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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현 Jan 27. 2024

1. 메리야스는 바지 안에 넣어 입어.

#당신이 잊어버린 당신이 사랑받은 순간들




중학교 사춘기 때부터였나? 아니면 칼빵이 유행했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나?

아, 칼빵이 뭐냐고?


내가 6학년 때 또래 사귀는 애들끼리 서로의 이름이나 애칭을 손등이나 팔목 같은 곳에 칼로 살살살 긁어서 빨간 핏빛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 아닌가 싶은 이상한 칼빵 문화. 그때는 그런 게 있었다. 물론 당연히 한 번도 여친이 없었던(이건 강조, 어이 와이프 보고 있지? ㅎ_ㅎ..) 나는 남의 얘기였고, 그런 주변 친구를 "말세다 말세." 하고 봤던 기억.

출처: https://chamstory.tistory.com/1335



아무튼, 사춘기의 길목, 의미도 없고 상대도 없는 반항의 씨앗이 사부작사부작 피어나던 그때 그 시절부터 바지 안에 넣어있던 메리야스를 굳이 바지 밖으로 꺼내 너풀너풀 입고 다녔던 것 같다.


갑자기 뭔 놈에 메리야스 얘기냐구?

음, 그때는 물론 불과 얼마 전까지도 메리야스를 꺼내 입든 넣어 입든, 아니 아예 안 입기도 했던 나였는데 어느 날 딱 느낌이 왔단 말이지. 무슨 느낌이냐! 바로바로.


"아! 그래서 내가 어릴 땐 메리야스를 바지 안에 넣어 입었던 거구나!"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평범한 아침이었어.

그날 새벽도 꼭 두세 번 깨는 여느 때처럼 자고 있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끌어당기고, 그다음은 옆에 누워있는 내 얼굴을 작은 손바닥으로 팡팡 쳐댄 너. 결국 눈을 뜬 나는 너를 들쳐 안고 너의 잠자리로 들고 가 본능적으로(?) 기저귀에 손을 갖다 대고, '음 역시 많이 쌋군' 잠결에 생각하며 두툼해진 기저귀를 벗겨 던지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옆에 눕히고 내 이불을 끌어다 배가 춥지 않게 덮어주고, 그 옆에 누워 손바닥으로 너의 심장 언저리를 다독다독여 너를 재웠지. 이제 저 작은 수유등 불빛에 의지한 깜깜한 밤에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기저귀를 갈아낸 나 자신을 칭찬하며 나도 너의 옆에서 잠을 이어갔고.


그리고 맞이한 평범한 아침.

쉬야가 다 새버린 기저귀를 발견한 나는 어젯밤 나의 경솔했던 생각을 반성했지.

샤워핸들에 바둥대는 너를 세우고, 홀딱 벗겨 따뜻한 물로 물 샤워를 샤샥 시켜줬어.

그리고 다시 기저귀를 채우고, 내복 바지를 입히고 윗도리를 샥.

그런데 바로 그때.

오늘의 주제가 뙇!


"바지 속에 넣어 입어야 배 안 춥지! 배 추우면 병원 가. 병원 가면 주사 맞아. 주사 맞으면 아프지? 그러니까

넣어 입어야 되는 거야. 알았지?"


뭐지?

윗도리를 바지 속에 넣어 입었던 이유가 이거였어?


근데 나는 이런 걸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알고 아기한테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거지?

우리 엄마빠도 내가 지금 나의 아기한테 말했듯, 말했겠지.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의 애기같이 내가 애기였던 그때,

분명 그렇게 말했을 거야.


메리야스는 꼭 바지 안에 넣어 입으라고. 그래야 배가 안 춥다고.


그렇게 한참을 엄마빠 말대로 잘 넣어 입다가,

칼빵에 말세타령하던 그 언젠가부터,

이제 엄마빠의 도움은 괜찮다고, 없어도 된다고, 세상을 다 씹어먹겠다며 내가 최고라는 얄팍한 생각이 싹트던 사춘기 언저리의 그때부터 나는 엄마빠의 그 사랑을 잊고 내 마음대로 하기 시작했겠지...

그렇게 나도 이제 어른이라고 믿고 살다가,

그렇게 잊고 살다가...

이제서야,

내 아기에게 그 말을 똑같이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되네.


내가 지금 나의 아기에게 사랑을 말하듯,

나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구나 하는 거 말이야.


늘 나는 혼자고, 외롭고, 슬프고.


그렇게 매일 밤 다 쓰러져가는 낡은 다세대 주택 옥상에 올라,

내 마음은 하나도 몰라주고 세상을 밝게 비추고 싶다는 듯 휘영청 떠있는 커다란 달을 보며,

조수미가 부른 '나 가거든'이란 노래를 듣고 있는 명성황후라도 된 듯이,


왜 아직 어리기만 한 내가 이렇게 힘든 일을 겪어야 되냐며, 왜 나만 그래야 하냐며

나보다 더 작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원망하고 원망한 채 자라 잊어 버렸던 그때가 느껴지더라고.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모르는 내가 느끼고 있는 그 때,


내가 잊어서 버려버렸던,

정말 내가 사랑받았던 그 순간이 말이야.


너무너무 사소해서,

너무너무 당연해서,

그렇게 너무너무해서,

너무너무 잊어버린,

그 순간들 말야.


그래서 사부작사부작 그 느낌을 하나씩 남겨볼까 해.


사춘기는 커녕 아직 20개월밖에 안먹었는데도 벌써부터 아둥바둥 윗도리를 안 입겠다고 난리피는 너도 자라고 자라,

칼빵에 한심해하던 내 어린 시절 언저리쯤 되면,

그래서 엄마빠의 도움이 없어도

이 세상에서 니가 최고라고 믿게 될 그때가 되면,

너도 어쩌면 이 순간을 잊어 버렸을 테니까.


그러다 세상에 깨지고, 운명을 탓하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원망하고.

그렇게 길을 잃어 자신을 탓할지도 모를 언젠가가 왔을 때,

부디 이 글이 그런 너를 다독여줄 수 있길,


사소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으며,

그렇게 너무너무,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그 순간들.  


당신이 잊어버린 당신이 사랑받은 그 순간들이 힘이 되어주길.


출처: 우리 아기 발(?), 사진 찍는다니 발을 들이미는 클라스 보소 :)/


오늘도 사랑해,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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