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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Feb 24. 2024

3. "엄마는 날 왜 버렸어?"

#당신이 잊어버린 당신이 사랑받은 순간들




기억이 거의 없는 어릴 적 기억 중 하나,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 4시쯤 되는 붉은 햇살이 세상을 비추고 있을 때쯤이었나,

거실에서 잠을 깼어.

나이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 아마, 한 3-4살 정도 되지 않았을까?

눈을 뜬 어린 나, 주변은 너무 고요한 적막뿐이었어.

어릴 때부터 왜인지 분리불안 같은 혼자 있으면 늘 불안해하던 나.

그리고 혼자라는 그 적막 속 고요에 갇힌 나는 당연히 울기 시작했지.

그 꼬맹이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처음으로 혼자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어.

5층에 살았고, 엘리베이터는 없었지.

아장아장걸음으로 넘어지지도 않고 계단을 잘도 내려갔어.

내려가면서, 주말이면 아랫집, 옆집 사람들과 다 같이 그 계단을 청소하던 생각이 났던 것 같아.

여전히 4시의 붉은 햇살이 계단을 회색 적막으로 누르고 있었지.

그렇게 뱅뱅 돌아 1층 세상으로 나섰어.

지상 주차장이었음에도 차들이 별로 없던 기억.

저 멀리 있던 아파트 입구까지 눈물이 범벅된 채 울며 걸어 나가던 기억.

그러면서 어린 나였음에도 계속 들었던 생각.

"엄마는 왜 나를 버렸어?"

 

그날의 내 기억은 여기까지야.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잘 큰 거 보면 그때 집을 잃어버리진 않은 모양이야.

다행이지. 아마도 이웃 누군가가 울고 있는 5층 아가를 보살펴줬을까.

그때는 지금과 달리 삭막하지도, 흉악한 범죄가 일상의 뉴스로 쏟아지던 때도 아니었으니 말야.

다행이지.


물론, 당연히 엄마와 아빠는 날 버린 게 아니지.

그저 평소처럼, 그래 평소 낮잠 자는 시간대로 잘 자고 있겠거니 하고 잠시,

그래 잠시, 평소와 달리 잠시 외출을 하셨던 거지.

평소 그 시간에 절대 깨지 않고 잘 자던 아이였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하필 그날 잠에서 깨 아장아장 동네를 헤맨 거지.

왜 자신이 혼자가 됐는지.

왜 엄마는 나를 버렸는지 되뇌면서 말야.


그때가 지나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그날의 일을 물어봤어.

그리고 엄마는 말했지.

"그런 적이 있었니? 잘 기억이 안 나네."


맞아. 어쩌면 어린아이한테는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을 부모님들을 잘 기억하지 못했지.

그리고 당연히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그저, 마음속에서 그런 일이 있었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불안함이 많은 아이로 자랐나 보다 하고 말았을 뿐.

자칭 타칭 나름 효자로 자란나였으니까 구태여 그때 일을 계속 묻진 않았어.

효자는 효자답게, 어린 건 자신이면서도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했으니까 말이야.

용서와, 이해는 다른 거니까.

그렇게 그때의 그 일은 늘 마음 한편에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것 같았지.

늘, 나는 혼자구나 하는 어설픈 학창 시절을 지나는 동안 더 깊어진 것 같기도 하고 말야.


웃기지?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사소한 일이었을 뿐인데,

홀로 깨어난 그때의 공기가 이렇게 평생 따라다닐 줄이야.


그런데 말야,

내가 내 아기를 낳고 기르다 보니 그때의 일이 이해가 되고, 또 용서가 되더라.

물론 단번에 그렇게 된 건 아니었고, 아기인 너를 매일같이 돌보다 보니 그때의 공기가 받아들여지더라.

웃기지?


오늘 너와 있었던 일도 그래.

어쩌면 너에게 트라우마로 남을까봐 굳이 글로 남기는 건 그런 이유였겠지.

혹시라도 오늘의 얼기설기 남은 기억이,

혹시라도 어쩌면 평생 이해 못 할 일이 될까 봐 말야.


평소처럼 낮잠을 재웠어.

십팔십팔 소리 나온다는 마의 18개월 때부터 유독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너.

간신히 재웠어. 자세를 고쳐 편하게 눕혀놓고, 옆에 잠시 누워있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처럼 나를 찾는 건지, 내 품으로 굴러들어 와 얼굴을 내 얼굴에 부비려고 하더라고.

나는 황급히 피했지.

그런 내 서투른 행동에 놀랐는지 너는 눈을 번쩍 떴어.

그리고 "도대체 왜?"라는 눈망울로 나를 똑바로 보더라고.

잠결임에도, 왜 아빠가 나를 피하지?라는 이해 못 하겠다는 눈빛 말야.


거실에서 홀로 깨어나 낯선 공기를 느낀 어린 날의 내 표정도 이랬을 것 같다는,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누군가 들으면 역시나 참 사소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소한 일이 평생 이해 못 할 일로 남을까 봐 이렇게 남겨봐.


아빠는 요즘 몸이 조큼 좋지 않아.

그리고 어제부터는 목이 부으며 감기 기운이 가득 찬 몸뚱이가 되어버렸지.

그렇게 어제부터 온종일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숨도 쉬기 힘들고, 귀 뒤도 마스크 끈에 너무 아프고.

그래, 맞아.. 너의 눈엔 만능으로 다 해내는 어른으로 보였겠지만,

아빠도 이렇게 아플 때가 있단다.


당연히 널 사랑하지.

잠결이라도 내 품에 안기고, 내 얼굴에 본능적으로 부비고 싶어 하고.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행복인데.

그런데,

나 때문에 내 아기가 아픈 건 안되니까.

그래서 오늘 너의 부비적하는 얼굴을 애써 피할 수밖에 없었단다.

아빠가 좋은 걸 더 해주진 못할 망정, 감기 바이러스 따위 줄수는 없으니까.


참 사소한 일.

혹시나 그 일이 너에게 괜한 오해로 남지 않길 빌며.



오늘도 사랑해,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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