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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Mar 02. 2024

4. 캐나다, 군대, 그리고 파묘.

#당신이 잊어버린 당신이 사랑받은 순간들



그들은 왜 독립운동을 했을까?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까?


이제 20개월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아기인 너에게 위의 물음은 너무너무 이르겠지만,

앞으로 한국이라는 이 나라에 살면서, 너도 언젠가 위의 물음을 마주할 날이 올 테지.


오늘은 그런 얘기를 해볼까 해.

'한국'이라고 하는 것보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왠지 있어 보이는 것 같은,

흔한 한국인 1의 이야기.



#1.

첫 번째 이야기는 군대.

아빠도 당연히 군인이었단다.

군대를 다녀온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곳 역시 아주 악명 높은 곳이었지.

군대 이야기를 하면 하는 본인만 즐거우니 입 꾹 닫고, 딱 하나만 이야기할게.


2년의 시간 동안 담벼락 속에 갇혀있는 그들이라면 꼭 한번 해보는 질문이 있어.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까?"


어떨 거 같아?

군인이니까, 당연히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눈앞에 주적을 몰살하고 어쩌고 저쩌고..."


그럴 거 같지?


하지만 그때의 내 주변 전우라 불렸던 앳된 얼굴의 군인들의 답은,


"일단, 격납고에 있는 장갑차를 한대 뽀려서 부식창고를 털어서 장갑차에 부식을 잔뜩 싣고, 아냐, 아니다 그럴 거 없이 일단 바깥세상으로 나가서 이마트를 털자. 휴가 때 못 먹은 거 다 털어서 장갑차에 싣는 거야.

그다음은 방송국으로 장갑차를 전진. 걸그룹을 장갑차에 태워!

그렇게 장갑차를 몰고 북쪽으로 전진...은 무슨! 미쳤냐? 재수없이 총 맞아 뒈지면 개죽음이게?

반대로 달려야지. 남쪽! 남쪽 끝으로 전속력 전진!

그러다 이름 모를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을 겁나 파. 그다음 장갑차를 그 땅 속에 파묻고 무전이나 들으면서 그 안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존나게 버텨. 그러다 미국 형님들이 종전 선언 해주시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는 거지. 멋지게. 크~"


웃기지?

지극히 군인 다운 대답.

그런 곳이었어.


전쟁이 나면?

도망친다.

숨는다.

살아남는다,

끝.



#2.

두 번째 이야기, 캐나다.


아빠는 캐나다에서 유학 생활을 보냈단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 안에 있던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때였지.


그중 내게 충격적이었던 것 하나는,

내가 만났던 캐내디언의 머릿속엔 "전쟁"이란 단어가 없다는 것이었어.

그들에게 "평화"란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전쟁"이란 두 글자는 그들의 삶과 전혀 관련이 없더라.


이 땅에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늘 전쟁을 두려워했던 나로서는 너무 흔하게 도처에 깔려있는 그들의 평화가 꽤나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나. 부러우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꽤나 자주 되물었던.

위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말한, 군대를 가는 앳된 얼굴의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생각하는 물음인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 자체가 필요 없어 보였던.


어쩌면 자신이 캐나다에 태어나고 자라고 죽을 때까지 전쟁과는 무관한

자신의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와 그 위의 부모와 훨씬 더 먼 옛날의 자신의 조상들도 전쟁을 걱정하지 않았을 평화의 나라.

그때는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란 그들이 꽤나 부러웠던 때도 있었어.


오늘 꽤나 거창한 두 가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역시나 제일 앞에 던진 질문 때문이야.


그들은 왜 독립운동을 했을까?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까?


스무 살 초 앳된 얼굴의 군인이었던 아빠의 대답은 도망.

평화가 사치스럽게 흩뿌려진 캐나다 거리를 거닐었던 때의 아빠의 대답은 부러움.


그렇게 먹고 사느라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런 '거룩'한 질문을 잊고 지내다

아들 너를 마주하고, 지지고 볶으며 키우다 든 생각은,

나도 독립운동을 한다. 백 퍼센트(100%).


그래, 그 영화 '파묘'의 남자 주인공인 김상덕이 장담하며 말했던,

백퍼센트로.



정말 우연히도,

3.1절이었던 어제, '파묘'라는 영화를 봤어.

영화 내용이 그렇게 연결될 줄 모르고 그냥 '검은 사제들'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길래

재밌을 거 같아서 봤던 건데, 내용이 그렇게 될 줄 몰랐네.



어릴 때부터 궁금했어.

그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왜 독립운동을 했을까?

그러다 차가운 총알이 몸에 박히면,

엄청 아플 텐데.

아프기만 하겠어?

죽겠지.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안타깝긴 한데, 나는 못할 것 같다.

무조건 도망이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그렇게 꿈에 그렸다던 그 '독립'을 한 나라에서

그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뉴스가 흔해지고,

오히려 나라 팔아먹은 것들의 자손들은 여전히 신나게 살고 있다는 뉴스가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더욱 분명해졌지.


독립운동? 미쳤나, 나는 절대 안 해.

목숨 바쳐해도 나도, 내 자식도, 그 자식들도 대우도 못 받고 개고생 하면서 살게 하는 나라를 위해

뭐? 독립운동? 미쳤나 XX.


그렇게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점점 굳어져갔어.

그런데, 어제 파묘를 보고 나니 그 질문이 다시 내게 슬쩍 떠오른 거야.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내 대답이 바뀌어 있더라.


위에서도 말했듯,

나도 독립운동을 한다. 백퍼센트로.


그리고 내 대답의 변화의 한가운데

아들, 니가 있더라.



최악의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전쟁이 나서 뭔가 있어 보였던 그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치자,

무자비한 다른 나라에게 점령당했다고 치자.

내 한 몸만 살아야 했다면 나는 군대 있을 때의 그때처럼 혼자 도망가고 말았을 거야.

이 나라가 어찌 되던 내 알빠임? 하면서.


그런데 내 아들이 있다면?

내 아들이 그렇게 빼앗긴 이 땅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시간이 흘러 내 소중한 아들의 아이들이 계속 이 땅에 살고 죽고 묻혀야 한다면?

파묘의 김상덕이 마지막에 말하듯,

태어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 땅 이곳이라면...


바로 이 지점에서 대답이 달라지더라.


나는 고통스럽게 죽어갈지언정,

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않길 바라게 되더라.


아쉽지만 지금도 절대 이 나라를 위한 건 아니지만,

내 자식을 위해서는 독립운동이든 전쟁이든 뛰어들어 지키려고 하겠다는 결심이 서더라.


3.1절, 그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들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 같아.

아니, 분명 그랬을 거야.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절대 그곳에 나오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자신의 아들, 딸, 그리고 그 아들딸의 아이들만큼은

부디 자신처럼 그렇게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거룩'한 이유가 필요 없는,

바다 건너 저 먼 어느 나라처럼

평화가 사치스럽게 흔한 세상에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야.

백 퍼센트(100%).



오늘은 쓸데없이 거룩한 글이 된 것 같긴 하지만,

언젠가 너의 생각도 꼭 들어보고 싶어.

우리 나중에 파묘도 꼭 같이 보자.

봉길이 엄청 멋있더라. 윤봉길 만큼이나.


오늘도 사랑해,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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