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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Mar 09. 2024

2024년 3월 8일, 사실은 심란.

#당신이 잊어버린 당신이 사랑받은 순간들




아빠가 마음이 심란한 이유?


1. 어린이집


2024년 3월 4일,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 짙게 묻어있는 3월의 그날,

너는 너보다 큰 가방을 작고 여리게만 보이는 어깨에 걸치고 어린이집으로 처음 향했단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해가 됐어.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빠들이 아이의 가방을 대신 들고 등하교 길을 같이 하는 광경 말이야.

난 그 모습이 불편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라떼는~"을 시전 했지.


아빠의 초딩 1학년 때 키는 124cm였고, 몸뚱이보다 큰 가방을 등에 메고,

버스표(?)를 꼬깃 접어서 버스요금통에 넣으면서 세정거장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를 혼자서 잘만 갔다며, 라떼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왜 저렇게까지 하는건지 이해가 안 됐지.

어쩌면, 이해를 할 생각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큰 가방을 등에 메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처음으로 너의 가방을 내가 들어주고 싶더라.

나도 이렇게 아빠가, 진짜 아빠가 되는 건가 싶더라.


물론, 그럼에도 기어코 들어주진 않았지.

마음은 무겁지만,

그래도 너에게 가르쳐줘야 할 것이 있다면 단호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2. 분리

그렇게 시작한 어린이집의 한주가 어느덧 끝이 났어.

3월 7일 목요일에 처음으로 너를 선생님과 친구 다섯만 있는 그곳에 놓고 분리 연습을 시작했어.

선생님도 그랬고, 나도 그랬어.

"우리 애는 잘 적응할 것 같아요. 저렇게 잘 노는 걸 보면 말이죠."

어이구.

근데 이게 웬걸.

어리벙벙했던 30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마주한 너는 울음 범벅이었지.

머리에 땀나도록 울고 있는 아이는 너뿐이더라고.

너를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고 30분이나,

그래 무려 30분이나 떨어져 있던 게 태어나고 처음이니

어쩌면 당연한 거였는데,

너의 땀범벅 눈물범벅 울음에

떨어져 있다는 것에 실감이 그제야 나고 말았어.


3. 심란

그리고 3월 8일,

오늘은 아예 어린이집 입구에서 너만 선생님의 손에 들려 보내고,

아빠는 들어가지 조차 못하는 그날이 되었어.

그게 뭐라고,

시뮬레이션도 혼자 머릿속으로 여러 번 해보고,

유튜브에다 '어린이집 분리 연습'이라는 이상한 문장도 검색해 보고,

놀랍게도 관련 영상이 꽤 나오더라.

역시 부모마음은 같은 건가 싶은 생각.


거기서 아기가 알아듣지 못해도,

시간을 모르는 아기들을 위해 어떤 행위가 끝나면 꼭 돌아올 거라는 약속을 해주라기에,

"간식 먹고, 점심밥 냠냠하고 나면 아빠가 뿅, 하고 나타나있을 거야. 그러니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기, 약뚁!"

이라고 한 열 번은 말해준 거 같아.

어젯밤 재우면서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아침밥으로 감자를 먹이면서도, 엄마가 사준 예쁜 옷을 입히면서도, 차에 타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서도,

그리고 어린이집 입구에서 뭔가 쎄한걸 느꼈는지 무릎 꿇어 눈 맞춤을 하는 내 눈을 보며

"아빠는 왜 안 들어와?" 하는 너의 얼굴을 품에 한번 꼭 안아주면서도,


밥 먹고 나면 꼭 뿅 하고 돌아올 거니까,

잘 지내고 있기.

약속.


그렇게 말하곤 뒤돌아섰지.

아빠가 나름 웃어주려고 노력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 뭐야.

그래도 아빠의 눈빛과 손길과 숨결로,

아빠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아니, 전해 졌겠지.

그렇게 믿어야지.



4. 먹먹하다,

그리고는 차에 혼자 돌아와 한참을 뒷좌석, 너의 카시트 옆자리에 멍하니 홀로 앉아 있었단다.

먹먹해서.


먹먹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

슬프지도, 좋지도 않은 정말 먹먹한 기분.

그냥 그 고요한 차 안에 먹먹하게 앉아

늘 카시트, 그곳에 앉아 차 창밖을 통해 세상을 호기심 눈으로 둘러보던 너의 모습이 없는 걸 보니 그때 또 실감이 나서 울컥.



5. 신의 약속

오래전 일이지만, 군대에 있을 때 정말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생활하면서

거지부터 왕까지 다 해보는 곳이 군대라는 선임들의 말에 공감했던 적이 있어.

실제로 지내보니, 어쩌면 그 2년의 시간이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마치 그곳에서 인간의 생을 다 살아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그런데,

너에게 "꼭 돌아올게"라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아빠가 된 내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어처구니없게도

신의 섭리, 신의 약속이 이런 느낌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면,

너무 지지리 궁상인 걸까?


내가 믿는 신은,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올 테니 인생을 바르게 살라고 했다고 했거든.

어릴 적부터 그 내용이 적혀있는 두꺼운 책을 봤음에도


"다시 돌아온다고? 언제? 2천 년도 넘게 흘렀는데 언제? 그전에 내가 죽겠다. 다시 돌아온다고? 그래, 믿을게. 믿는다고 치지 뭐."

이런 교만한 믿음으로 결론 내리고 잊고 살았던 게 사실이거든.


근데 우리 아들한테, 아빠인 나도 비슷한 말을 하게 되더라.

너는 여전히 이해 못 하겠다는 눈망울로 나를 그렁그렁 쳐다봤지만,

그런 너에게 아빠인 나는 왜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지만,

너는 기억 못 할 테지. 지금의 너는 말야.


어쩌면 내가 믿는 신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역시나 지지리 궁상인 걸까.

어쩌면 그 신도 지금의 나는 기억못하는 언젠가 내게 수도 없이, 설명하고 알려주고 믿게 하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신도 지금 당장에라도 내가 울고 힘들 때 달려와줄 수 있지만, 그럴 능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

내가 어린이집에 간 너와 떨어져 있는 지금 시간처럼 말이야.


그 이유는,

이렇게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에게 꼭 필요하거든.

이 삶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너에게 오늘의 이 날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아빠인 나는 잘 알아서,

당장이라도 너를 다시 만나러 가고 싶지만,

꾹 참고 있단다.


나중 언젠가 돌이켜보면 지금 이 시간이 아무것도 아닐 텐데,

지금 이 시간에도 아빠는 심란하고,

또 심란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또 쓰고, 남기고 또 남기고 있네.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그러다보니 드는 생각.


어쩌면 그래서 내가 믿는 신이 남겼다는 그 책도 그렇게 두꺼운 걸까?

그 책 속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꼭 돌아올 거야. 그때가 되면. 그러니 이왕이면, 잘 지내고 있어. 건강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이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아빠인 내가 아들인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인 것처럼.


그렇게 2024년 3월 8일,

마스크 속 애써 웃어 보이려 했던 아빠의 오늘은 사실 이렇게나 심란했단다.

몇 시간 뒤 너를 다시 만나게 되면 아까와 같이 웃음을 보이겠지만,

아빠는 사실 온통 너의 생각뿐이었단다.


나도, 내가 이렇게 지지리 궁상맞은,

아빠가 될 줄은 몰랐어.

그만 써야지.

내 안에 나도 모르던 궁상이 더 튀어나오기 전에,


믿어야지.

선생님을,

친구들을,

내 아기를,

그리고 나 자신을.


잘 지내고 있어 주리라 믿을게.


오늘도 사랑해,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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