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K-고딩의 흔한 하루.

‘저분은 본인이 뭘 가르치는지 알고 계실까?’

by 빨양c


딸깍. 털썩.


호랑이 책상 위 스탠드 조명을 끄고 뒤켠 작은 침대에 몸을 누인다.


‘으~드디어 눕네. 시간은 엄청 안 가는 거 같은데 하루는 또 금방 가는 느낌이란 말이지. 이번에 시험 잘 봐야 하는데..’

영단어를 1시간만 더 보려던 생각을 비웃듯 시계는 어느새 자정을 넘어섰고, 그래도 평소보단 빨리 침대에 누운 호랑은 생각했다. 누가 봐도 너무나 늦은 시간임에도, 너무 일찍 자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끼며 잠을 청하는 한국의 흔한 고등학생답게, 침대에 누운 호랑의 마음도 썩 편하지 않아 뒤척인다.

자리에 누워 가만히 오늘 하루를 돌이켜본다.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씻고 나왔는데 아직도 늘어져 침 흘리며 자고 있는 지랑에게 감은 머리 물기를 담뿍 머금은 젖은 수건을 내던져 깨우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아침식사는 당연히 거른다.

K-고딩에게 아침식사 스킵은 국룰아닌가?

호랑에게 0교시 지각은 용납할 수 없다.

잠에서 덜 깨 느릿느릿 흐느적흐느적 늦장 피는 지랑을 내버려 두고 호랑은 먼저 길을 나섰다.


“야 1교시가 왜 1교시겠어? 첫 수업이니까 숫자 1이 들어가는 거야. 0교시? 0교시는 뭔 놈에 0교시야 진짜. 웃기고 앉았네. 왜? 마이너스 10교시해서 아예 학교에서 못 나가게 하지?”

언젠가 지랑이 학교 0교시를 싸잡아 욕하며 소리치던 기억이 난다.


정해진 규범은 지키라고 만들어진 거라고 굳게 믿는 호랑과 달리,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규범 따위 언제든 깨부수겠다는 지랑은, 쌍둥이인 호랑임에도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그렇게 집을 나서니 학교까지 데려다 줄 학원 통학 미니버스가 호랑을 기다리고 있다.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은 교복을 입은 병든 병아리들이 노란 미니버스 닭장에 갇혀 꾸벅꾸벅 모두 잠을 청하고 있다.


이어폰을 꽂은 병아리,

창가에 기대 목이 꺾일 것처럼 조는 병아리,

어떻게든 영단어를 보겠노라 단어장을 움켜쥔 병아리 등등 다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게 만들어지고 있는 병아리들이 가득하다.


우리의 다정한 부모님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돈으로 못 사는 게 없는 세상.

그래, 마치 그 돈으로 가정의 행복도 살 수 있다고 믿는 듯 그들은 돈을 번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본인들의 자녀를 이 병든 노란 버스에 태워보내야 한다.

과연 무엇이 행복인가.


우리 병아리들은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병든 닭처럼 고개를 꾸벅꾸벅하고, 운전해주시는 대장 닭 기사쌤은 행여 병아리들이 깰까 최대한 조용히 조심히 운전을 시작한다.

매일 보는 광경임에도 호랑은 이 광경이 참 가관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정말 광경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호랑도 결국 어쩔 수 없는 K-고딩일 뿐이니 자리에 앉자 그 물음은 다 사라지고 병든 병아리 중 하나가 되어 잠을 청한다.


끼익.

버스가 멈추고 학교에 도착.


0교시가 시작된다.

장소가 버스에서 교실로 바뀌었을 뿐 잠이 부족한 병아리들은 교실에 수면가스라도 들이닥친 양 0교시에도 고개를 꾸벅꾸벅한다.

그렇게 시작된 0교시의 학교생활이 10교시로 불리는 야자까지 계속 이어진다.


아직 사회라는 세상에 나가지 못한 고딩 병아리들은 교실이라는 닭장 속에 갇혀 아무런 흥미도 주지 못하는, 그저 60분의 시간을 견디는 훈련을 받는다.

그렇게 10교시가 끝날 무렵 세상은 이미 어두워졌고, 병아리들은 집으로 갈 자유를 받는다.

아니, 학원으로 가야 하는 의무 같은 자유.

아침에 탔던 노란 버스가 학교 정문에서 어서 이리 오라는 듯 비상등을 켜고 기다린다.


‘그래. 매일매일이 비상은 비상이지.’

호랑은 갑자기 노란 닭장 속에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저 수면 버스에 타면 이번엔 수면이 아니고 질식할 것만 같다.

시계를 보니 아직 학원 수업시간까지는 여유가 좀 있다.

‘오늘은 걸어가 볼까?’

비상이라며 나를 노려보는 노란 버스를 애써 외면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겨 학원으로 향한다.

가기 싫다.

집에 가서 늘어지게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내 삶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건가?

현시대에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진 머릿속 철학자 100명이 삶의 의미를 물어오는 같다.

머릿속 대토론이 열리거나 말거나 발걸음은 당연하다는 듯 학원으로 향한다.

이게 바로 세계가 칭송하는 K-주입식 교육 아닐까.

그렇게 학원으로 가는데 언제 봤는지 멀리서 지랑이가 날 부르며 달려오는 게 보인다.

저 어두운 비상문 앞에서 도대체 뭘 하는지.

양아치 같은 것들이랑 어울리는 언니가 걱정스럽다.

‘먼 미래 성공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친구를 사귀어두는 거야.’

언니는 늘 이런 식이다.

같이 가자고 소리치길래 당연히 학원 같이 가자는 줄 알았는데 본인은 집에 가겠단다.

대체 날 왜 부른 거지? 난 학원 가야 하는데.


촤악-


하- 언니가 게시판에 붙어있던 공모전 포스터를 찢어버렸다.

너무 부끄럽다.

도대체 규칙도 없고 생각도 없는 저딴 게 내 쌍둥이 언니라니. 기가 막히다.

제발 내 눈앞에서 꺼졌으면 좋겠다.

포스터를 아무렇게나 구겨 넣고 만족한다는 듯 집으로 뛰어가는 언니를 애써 무시하고 나는 터덜터덜 학원 강의실로 올라간다.


아직 학교 진도와는 멀어도 한참 먼 선행수업이 이어진다. 손으로 턱을 괴고 멍한 눈으로 강의실 앞에서 떠드는 선생님을 본다.

‘저분은 본인이 가르치는지 알고 계실까?’

문득 호랑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지금 뭘 배우고 앉았는지 모르겠는데, 저 분은 그런 건 전혀 관심이 없나 보다.

그래도 선생님인데, 도대체가 어디가 선생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 그런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진도 빼기에만 열심히시다. 응. 그래서 저 분이 바로 진돗개다. 하도 진도를 빼대서..’


시간은 밤 10시를 가리킨다.

학교 10교시가 끝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침내! 드디어! 집에 갈 자유를 얻는다.


다시 노란 닭장 버스를 마주한다. 오늘만 세 번째. 왜 저 노란 닭장은 병아리를 못 잡아서 안달인가.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비상등을 세차게 깜빡이고 있다. 후- 이쯤 되니 이 닭장 버스를 따돌릴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 너무도 익숙한 K-병아리들이 또 고개를 떨구고 잠을 청한다. 배경만 아침에서 밤으로 바뀌었을 뿐 잠든 병아리는 모두 같다. 이런 광경이 너무도 한심하지만, 호랑이라는 병아리도 여지없이 잠에 빠진다.

어쩔 수가 없다. 흔한 K-고딩의 삶은 이렇다.

분명 뭔가 잘못돼있는 것 같고,

학생도, 부모도, 선생도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것 같은데, 그들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꾸벅꾸벅 버텨가는 그런 현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침대에 누워있다.


.. 작가라..‘

잠을 청하려는 호랑의 머릿속에 지랑이 하도 지랄지랄 외쳐댄 ’ 작가‘라는 단어가 스쳐간다.


샤워하는 동안 빗줄기로 젖어들었던 마음속 한 구석에, 작은 등대 불빛이라도 켜진 듯 따뜻한 빛이 한번 반짝 이는 느낌이 든다. 묘한 신비감을 주는 단어란 생각이 든다.

길을 잃어 힘들기만 한 18살 평범한 한국의 고등학생에게 ’길은 여기야’라고 하는 듯이.


하지만, K-고딩은 그 빛을 알아볼 힘이 없다.

이미 충분히 힘든 병아리의 하루를 버텨내느라 지쳤으므로.

더 최악인 건, 내일도 모레도 1년 뒤에도 이 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것. 작은 절망을 느끼며 호랑은 잠을 청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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