석 전날 운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고, 좋아하는 후배들과 햇볕 좋은 가을 날씨 덕분에 즐겁게 운동하며 연휴 첫날부터 선물 같은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나훈아 쇼가 있다길래 운동 마치고 돌아와 저녁시간 내내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를 시청했다.



언젠가 그가 의도치 않게 신비주의에 휩싸이면서 가짜 뉴스가 세상을 어지럽게 할 때 홀연히 나타나서 말하기를 “꿈을 찾지 못해서 나타날 수가 없었고, 그 꿈을 찾아 세상을 유랑하느라 못 나타났을 뿐이다”라고 말했을 때부터 나는 그를 존경하고, 그를 진정한 아티스트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노래를 잘 부르고 직업으로 하면 그를 가수(singer)라고 한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며 세상에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할 때 우리는 그를 음악인(musicia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노래와 음악을 통하여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삶의 희망과 꿈을 꾸게 해 주는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artist)라 하고 그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나훈아, 그의 말처럼 아티스트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요즘처럼 전에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사태로 지친 일상을 보내고, 추석 같지 않은 비대면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해 준다. 두 시간 반 동안 혼자서 무대와 TV 화면을 꽉 채우며 이끌어가는 그는 국민들을 위로한다는 그의 선한 메시지를 뛰어넘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굳이 그의 나이를 유추하지 않더라도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의 한 구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이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인생은 양파와 같다고 한다. 한 번에 한 겹씩 벗겨야 하고 가끔은 눈물이 난다. 오래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 각 나이 때 별로 양파처럼 한 번에 한 겹씩 벗겨가며 살고 있다. 매 순간 희로 애락, 그 고비를 넘길 때마다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우리의 삶이란 요리에 들어간 양파처럼 우리는 인생의 단맛을 맛보고 느낀다. 우리 삶을 끊임없이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우리가 매 단계마다 맛본 그 인생의 단맛, 꿈 때문일 것이다. 꿈꾸기를 멈추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청춘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부르는 젊은 청춘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열정과 패기,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강인한 육신도 좋지만, 지금 비록 세월은 살결에 주름을 만들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이 나를 꿈꾸게 하는 지금이 더 좋다.


가끔은 일상에서 힘들고 지칠 땐,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들으며 나의 꿈꾸기를 돌아보고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언젠가부터 모바일 앱 메모에 옮겨 놓은 파올로 코엘료의 ‘순례자’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읽으며 스스로를 염려하고 꾸짖기도 한다.특히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인간은 결코 꿈꾸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영혼은 꿈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살아가는 동안에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실망하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좌절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지요. 하지만 그래도 꿈꾸기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죽어버리고 아가페가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되니까요.


이런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 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꿈들이 죽어가는 두 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그 세 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젊은 날의 환상은 내려놓고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파올로 코엘료 '순례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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