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촌신청? 이런 미친놈이 진짜...”
지랑이 하루에도 몇 번식 들락거리는 미니홈피 화면에 친구추가 신청 알람이 깜빡인다. 폐급양아치가 자신에게 친구를 신청했음을 알고 당장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어휴-”
알 수 없는 힘 빠진 소리와 함께 지랑은 승낙을 누른다. 왜 폐급 양아치가 떠오르면 자동으로 호랑이의 그 망할 하얀 노트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뻔한 폐급이겠지만, 어떤 놈인지 알아둘 필요는 있으니까...'
[피터팬 워즈 라잇~ (배경음악)]
그런 지랑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위기 파악 못하는 미니홈피 배경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이건 또 뭔 노래야? 아.. 그때 축제 때 불렀던 그 꼬부랑 노래네. 허세까지 있으세요? 토 나온다 토 나와. 이따위 느끼한 허세에 뿅 가는 기지배들은 뭔 정신인지... 아! 내 동생이구나. 에휴. 하- 하필 이 기지배는 이딴 폐급에 빠져갖고는 이 언니를 피곤하게 하는 거야 진짜!!"
지랑은 마우스 커서를 거칠게 움직여 배경음악을 정지시켜 버린다.
불과 1분 정도 일찍 태어난, 똑같이 생긴 쌍둥이였지만 그래도 언니는 언니였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자라오면서 누구도 언니답게, 그래 언니답게 하는 게 뭔지 알려준 적 없건만, 1분이라는 알 수 없는 시간은 지랑을 언니답게 만들어왔다.
[안녕? 오늘 반가웠다. 또 보자. 킥킥.]
지랑이 일촌 승낙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지랑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폐급양아치의 한 줄이 그새 쓰여졌다. 지랑이 멀뚱멀뚱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방명록을 들여다본다.
당장이라도 삭제 버튼을 누르고 일촌을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멀뚱멀뚱 그 1분의 시간이 지랑을 말렸다. 더럽고 더러워도, 필요가 있을 때는 참는다. 중2라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게 가능한 게 이지랑이었다.
“어 그래ㅎ”
지랑이 짧게 댓글을 남겼다.
지랑은 저 '히읗(ㅎ)' 글자가 늘 마음에 들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아니 자신에겐 약간의 조롱을 상대방에게 날릴 수 있는 총알 같은 느낌을 주는 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놓고 엿 먹으라고 쓰기에 애매한 상대방, 그런 애매한 상황일 때 참 쓰기 좋다. 딱 그 느낌이었다.
히읗이라는 총알을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지랑은 본격적으로 폐급 양아치의 싸이월드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안 봐도 뻔하게 백이면 백 다 폐급다운 것들 뿐이겠지만, 그래도 단 한 가지라도 자신의 동생을 상처 입히지 않을 '희망'적인 무언가라도 있길, 그런 되지도 않는 '희망'이라도 제발 있길. 날카로운 맹수의 그것과 같은 눈빛과 손놀림으로 양아치의 공간을 마구 누볐다.
[오늘 기획사 대표라는 아저씨 만남. 내 목소리가 좀 우월하긴 하지. 큭큭.]
그러던 얼마 전 올린 게시글 메뉴에 올라와있는 폐급 양아치의 꼴 보기 싫은 큭큭 문장을 발견한 게시물에서 지랑의 발톱이 잠시 멈춘다. 망할 큭큭대는 문장들과 함께 업로드된 사진 속에는 요즘 대세인 유명 이름을 좀 알리기 시작한 아이돌의 사진과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로고가 쓰여있었다.
“꼴에 노래 좀 한다고 나대는 거 좀 보게. 이딴 놈도 가수 한다고? 하! 기가 막혀서. 다들 눈이 삐었나?”
지랑이 크게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못 볼 걸 본 것처럼 재빨리 스크롤을 내려 사진과 큭큭 글을 화면 너머로 보내버려 자신의 눈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버린다.
“헉.”
지루한 폐급의 글들을 한참 넘겨보던 지랑이 깜짝 놀란다.
사진첩에 올라온 사진 한 장.
최근 유행하고 있는 영화 포스터에 있는 단발머리의 여배우 사진이었다. 그 여배우의 얼굴을 본 지랑은 왜인지 호랑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우스 커서를 내리던 지랑의 눈에 사진 아래 양아치의 글이 들어왔다.
“난 이런 단발 여자가 좋더라. ㅋㅋ 넌 내꺼야. ㅇㅈㄹ... 큭큭.”
“휴...”
그 말에 지랑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자신의 동생 호랑은 단발머리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윤기가 좔좔 흐르는 긴 생머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호랑은 결코 긴 머리를 포기하지 않는 애라는 걸 잘 아는 지랑이었기에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 폐급의 쓰레기 더미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작은 "희망"을 발견해서 너무 기뻤다.
단발머리 여배우의 사진과 저급하게 큭큭대는 글을 멍하니 응시하던 지랑은, 이따위 폐급이 뭐라고, 호랑이 혹여나 폐급의 이상형일까 봐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다행이네. 됐어 됐어. 이쯤 해야겠다. 어휴.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밥이나 먹어야지. 아~ 배고파! 젠장할!!”
지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 볼 거라도 본 양 서둘러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 방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지만 지랑은 몰랐다. 지극히 자랑스럽게 당연히 알 리 없었다.
폐급 양아치의 문장 속, 하얀 배경 화면을 핑계로 어색하리만치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큭큭” 사이 숨겨져 있는 세 글자를...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