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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응 지읒 리을..?

by 빨양c


ㅇㅈㄹ..


후후 사이에 어색하게 떨어져 있는 글자 사이를 마우스로 까맣게 색칠하니 하얀색 세 글자가 까만 진흙탕 속에서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호랑은 정확히 그 의미를 잡아내고 말았다. 지극히 호랑스럽게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니,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정작 까만 세 글자의 당사자만 몰랐지만.


“이응.. 지읒.. 리을....? 이... 지랑??”

호랑의 비틀대는 목소리가 고통의 시작을 알리려는 듯 공기 중에 퍼져버렸다. 이지랑이 분명했다. 사진 속 단발머리 여배우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첫 감정은 그의 이상형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이어지는 감정은 혹시 내가 아닐까 하는 어설픈 설렘. 묘하게 호랑 자신을 닮은 것 같다는 환상. 그렇게 연결되는 기대감. 그렇게 두근거림이 잠깐 이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끝은 불안감의 쓴맛이 났다.

그리고 사진 속 아래 적혀있는 글자들은 그 쓴맛을 지옥의 불구덩이 맛으로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난 이런 단발 여자가 좋더라. ㅋㅋ 넌 내 거야. ㅇㅈㄹ... 후후”


지랑답게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지랑은 자신의 싸이월드를 그대로 컴퓨터에 열어놓은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랑이 지랑의 방에 들어왔고,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컴퓨터가 눈에 띄었다. 모니터 화면은 새까맣게 변해있었지만, 웅웅 소리를 내며 컴퓨터가 본인을 꺼주던, 켜주던 어떻게 좀 해달라고 호랑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이지랑. 이건 또 컴퓨터 안 껐네. 아빠엄마 힘든 거 알면서 전기세라도 좀 아껴야 하는 거 진짜 모르나 짜증 나”

지랑이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까만 판도라의 상자가 너무도 쉽게 열려버렸다.

판도라의 상자가 정말 까만색일 줄은 몰랐다.

그 안에 떠있는 새까만 화면이 호랑의 눈을 더 새까맣게 물들였다.


자신의 첫사랑. 그 남자의 세상이 호랑에게 펼쳐져있었다. 매일매일 훔쳐봤지만, 차마 친구신청을 누를 용기도 없었던 그곳. 그래서 더 알고 싶어도 허락받지 못했던 그의 공간이 보란 듯 호랑의 눈앞에 활짝 열려있었다. 처음에는 기쁨이었다. 명백하게. 그의 세상을, 그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는 희열이 들었다. 그 희열은 가당치도 않게, 호랑이 그를 생각하는 것처럼, 어쩌면, 혹시나, 그래 분명 호랑을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단 한 톨의 호랑을 가리키는 그 반짝임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호랑의 눈앞에 번쩍 거렸다. 그것이 지랑의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미처 들지도 않았다. 그저 호랑의 전부인 그의 세상이 어서 호랑에게 들어오라 손짓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렇게 호랑이 판도라의 상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지랑...”

상자 속에서 허우적대던 호랑의 현실이 나지막이 새어 나왔다. 새어 나온 그 현실 속에서 호랑의 목소리가 여전히 길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명백한 현실이 호랑의 눈 주변으로 들어왔다. 지랑과 일촌인 그. 만나서 반가웠다는 그. 그리고 사진 한 장. 단발머리. 그의 모든 게 지랑과 연결되어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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