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나는 내 한몫도 껴안지 못하는데

아니, 그분 앞에 나를 털어 놓을 용기나 있을까

by 빨양c


#이것은 소설 (Ep11중 4ㅔ번째 이야기)
#제 브런치 북 [어떻게회사까지사랑하겠어] 보고 오면 더 좋아요! 연결되는 유니버스? ;)

*Ep4 요약:
#캐나다 토론토
#조기유학 보냈더니 나락으로?
#10분에 9만원이 아깝지 않은 갓은영쌤



'저게 그 CN 타워구나. 토론토에 좀 더 머물게 일정을 짤 걸 그랬나.'


이름 모를 호텔에 누워 천둥번개가 요란한 창밖을 보니 저 멀리 토론토의 랜드마크라는 CN타워가 보였다. 서울 남산타워 모 그런건가?


대학 시절 알게 된 토론토 출신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 난다. 자기는 토론토에서 나고 자랐고, 몬트리올, 퀘벡, 오타와, 캘거리 등등 주변 캐나다 도시를 여행했지만, 정작 본인이 사는 토론토의 상징인 CN타워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고.

원래 가까이 있는 것에 더 소홀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웃으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인생이 그렇지.

가까이 있는 것을 그때는 언젠간 해야지 하며 무심히 살다가, 결국 세월이 지나 못하게 된다는 뻔한 스토리. 그리고 더 치명적인 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

‘결국 그는 영원히 CN타워를 못 올라가 보겠지’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저게 그 CN타워로군?


응 맞다. 나는 지금 토론토의 한 호텔에 와있다.

원래 계획대로였으면 어제 인천공항을 출국했으니, 지금쯤 캐나다 동부 핼리팩스에 도착해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역시나 캐나다의 날씨는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지. 망할.’

전염병 시대라 비행기도 자주 없길래 어쩔 수 없이 항공편 시간을 타이트하게 짰더니 이 꼴이 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래도 비행기 연착으로 인한 딜레이라 호텔은 항공사가 제공해줬다는 점? ㄱㅇㄷ!


어차피 벌어진 일, 계속 불만만 토하는 것보다 밝고 명랑한 나답게 그 와중에 재밌는 걸 찾아보자며, 재밌는 너튜브 보며 큭큭대며 웃기도 하고,

인별그램 보며 내가 떠나온 한국은 별일 없는지 사이버 순찰 한번 해주고 (물론 내 존재 따위 관심도 없이 잘만 흘러가는 걸 다시한번 확인했지만)

그렇게 하나도 심심하지 않고 정말로 재밌어하고 있지만,


천둥번개 빗소리가 창밖을 때리고, 마치 사람 하나 없는 황량한 도시에 홀로 버려진 듯 캄캄한 칠흑으로 도배된 밤, 거기에 맥주 한 잔은 완벽하게도 머릿속에 또다시 수많은 생각꾸러미를 끌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생각 10중 8,9는 안 좋은 생각이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서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너무나 와닿는 밤이다.


그 수많은 머릿속 생각 중 한 가지는,

오늘의 항공편 연착과 그로인한 계획에 없던 이런 호텔이 어쩔 수 없이 오버랩 시켜주는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난 첫날.

13살의 나는 부모님의 강한 의지에 의해 조기유학을 보내졌다.

목적지는 밴쿠버였고, 그때만 해도 왜인지 모르지만 하와이를 경유했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상상할 수 있은 그 좋은 하와이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오늘처럼 연착되었고, 밴쿠버행 경유 편을 놓친 그때 그 아이는 공항에 홀로 남겨질 수밖에.


그리고 새벽시간 공항에 홀로 내동댕이쳐져 본 사람은 안다.

꺼지지 않는 불빛이 그 넓은 공항 공간을, 밤의 침투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양 새하얗게 밝히지만,

밝아진 만큼 더 텅 빈 공허함도 같이 던져준다는 것. 그리고 그 공허함은 어린이에겐 어느새 공포로 바뀌게 된다.

아무도 없고 아무 말도 할줄 몰라 눈물만 흘리던 중, 지나가는 노란 머리 안경 쓴 청소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뭐라뭐라 말을 건다. 거기서 할 수 있는게, 할 줄 아는게 없는 아이는 울음소리만 커진다. 그 아이는 영어를 몰랐다.

물론 아이는 그 큰 공항에 혼자 남겨질 줄은 더욱 몰랐다.


그저 평소와 똑같이 즐겁게 친구들과 학교에서 다녀온 어느 날, 부모님은 그 아이를 식탁에 앉히고 평소와 다른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에겐 어려운 말, 아니 듣기 싫었던 말이었을까.부모님의 이야기가 정확히 이해가 안 됐는데 어쨌든 공항에 간다는 거였고, 비행기를 타게 될 거라는 말이었다. “우와 비행기~?”

그때 알아듣지 못한, 하지만 절대 놓치지 않았어야 할 말은 "너 혼자 가게 될 거야"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게 문제.


인천공항 출국장 보안시설로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그 아이는 출국장 문을 부모님 없이 혼자 걸어 들어가게 될 줄 몰랐다. 아니 알았겠지만, 설마 진짜 혼자 걸어가게 될 줄, 완벽한 혼자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몰랐던 거였던 것 같다.

부모님은 여권과 티켓을 꼭 쥐어주며 이거 잘 들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면 나를 돌봐줄 다른 부모-지금 생각하면 홈스테이 가정의 보호자라는 의미였을-그들이 문 앞에 서있을 테니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부모님도 몰랐겠지.

비행기가 연착되고 그 작은 아이가 누군지도 모를 노란 머리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순백의 낯선 항공사 사무실로, 그다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셔틀버스에 태워져, 이름도 모를 호텔에 머물게 될 줄.


그렇게 나의 조기유학의 첫 기억은 낯선 공항, 그리고 더욱 낯선 호텔 하얀 시트 침대 위였다.

지금 이 토론토의 호텔방처럼.

그때 그 하얀 시트 위에서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는가?

그저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학교에서 축구하며 놀던 친구 두 명이 보고 싶었고-물론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날 혼자 버려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눈물이 되어 뚝뚝.

회사가, 돈 버는 게 그렇게 중요해서 나는 아직 어린아이인데 혼자 이 무서운 곳으로 버렸다는 원망.

그리고 인간의 무서운 본능은 살아나,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 살아남겠구나 하는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냉혹한 결심까지.

다행히 항공사의 배려로 하루 늦긴 했지만 어찌어찌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고 이상하게 생긴 공항에 목각인형들을 지나 입국장을 나오니, 처음 보는 외국인 노부부가 내 이름이 써진 하얀 종이로 날 안아줬었다.


한국에서 출국장을 나설 때만 해도 어리광만 부리던 아이였지만,

밴쿠버 입국장을 벗어났을 때 이미 그 아이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다.


일찍 철이 든다는 건, 절대 좋은 게 아니다.

어른들은 그 말을 좋아하는 같지만,

아이에겐 결심의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

분명 큰일이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평생이 흘러도 모를 그 일이.


부모님은 아직까지도 그때 내가 없어진 줄 알고-국제미아라는 표현을 쓰셨었다-너무 슬프고 힘드셨다고 했지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그들을 위로할 줄 아는 몸만 커버린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 한 켠의 하얀 시트 위 그 아이는 아직도

"그랬으면 혼자 보내지 말았어야지. 조기유학 같은 거 어른의 욕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유배생활이. 아니, 유학생활이 행복했을 리 있을까?

물론 처음엔 모든 게 신기했고, 어떤 날은 부모님의 그 "영어" 기대를 만족시키고 싶은 어린 마음에 다 아는 홈스테이 집 가는 길을 굳이 종이 지도를 꺼내 들고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길을 물어보는 척하며 영어를 배우려고도 해봤고,

그렇지만 결국 채워지지 않는 공포가 되어버린 외로움 앞에

'난 영어가 아니라 가족이, 사랑이 필요해요'

눈물자국 가득한 어린 글씨의 한국어로 쓰인 일기장만 남았을 뿐.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혼자 공항출국장을 들어가고, 입국장을 빠져나오고, 연착이 되면 항공사를 시원하게 욕도 해주고, 그 와중에도 호텔 업그레이드까지 요구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이런 건 차마 어린아이에게 시킬 짓은 아니지.’


난 공항이 싫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공항을 자신의 꿈이라 말하고, 거기서 일해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같은 공간이어도 어떤 일을 겪었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내게 공항은 준비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절벽 끝으로 밀어 넣은 곳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것도 가장 믿었던 이들에게.



남은 맥주 한 캔을 입안에 털어 넣고 생각을 그만하자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본다. 그렇다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밖으로 팍팍 튀어나올리는 없지.

‘잘 알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건 왜일까?’


생각을 조금이라도 밀어내고자 무심코 켠 너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요즘 유행하는 갓은영 심리학자? 의사? 앞으로 끌어들였다.

많은 어린이를 상담하고,

나이만 먹은 어른이도 상담하고,

결혼해서 고통받는 부부를 상담하고,

돈과 명예 다 가진 성공한 인생으로만 보이는 방송인들의 고민을 끌어내

눈물로 잇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어지는 다 이해한다는 차분한 위로.


저렇게 처음 보는 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한다는 무한의 눈빛을 보내주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본인도 감정 소모가 심할 것 같다. 어쨌든 고통받는 상담자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하니까.

적어도 나는 부모님을 포함한 어느 한 사람에게도 저런 눈빛을 줘본 적도, 줄 수도 없을 것만 같다.

내 주변 사람들은-그들의 표현에 의하면-나를 재밌고 반짝이고 밝고 가끔은 정신나간 짓도 하는 사람으로만 보는 듯 하지만,

내면은 이렇게나 상처투성이다.

영상은 갓은영 선생님이 상담자를 껴안아주는 것으로 끝이난다. 껴안고 2-3초 가만히 머무는 게 인상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한다는 듯이.



나는 내 한몫도 견뎌내기가 이렇게 힘든데

저분은 어떻게 처음 보는 다른 인생까지 저렇게 껴안아 줄 수 있을까.


나는 강한 척 하지만 한없이 나약하다.

역시 캐나다로 오지 말았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첫날부터 어린 시절 상처만 들쑤셔 난도질을 해대니 원.'

오랜만에 온 캐나다는 지금 이 날씨만큼이나 칠흑 같은 어둠만 내 마음에 꽃 피운다.


난 하나도 밝은 사람이 아니다.

아무도 이런 나를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겠지.


' 갓은영 선생님이라면 이런 나라도 껴안아줄까?'

나와 가장 가깝다고 하는 부모님조차 안아주지 않았던 나를.

아니, 나는 과연 저분 앞에 내 상처들을 다 털어놓을 용기나 있을까.


밝아보인다고 해서 속이 비어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늘도 편히 자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취한 눈으로 바라본 창밖 CN타워가

가까우니까 더 소홀한 게 인간이라고 비웃는 듯 하다.

비어버린 맥주캔이 호텔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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