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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언니 이지랑

by 빨양c



“야, 너 얘 알지? 얘 좀 불러봐.”

지랑이 웬일인지 날 선 목소리로 무리 중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한 남학생에게 말을 건넨다.

“야, 이지랑. 오늘 안 좋은 일 있냐? 니가 이유 없이 까칠하진 않을 테고 뭔데 그래? 야, 그거 가져와봐.”

지랑의 옆에 붙어 헤벌쭉 웃고 있던 지랑의 남자친구가 지랑이 말을 건넨 남학생을 향해 말한다.


“얘 어제 축제에서 그 노래 부른 애 아냐? 샬라샬라 꼬부랑 노래 그놈? 근데 어쩌다 천하에 이지랑 심기를 건드렸을까?”

무리 중 누군가가 말을 덧붙인다.


“됐고. 너 얘랑 같이 스티커 사진 찍은 거 봤어. 얘 알지? 지금 불러 당장.”

이지랑이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남학생을 향해 말한다.


“얘? 중학교 때 좀 같이 놀고 연락 안 한 지 꽤 됐는데... 번호가 있던가...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

남학생이 지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신의 휴대폰을 두드려 열심히 전화를 건다. 지랑은 그런 남학생을 계속해서 노려본다.


“야. 오랜만이다. 나야 나. 어 그래. 어제 너 거기 축제에서 노래 죽이더라. 어어. 웬일이냐고? 아 그게 아니고, 너 지금 여기로 좀 나올 수 있냐? 어디냐면 어 여기. 야 여자도 있지 당연히. 죽이는 애 있다. 어 많아. 일단 나와봐.”

남학생이 지랑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늘 느끼지만 지랑의 꽤나 불편한 중압감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티가 난다.


“지금 온대. 마침 집 근처라 금방 온다는데?”

남학생이 지랑에게 말한다.

“야, 걔 어떠냐? 괜찮은 애야?”

이번에는 지랑이 짧게 묻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여? 우리 지랑이가 나같이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남자 친구를 두고 왜 딴 놈한테 관심을 가지실까? 오면 좀 패줘야겠는걸? 하하!”

심각한 지랑의 이야기를 듣던 지랑의 남자친구가 무거워진 무리의 분위기를 전환할 겸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지랑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다시 되묻는다.

“말해봐. 어떤 애냐?”


“음.. 그냥, 양아치지? 폐급 양아치. 얼굴 믿고 나대는 폐급 양아치. 노래 좀 한다고 뻐기고 다니는?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엔 모르겠다. 어제 노래 부르는 거 보면, 좀 나아졌으려나. 아 저기 오네. 직접 확인해 보지 그래?” 남학생이 눈짓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지랑의 눈에 저 멀리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누군가가 보인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지랑은 더 볼 것도 없이 폐급 양아치라는 생각이 굳어져갔다.

또래 평범한 학생들이 지랑의 무리 역시 양아치 무리라고 하겠지만, 양아치 세상에도 급이 있는 법이었다.

지랑과 지랑의 남친이 주축인 무리는 선을 지켰고, 정도를 지켰다. 불의를 보면 가만 두지 않았고, 선량한 누군가를 아무 이유 없이 어떻게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얘는 그냥 폐급 양아치였다.

그것도 어린 게 어른 흉내에 빠져 여자에 눈이 돌아간 폐급 쓰레기 양아치.

지랑의 남친이 몇 번이나 주먹을 움켜쥐며 당장이라도 폐급 양아치를 패대기쳐서 무리에서 떼어 던져놓으려고 하는 게 느껴졌지만, 지랑은 그런 남친을 말렸다. 당연히 지랑도 그런 폐급을 두들겨 패서 두 번 다시 보기 싫었지만, 실상이 어떻든, 호랑이 좋아하는 남자애였고, 그런 남자애를 지랑 무리가 패버렸다는 걸 호랑이 알면, 안 그래도 안 좋은 쌍둥이 사이가 완전히 두 동강 날 것이 뻔했다. 지랑은 딱 하나, 그게 싫었다.

“야, 너 그만 꺼져라. 그따위 능글맞은 눈깔 굴리고 있지 말고.”

지랑이 낮은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오랄 땐 언제고, 놀만하니 꺼지라네. 니가 좀 유명한 그 지랄지랄 한다는 이지랑이라 이건가?”

폐급 양아치가 도발하듯 말했다. 그 말에 발끈한 지랑이었지만, 얼마 전 오글거리는 하얀색 노트가 계속해서 그런 지랑을 말리고 있었다.


“꺼져.”

지랑이 아까보다 높은 톤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어, 그래. 너 이제 그만 꺼지는 게 좋겠다. 내 여친이 심기가 이렇게 불편한 거 오랜만에 보거든. 이제 나도 슬슬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고 있고 말이야?"

지랑의 남친이 묵직한 목소리로 폐급 양아치를 향해 말한다.


“어어, 그래, 간다 가. 나도 바쁜 몸이거든.”

전형적인 강약약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센 척하는 폐급이 쫄아서 도망가는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이 지랑의 눈엔 더 최악이라, 저딴 놈에 미쳐있는 호랑이 생각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아! 또 보자. 이지랑! 킥킥."

폐급 양아치가 끝까지 놀리듯 지랑을 향해 말한다. 지랑은 그럴 일 없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마음 한편에 알 수 없는 불길한 찝찝함이 남아버렸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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