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호랑의 귀에 아빠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큰 소리가 들린다. 물론 호랑이 말한 게 아니었다. 그 소리에 몸이 우뚝 멈춘다. 아빠에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 호랑 자신. 하지만 그 소리를 낸 건 호랑이 아니었다. 그럼 누구...?
호랑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 하지만 자신과 달리 자신감 있고 더 큰 목소리.
‘이지랑 납셨네. 나도 쟤를 싫어하지만 이럴 땐 너보다 훨씬 낫다 야.’
‘나도 나도 동감. 아빠 피 뚝뚝 흘리는데 도망치는 너보다 낫지. 암~ 그렇고 말고.’
‘도대체 이 머릿속 것들은 이 짧은 순간에도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왜 이렇게 날 괴롭힐까.’
여럿의 목소리 틈으로 간신히 호랑의 생각이 머릿속에 한번 울렸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린 호랑의 눈에 지랑의 옆모습이 들어온다. 깜짝 놀라 하는 아빠의 표정. 그 눈길엔 방금 전까지도 호랑에게 보여줬던 물방울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좋아죽겠다는 저 입꼬리.
화가 단단히 난 듯 작은해장국집 주인에게 지랑이 뭐라 뭐라 소리치는 모습이 보인다.
‘쟤는 늘 저렇지. 아빠가 혼자 잘못한 건데, 저 주인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렇게 윽박을 지르나. 저 성질머리. 어휴.’
호랑은 지랑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지만, 아빠의 비어있던 앞 의자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앉는 지랑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에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랑의 눈에 지랑과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활짝 웃는 모습이 보인다. 지랑이 아빠의 초록병을 두 손으로 들더니, 깨진 잔 대신 새로 받아 더 반짝거리는 투명 소주잔에 소주를 부어 따른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소리치더니 마찬가지로 소주잔을 집어 들더니 넉살 좋은 웃음을 띠며 아빠를 향해 내민다. 아빠는 아까 혼자 있던 그때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그런 지랑의 머리를 콩 쥐어박고는, 물을 들어 잔을 채워준다.
투명한 두 잔이 부딪힌다.
부딪히는 그 장면,
시원하게 털어내는 아빠와 지랑의 모습.
그 장면들이 호랑의 눈에 날아와 박힌다.
‘넌 못하지.’
‘응. 넌 못해.’
‘너네 왜그래. 애초부터 얘는 지랑이랑은 다르다고.’
‘아 그러셔? 그래 다르자 치자. 근데 지랑이 낫지 않냐? 저게 아주 바람직한 부녀 사이 아냐?’
‘이호랑은 못하지. 쯧쯧.’
호랑의 눈에 물방울이 맺힌다.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다. 왜 자신의 머릿속에 살면서, 자신 편을 들어주는 목소리는 하나도 없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단 하나도.
호랑이 다시 몸을 돌린다. 아까는 무겁기만 했던 걸음이 뚜벅뚜벅 쉽게도 움직인다. 거리가 먼데도 귓가에 지랑과 아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멍하게 올려다본 텅 빈 까만 하늘엔, 왜인지 지랑과 아빠의 그 장면만 하얗게 가득 차있다.
그 날, 그 하늘, 그 장면에
호랑은 없었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