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해장국>
흔한 이름임에도 이상하게 눈길이 머물던 식당이었다. 그리고 이름답게 정말 작은 해장국 가게였다. 호랑은 해장국이란 걸 먹어본 적 없지만, 그래도 해장이란 게 장을 풀어준다, 즉 술 먹은 배에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는 의미란 건 알았다.
어른들은 몰랐을 것이다.
해장국이라는 세 글자를 이해하진 못하지만, 왜 어른들이 그걸 마시듯이 먹는지 아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많은 것을 안다.
아이들은 다 아는데, 어른들은 그걸 모른다.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작은 해장국은 커다란 투명창과 유리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두-세 개의 테이블이 있는, 이름답게 정말 작은 가게였다.
작은 가게 구석 한편에 작은 실루엣 하나가 호랑의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던 하루였지만, 평소 같지 않게 그 작고 검은 실루엣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와 동시에 호랑의 걸음도 자동으로 멈췄다. 그대로 얼어붙은 것 같은 걸음이 통유리창 끝 회색 기둥 사이로 호랑의 몸을 재빨리 감췄다.
“아빠?”
작고 검은 실루엣은 아빠였다.
아빠는 작은 해장국보다 더 작은 몸, 그것보다 더 작은 손으로 해장국 갈색 뚝배기에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며 밥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는 왜인지 오늘따라 유독 반짝 빛나보이는 초록색 소주병이 보였고, 그 옆에는 그것보다 더 투명하게 반짝 빛나고 있는 자그마한 소주잔이 있었다.
아빠는 초록병의 소주를 투명잔에 한잔, 두 잔 목에 털어 넣고 있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게.
‘야 이호랑, 들어가야 하지 않아? 아빠 혼자 저러고 밥 먹는데… 불쌍하지도 않아? 그래도 딸인데 들어가서, 밥도 같이 먹어드리고, 소주도 한잔 따라드리고, 이야기도 미주알고주알 해드리고’
‘그래 맞아.. 딸의 도리지 그게. 그러면서 아빠가 혹시 무슨 고민이 있는지도 들어드리고. 암. 그게 자식 된 도리지.’
머릿속 두 목소리에 호랑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희한한 일이었다. 머릿속에서 울린 소리가 심장까지 내려와 쿵쾅거리게 한다는 건. 그리고 쿵쾅거리는 소리가 머릿속 소리를 집어삼킨다는 건.
이상하지만, 그래서 또 신기한 일이었다.
“근데 발이 안 움직여...”
호랑이 중얼거린다.
아빠에게 갈 수가 없었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는 평소 아빠답게 아빠가 땀 뻘뻘 흘리며 다림질 한 흰색 와이셔츠에, 검정색 면 조끼. 거기에 포근한 정장재킷을 입었다. 소주 때문인지 분명한 좀 붉어진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투명 잔을 입에 털어 넣고 숟가락질을 하던 아빠의 손길이 잠시 멈춘다. 그 순간 호랑의 눈길이 아빠의 눈과 맞닿고 순간 살그머니 흔들린다.
‘눈물?’
‘맞네 맞아. 야 아빠 우는 거 아냐?’
‘이호랑, 너 때문 아냐?’
‘당장 저 작다고 소리쳐대는 가게 문 열고 들어가서 아빠 꼭 안아 드려. 그게 딸의..’
“도리지.”
호랑이 머릿속 목소리들에 그만하라는 듯 차가운 먹소리로 끼어든다. 그러고 보니, 머릿속 목소리가 떠들 때 호랑이 한마디 하면 그 소리들이 끊긴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오래 이어지진 않았지만.
‘왜 울지?‘
머릿속 목소리 하나가 묵직하게 던진다. 지금껏 없었던 낮고 묵직한 목소리였다. 호랑은 왜인지 이번 목소리는 싫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그 목소리는 아빠가 왜 우는지에 대해서 호랑에게 물어왔다.
호랑은 목소리를 멈추기 위해선 자신이 무언가 답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 목소리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기 위해서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길이 그런 아빠에게 한참 머물러있었다. 아빠가 자신을 발견할까 봐 초조한 마음 때문인지 심장이 계속 쿵쾅 거렸다.
아빠는, 많이 쓸쓸해 보였다.
힘들다는 단어로는 감히 담을 없는 짙은 회색의 보랏빛이 아빠를 위에서 아래로 눌러대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아빠를 지긋이, 눈치채지 못하게 눌러대고 있었다. 아빠는 그런 보랏빛에지지 않겠다는 듯, 손으로 끊임없이 초록빛 소주병을 들고, 투명잔을 가득 채워 입에 털어놓고 있었다. 얼굴은 더 붉어져 보였고, 그 붉음이 젖어있던 눈을 조금씩 물들이는 것 같았다.
왤까.
아빠는 수능시험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고,
학교에 갈 필요도, 학원에 갈 필요도,
친구들도, 사랑도,
아무것도 힘들어할 이유가 없을 것인데.
왤까.
뭘까.
저 묵직한 보랏빛은.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물어보면 되잖아.’
“못하겠어..
‘어휴. 답답아. 왜 못해? 남이야? 아빠잖아 아빠. 너 어릴 때부터 이쁘다고 물고 빨고 깨물어주던 아빠.’
‘맞아. 너 이러는 거 불효야 불효.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라. 니 딸이 이모양이면..’
‘얘들아 그만그만~ 호랑이 울겠다. 뭘 기대해? 얜 그런 애잖아 호호.’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하지만 호랑은 반박할 수 없었다. 어쩌면 머릿속 소리들이 호랑 자신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호랑보다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보다 자신을 더 많이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너무 기분 나쁘고 힘 빠지는 일이었다. 존재가 없어지는 느낌.
그러던 중 아빠의 행동이 갑자기 이상해진다.
오른쪽 손에 황급히 순백의 휴지를 가져다 댄다. 순백의 휴지는 순식간에 뻘겋게 물든다. 호랑의 눈에 바닥에 산산조각 나 깨진 투명 유리잔이 들어온다. 아빠를 지켜주는 것 같던 초록 소주병의 옆, 투명 유리잔이 깨져있었다. 보랏빛은 마치 기회를 잡은 듯 빨간 아빠의 손가락까지 무겁게 내려오고 있었다.
호랑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듯,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길 준비를 한다. 피를 닦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게 분명한 저 사람 좋은 아빠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다.
아빠다웠다. 피 뚝뚝 흘리는 본인 몸이나 잘 챙기지, 누군가에게 걱정 끼치는 걸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못난 사람.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하지 못하는 사람.
아빠.
딸랑-
그런 아빠를 외면한 채 뒤돌아서 한 발자국 뗀 호랑의 귀에 거칠게 울어대는 작은 해장국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