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하! 인생 개킹받는다 진짜..

이번 생은 망했어로 귀결되는 삶 앞에 Ml치Zl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by 빨양c


#이것은 소설 (Ep11 중 5ㅏ섯번째 이야기)
#제 브런치 북 [어떻게회사까지사랑하겠어] 보고 오면 더 좋아요! 연결되는 유니버스? ;)

*Ep5 요약:
#캐나다 퀘벡시티
#조기유학 때려치고 군대가는 돌아이?
#소울리스좌 아마존존조로존

나는 지금 퀘벡시티(Quebec city) 쁘띠 샹 플랭(Quartier Perit Champlain) 거리를 걷고 있다.


토론토에서 항공기 연착으로 인해 도착지인 핼리팩스 항공기를 놓치자 무슨 변덕인지 괜히 바로 목적지로 가기가 싫어졌다. 뭐.. 결국 친구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그곳을 가긴 해야겠지만..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라는 핑계를 일단 목에 걸어두고, 가는 길에 어디를 가볼까 구글맵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눈에 띈 퀘벡주 퀘벡시티.


어린 시절 밴쿠버에서 떠다니는 구름처럼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나에게도 생긴 일본인 친구 하나가 있었다. 그 친구와는 그 이후로 밴쿠버에 있는 UBC의대 합격도 같이 했어서 꽤 오래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그 친구는 늘 입버릇처럼 본인은 나중에 퀘벡주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었다. 캐나다 내에서도 영어가 아닌 불어를 고집하는 약간은 이질적인 특징이 가득한 도시라고 소개하며, 본인은 겉은 일본인인데 속은 캐네디언이라 생각하는데, 그들은 겉은 캐네디언인데 속은 프랑스인이라 생각한다며 흥미롭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어디 사람인지를 어린 마음에 고민했던 생각이 난다.

그래, 바사삭 사라진 정체성.

조기유학은 영어를 주지만,

나의 뿌리에 대한 의문도 같이 던져주었다.

겉은 한국인이고, 속도..한국인인가?묻게되는 아이. 그렇다고 속이 아직 캐네디언이란 생각은 안 드는,

그 끝과 끝의 중간에 서 있는 아이.

그때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저런 기억을 떠올리며 쁘띠 샹 플랭 거리를 지나, 아브라함 평원(Plains of Abraham)으로 향한다. 예전 공유랑 김고은인가 그 배우가 나왔던 도깨비라는 드라마의 엔딩 장면으로 한국인에게 유명해졌다는.


전염병 시대임에도 여기는 마스크도 자율인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밝은 얼굴을 활짝 드러내고 있다.

잠시 쉬려 평원 오르는 길 벤치에 걸터앉으니 한 무리의 고등학생쯤 되는 나이의 학생 무리가 평원의 잔디 위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다. 손을 위아래로, 다리 스텝도 제법 춤을 잘 추는 학생들 같다.


아! 춤추는 학생을 보니 어젯밤 호텔에서 너튜브 알고리즘이 띄어준 요즘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소울리스좌? 놀이동산 근무자들의 춤추는 영상이 떠오른다.


"앞에 있는 안내근무자의 안내를 받아 한 자리에 두 분씩 한 보트에 열 분이서

머리! 젖습니다~ 옷도! 젖습니다~ 신발! 젖습니다~ 양말까지!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 양말! 다. 다. 다. 다. 젖습니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입니다

아! 마! 존조로존조로존~"

이런 병맛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놀이기구 탑승 안내를 하는 근무자들의 영상이었다.


랩처럼 빠른 멘트를 영혼 없이 막힘없이 술술술술 하며 박자 따라 춤까지 착착착해내는 게 신기했다.

일터에서 영혼 없이 일을 해도

주변에 피해 주는 것 없이 그렇게 착착 해내면 본인 월급 몫은 해낸 거 아닌가?

근데 사장들은 난리지?

그 항공사에 회장, 팀장 윗 꼰대들은 내게 왜 열정이 없냐고, 영"혼"이 없다고, "혼"을 냈을까?

내가 그들보다 더 능력 있는 것 같았고,

그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도 그들의 사고방식은 이해가 안 된다. 뭐..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영상 속 사파리 셔츠를 입고 영혼 없는 표정으로 경쾌하게 박자를 타는 춤을 보며 그들이 과연 학창 시절부터 그곳에서 그렇게 일하고 싶어 한, 그러니까 그 직업이 꿈이었을까 궁금해졌다.

한국의 교육 정서 상 어릴 때부터

'난 커서 절대 놀이동산 안내 가이드가 되겠어!!'라고 하는 학생 꼬마는 많이 없을 것 같다.

또 그렇게 말하는 본인의 자녀에게

'오구오구 그래 멋있겠다 한번 그거 해보렴' 하고 너그럽게 말해줄 수 있는 부모는 더 없을 것 같다.

그저 어찌어찌 흘러 흘러 살다 보니 본인도 모르는 새에 그곳에서 랩을 하고, 춤을 추고 있게 되었겠지. 근데 막상 해보니까 신나고 재밌어. 그럼 그냥 하는 거지.

학창 시절의 꿈-대다수는 이루지 못한 부모의 그 꿈-을 실현하는 것보다 본인이 신나고 재밌게 일할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 아닌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

어차피 노력해도 이번 생은 망했는 걸로 귀결되는 현실 앞에서.

그럼 나 하고 싶은 거라도 하고 살아야 덜 억울할 거 아냐? 그래야 내가 잘할 수 있는 거라도 찾지.

우리도 미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그 잘난 니들이 만들어 놓은 최악의 현실 앞에서.


도대체 내 삶은 왜 이모양이지

학교에선 공부만 열심히 그리고 잘만하면 성인이 되어 모든 게 보장될 것처럼 교육하지만,

글쎄. 과연 그런 정해진 교육체계를 잘 따라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잘해도,

나보다 더 잘하고,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은

항상 있는 현실 앞에서..

어차피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당장 내가 신나고 즐거운 일이라도 해야 내가 행복하지 않겠어?

무엇보다 내가 당장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고. 얼마나 어마무시으리으리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더 참기만 해야 돼? 말뭐!


'뭐. 그런 꿈을 물어봐주는 점장과 직원들의 모습에 반해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다 바로 때려치운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쯧.'


글쎄 꿈이라..

캐나다에서 유학생활 동안 그 불편한 불안함 속에서도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키고 싶어 나름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지 나는 밴쿠버에 있는 UBC의대에 합격했다. 캐나다 내에서도 알아주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쁨과 그것도 사람을 고치는 의대생이라는 프라이드에 한껏 취해 1학년을 시작했다. 나는 피 닦고 살 꿰매는 의사보다,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른 채 해외로 던져져 홀로 자라게 되는 공허함을 먼저 배우는 아이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내 뜻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진 않지.


1학년 생활을 하며 그런 꿈이 조금 생겨났을 때쯤 어머님의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정확히 내용은 기억은 안 나지만 요점은 아버지가 회사, 그러니까 소위 대기업이라 불리던 그 회사에서 임원 승진에 실패하셨고, 조만간 잘리실 것 같다는 이야기와 그러면 너에 대한 학비, 생활비 등등 유학비가 힘들어질 수 있으니 어떻게 해야 좋겠냐는 분명 질문이지만 무언의 결정이 이미 담겨있는 그 전화 한 통.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

"무슨 일이 있어도 너 거기 공부 마무리 짓게 해 줄 테니 딴마음 먹지 말고 학업에만 충실해라"는 지극히 뻔한 가장의 무게를 견디겠다는 전화.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선택을.

물론 휴학하고 돈을 벌어 어떻게든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그때쯤 한국의 비자 제도상 군 문제로 국적을 선택해야 했기에 선택의 순간은 내 목을 하루하루 조여왔다.

앞서 언급한 캐나다에서의 그 일본인 친구는 상대적으로 이중국적이 허용되어 자유로워 보였다. 그게 조금 부러웠던 거 같긴 하다. 아주 조금.

그리고 그 아이는 내가 캐나다에서 같이 학업을 이어가길 원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깔끔했다.

유학생활 포기. 한국으로의 귀국.

미련은 없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내던져진 어린아이가 그 상황을 유지하기 어렵다면, 그리고 본인으로 인해 어려워질 가정형편이 뻔히 보인다면,

이미 결정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거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길로 대학에 자퇴 신청서를 내고, 결과도 통보받기 전 한국으로 귀국해 바로 군대 입영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나의 캐나다에서의 조기유학을 끝을 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끝이 났다 가 아니고 끝을 냈다는 것이다. 정해진 그들의 뜻을 거부한 나 스스로 한 첫 결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더 이상 캐나다에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홀로 던져진 것에 대한 부모님을 향한 통쾌한 반항이었을까?

아직 어린 마음에 그때의 내가 느꼈던 고통을 이젠 부모님께 보내드릴 차례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 마음이 없진 않았겠지만..’

여러 생각이 흘러가는 동안,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어 아브라함 평원에 긴 해무리가 지고, 저 멀리 보이는 페어몬트 호텔(Fairmont Le Chateau Frontenac Hotel)에 야간 조명이 켜지고, 그 너머 칠흑 같은 물결이 보인다.

춤 연습을 하던 학생 무리는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본인들의 큰 웃음을 내뿜으며 계속해서 연습을 하고 있다.

나이 있어야 웃음이, 그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꿈을 좇는다는 건 뭘까?

부모님의 꿈을 이뤄드리는 게 정말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는 걸까? 그래서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다면 정말 그게 내가 바란 행복이었을까?

그럼 지금보다 그들과의 사이가 좋아졌을까.


돈, 명예를 좇는 것보다 놀이동산 근무자들처럼 눈앞에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춤을 추면서 본인이 서있는 그 공간, 그 순간에 누구보다 스스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또 그 길을 택한 본인을 믿고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나는 의대를 포기했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다 그것마저 때려치우고

지금도 이렇게 아는 이 하나없는 어딘가에서 떠돌고만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순간이 의미 없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휴.. 도대체 내 삶은 왜 이리 킹 받지..’




계속.


keyword
이전 04화Ep4). 나는 내 한몫도 껴안지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