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누구라도 있어주길 원했더니 아무도 남지 않더라

Mㅓ리가 Zㅣ끈지끈

by 빨양c


#이것은 소설 (Ep11중 6ㅕ섯번째 이야기)
#제 브런치 북 [어떻게회사까지사랑하겠어] 보고 오면 더 좋아요! 연결되는 유니버스? ;)

*Ep6 요약: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밴쿠버 의대 때려치고 군대 간 이야기
#그리고 망할 영창은 덤덤덤덤?!


어젯밤 퀘벡시티 스테이션에서 기차를 타고 오타와에 도착했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7시간 정도 걸리는 시간을 기차 안에서 오롯이 보낸다는 게 어느새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기차 타는 게 그리 좋았는데, 너무 지치네 휴'


원래는 몬트리올을 가기 위해 탄 기차였지만 자연스럽게 오타와까지 오게 되었다. 이유는?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핼리팩스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오타와까지 온건 조금 일정이 빡빡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3초 정도 들었으나,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는 봐야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고, 그래서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몇 시간을 더 달려 오타와에 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오타와의 국회의사당 앞.

어린 시절 살았던 밴쿠버와 캐나다 동부의 가장 큰 차이는 파란 하늘인 것 같다. 물론 밴쿠버도 날씨가 좋을 때가 있기야 하지만, 왜인지 항상 비 오는 날씨가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깔려있다.

‘오죽하면 T.G.I.S.란 말이 나왔을까’

땡스갓이츠써니데이!

Thanks God Its Sunny day!


그곳에 비해 토론토, 퀘벡, 오타와 등의 날씨는 그야말로 쾌청. 눈을 부술듯한 새파란 하늘이 보이고, 그 밑으로 초록초록 잔디밭 위 빨간 옷을 입은 근위병이 보인다.

영국의 근위병 교대식 전통이 캐나다에도 전달되어, 아직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느꼈던 캐나다와의 차이 중 하나는, 한국은 오천 년의 역사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캐나다는 본인들의 뿌리, 역사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아서인지 옛 전통을-그것이 비록 타국의 것일지라도-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


‘근본을 찾고 싶어 한다는 건 캐나다나 나나 비슷한 느낌이긴 하네’


열심히 제식을 수행하는 근위병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캐나다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바로 자진입대를 했던 때가 생각난다.



일방적으로 캐나다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하고 한국에 오니,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부모님의 반응은 냉랭했다.


'캐나다에서의 멋진 의사를 꿈꿨던 그들의 꿈을 그 당사자인 내가 깨부셨으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그 꿈은 내 꿈이 아니라

부모님의 꿈이었어..’


조기유학은 내게 나는 한국인인가, 캐네디언인가에 대한 고민을 마음속에 자연스레 쌓아주었기에,

군대 입대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최대한 직접적으로 진짜 한국인이 뭘까에 대한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캐나다에선 군인이 존경받는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기억도 한 몫했겠지만.


나는 진짜 한국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도 내게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정말 한국인인가 물으면 그렇다고 손쉽게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부모님도 한국인이고 내 여권도 대한민국이 찍혀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유학은 내게 한국적인 게 남아 있나에 대한 의구심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어차피 캐나다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인이, 그리고 어차피 되길 원한다면 최대한 빨리 진짜 한국인이 되자 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의대를 때려치고 육군에 입대했다.

자세한 군대 얘기는 생략. 재미없으니까.


그래도 아쉬우니 하나만 말하자면

군대 초반 무수히 많은 남성 한국인이 뿜어내는 한국어의 반은 욕설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 틈 속에서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친숙한 반국인의 적응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몸을 열심히 움직였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해야 한다면 지금 하자.

말을 제대로 못 하면 몸이라도 나서야 적응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결과는?


"여기가 영창이구나.."


입대 후 1년쯤 지났을 때였을까 나는 영창, 그러니까 군대 감옥! 그곳에 홀로 앉아있었다.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이었던가?,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이 당연히 따라왔다.


나는 1년 동안 군 선임으로부터 내가 겪은, 내가 배운 대로, 후임들을 대했을 뿐이다.

물론 내 삶의 배경이, 그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 믿게 했기 때문에 조금 더 몰입했던 것 같긴 하다.

한국어를 버벅거리던, 그래서 혼나기 일쑤였던 나를 가장 아껴주었던 선임이 있었고,

그래서 가장 믿었고, 그 선임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선임은 결정적인 순간에 말하더라.


"이번 한 번만 네가 다 했다고 해. 부탁이다 정말."

제일 가깝다 믿은 사람이

제일 간절하게 하는 부탁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나는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어를 그 사람보다 못해서였을까?

이게 무슨 말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군대라는 조직이 그렇듯 무슨 말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이미 잘 짜인 각본 속 누군가처럼 나는 영창 쇠창살 안에 내던져져 있었다.

한국어보다 영어에 익숙해 있었어라는 건 한낱 핑계일까?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고결한 생각을 갖고 있어도

말을 제대로 못 하면 어린애나 바보 취급당한다는 건 직접 겪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공항에 덩그러니 남겨졌던 그때 그 어린 시절에 몸으로 배웠던 그 경험이,

이상하게도 어른이 된 그때도 계속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을 듣기 위한 차분한 기다림을 허락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쁘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바쁜지 알지도 못하지만 그 바쁨 때문에.


24시간 같이 먹고 자고 하며

나를 캐나다에 홀로 던졌던 부모님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가족 같은 느낌이 이런 거구나 알려줬던 군 동료들이,

본인에게 피해가 될 거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엔 결국 상대방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살고 싶은가.


'진짜 믿을 사람 없구나. 진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은 내겐.. 사치롭구나.'

영창 바닥에 홀로 앉아있자니 많은 생각이 흘러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캐나다에서도 혼자였고, 한국에서도 결국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라 발버둥 치며 끊임없이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갈망했지만, 내가 뭘 해도 결국 혼자로 남게 되는 이 아이러니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만 남았다.


한국에만 오면, 혼자가 아니게만 되면

아무라도 믿을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한국에서의 1년은 누구도 믿을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현실.

'저런 교대식이 전쟁에서 필요할까.

전쟁을 모르는 평화로운 나라의 군대놀이 같다면 무례하다 혼나겠지?’

안 좋았던 군 시절 기억이 떠올라서였을까? 새파란 하늘 밑 빨간 제복의 누가 봐도 멋지다고 할 근위병 교대식이 냉소적으로만 보인다.


누가 들으면 아니, 누가 들어도 어이없고, 어처구니없는 짓이라 하겠지만,

그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캐나다 생활을 청산하고 내가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한건, 입대였다.


나는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가는,

그래서 나도 앞으로 남은 삶을 한국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그곳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됐지.. 흐음.’


그리고 누군가와 늘 함께 있고 싶다는 그 갈망들이

다시는 아무도 함께 할 필요 없다는 절망으로 바뀌어버린 것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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