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태현 Apr 08. 2024

어린이집이 어린이 집인 이유를 알겠는 이유.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지 어느덧 한달이 지나고 있다. 


처음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한달 전 글이 무색하게 

지금은 너무나 평온한 마음으로 아기가 없는 텅 빈 거실 한편에 자리잡고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아기랑 24시간 온종일 이 집에서 지지고 볶고 지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평온한 집안 공기가 괜히 낯설게 느껴진다. 

어쩌면,

어린이집을 진작 보냈다면 

그렇게 힘들다 생각했던 육아의 그 시간들이 조금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아들이 나중에 이 글을 보면 조금 섭섭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정도로 지금의 내 상태는 생각보다 평온하다. 


육아를 하던 시간동안 더이상 내 젊은 시절의 그 때로 돌아가진 못하겠구나 느꼈던 좌절감은 잊혀지고, 

직장생활을 했던 그 때의 루틴대로 하루를 보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하다. 


마음 한편에 어린이집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도 피어오른다. 

내 아이를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봐준다는 건 많이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이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아이를 맡기는 거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포장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 아이를 하루 중 잠깐이라도 누군가가 봐준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어렸을 적 언젠가 어린이집이 왜 어린이집일까 스치듯 궁금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 궁금증은 0.3초도 머물지 못하고 스쳐지나갔을 뿐이지만.

그때의 어렸던 나는 지금 아들을 물고 빨고 예뻐하는 나를 상상하진 못했으니까. 

그런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한달 보내보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이에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어쩌면 부모와 함께 지내는 집 만큼이나 그 어린이에겐 집만큼 친근한 곳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9시에 등원해서 낮잠에 오후 간식까지 먹고 난 오후 4시까지 계속 그 어린이집에 머무는 아이로서는 어쩌면 부모와 함께 있는 집보다 그 곳에 머무는 기억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에게 어쩌면 정말 집처럼 느껴질 수 있는 곳, 어린이집.


지금 문득 드는 생각은 그럼 유치원은 뭐지? 하는 생각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차이는 뭘까.

언뜻 알기론 보건복지부? 교육부? 뭐 그렇게 관할 공공기관 부서가 달라서 그렇다는 것 같던데.

사실 별로 관심은 안간다.

그저 내 애 잘봐주면 됐지.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내 아기와 나는 24시간 내내 같이 붙어있었어서 계속 같은 기억을 갖고 살았는데,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 나와 시간이 분리되어 이제는 그 시간동안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살게 되었다는 생각.

그 떨어진 시간동안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기는 알 길이 없고,

나 역시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여기서 한가지 또 어린이집 선생님이 존경스러운 점은,

그런 부모의 마음을 배려해서인지 열심히 어린이집 일과 사진을 찍어서 카페며 "한그루"라는 어린이집 어플이며 하는 곳에 열심히 알림장이며 사진으로 알려주려 노력하신다는 점이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다시한번 생각해도 정말 존경스럽다. 


아기와 빠빠이로 어린이집 입구에서 눈물의 이별을 한지 어느덧 한달이 흘렀다. 

오늘 아침의 내 아기는 이제는 잘도 선생님의 품에 안겨 내게 먼저 빠빠이로 안녕을 말한다.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빠빠이를 말하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울컥한다. 


이제 아기인 자신은 괜찮으니, 아빠가 살던 원래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는 듯 내게 위로를 건네는 듯 해서, 

괜히 아기의 작은 빠빠이 손짓과 밝게 웃어주는 미소가 나를 토닥여주는 것 같아서. 


현실의 경제적 문제들에 둘째는 꿈도 꾸지 않고 있었는데,

첫째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둘째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괜스레 꿈을 꾸게 된다. 

물론 둘째는 여전히 꿈만 꾸고 있다. 

그러기에 내 현실은 녹록치 않고,

어쨌든 현실과 생명을 저울질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둘째는 그저 꿈으로만 남기는 게 맞다는 생각을 확신으로 바꾸어주는 듯 싶다.

물론 지금은.

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사랑한다, 아가야. 




이전 05화 2024년 3월 8일, 사실은 심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