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아무리 말해줘도 모르다는 거야.

by 빨양c


#이것은 소설 (Ep11 중 7번째 이야기)
#제 브런치 북 [어떻게회사까지사랑하겠어] 보고 오면 더 좋아요! 연결되는 유니버스? ;)

*Ep7 요약:
#캐나다 몬트리올 노트르담 성당
#캐나다 의대 때려치니 나는 그냥 한국의 고졸이 되더라.
#전염병이 터진 질병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의 삶이란.


캐나다처럼 땅덩어리, 그러니까 영토가 넓다는 건 좋은 것 같다.

얼마 전 갔던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외에도 그만한 인구가 몰려 사는 도시들이 여러 개 생길 수 있고,

자연스럽게 인구 분산이 이뤄져 다양한 도시들이, 각각의 멋을 뽐내며 성장한다.

물론 한국도 부산, 울산, 광주, 강원도 등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도시들이 발달해있지만,

아무래도 서울이라는 한국의 수도에 집중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도한 집중화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수도 이전을 추진했으나 반쪽짜리로 끝났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


아무튼 나는 일전 오타와를 가기 위해 패스했던 몬트리올에 기어코 다시 돌아와 있다.

사실 퀘벡시티를 봤으니 몬트리올의 감성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패스하고 핼리팩스로 바로 가려했지만, 왜인지 모를 이유로 몬트리올로 발걸음이 향했다. 그리고 오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

아무리 말해줘도 모른다는 거야."

-라고 유서를 남긴 사람이 있었다.

그를 추모하려고 이 성당에 온 게 절대 아닌데,

성당에 오고 나니 그가 생각났고, 어쩌다 보니 지금 이렇게 그를 추모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난 이 다섯 글자가 좋다.


오늘 낮 나는 몬트리올의 야외 카페에 앉아 프랑스식 아주 진한 커피를 한잔 하고 있었다.

물론 프랑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몬트리올이니까 프랑스식 아닐까.

옆 의자 위 누군가 놓고 간 종이 신문이 보였고 여러 가지 구인 광고 정보가 담겨있었다.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하지만 눈에 기어코 띄고 만 몬트리올 보건청에서 급하게 전염병 대응 인력을 계약직으로 뽑는다는 광고였다. 소수민족 쿼터제 방식으로 5명당 1명을 장애인 혹은 유색인종으로 채용한다는 기본목표가 눈에 들어왔고, 프랑스의 전통을 중시하는 몬트리올 지역의 특색에 맞게 불어에 능통자 우대가 적혀있었다.


'공무원이라...'


군대를 제대한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집은 가난한 편은 아니었다. 비록 아버지가 승진에 밀려 그 높은 자존심에 못 이겨 사표를 내고 협력업체로 이직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 수입이 없어져 손가락 빨고 그런 집안은 아니었다.

다만, 부모님의 의중과는 정반대로 캐나다 의대를 내던지고 홀연히 군대에 갔다 제대한 나에게 주는 돈은 일절 끊어졌을 뿐. 그래, 나는 돈을 좀 벌어야 했다.


뭘 할까 알아보던 나는 아무것도 내 또래의 구직자들보다 나은 게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한국의 취준생이라면 흔하게 갖고 있다는 컴활, 한국사, 토익 이런 게 전무했고,

심지어 어쨌든 나는 고졸이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건 한국 직장생활 문턱에 가는데도 아주 큰 장애라는 걸 그때 배웠다. 그래도 나는 의대도 갔던 사람인데.. 이런 아쉬움이 다 무슨 소용이랴.

뭐 지금도 대학 타이틀이 없다는 건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다.

난 한국의 대학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학문을 연구하기보단 취업기술을 가르쳐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다.

아무튼, 돈을 벌어야 했던 나는 할 줄 아는 게 그거뿐이라고, 결국 영어를 활용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너무 싫었던 영어였지만, 결국 그걸 돈벌이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고마움도 아니고, 원망도 아닌, 이상한 기분.


그때 6개월 정도 질병청 소속 전염병 대응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내가 뽑히게 된 이유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고졸 출신들에게도 공직 기회를 제공하고-아마도 일자리 숫자 늘리기 놀음의 일환이었을-국내 입국해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염병 대응 체계를 갖추는데 필요한 인력을 채용했다. 통역사.

그리고 그 말은 고졸이며 영어에 능숙한, 그리고 나름 의대 1년 차 지식까지 갖춘 이상한 이력의 나를 안 데려갈 이유가 없었겠지.


캐나다에서의 어린 시절과 군대에서의 경험 등등은 나름 내 첫 직장에서의 조직생활에 당연히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뭐 나는 어렵다 생각하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날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들과는 뭔가 다르다 본능적으로 느끼고 멀리하는 기분이 들었달까?


'뭐 상관없지. 난 돈 받은 만큼만 해주면 되니까'


하는 일은 단순했다. 전염병에 걸렸지만 한국어를 하지 못해 통역 서비스가 필요한 외국인들로부터 개인정보를 받아 역학조사서를 만들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정리한 2장짜리 종이를 작성해서 옆에 앉아있는, 나와는 다른 그 어렵다는 공시를 뚫고 들어오신 "진짜" 공무원에게 전달해주면 끝이었다.

물론, 영어권 국가 출신이 아닌 외국인들까지 다 맡겨서 여러 가지 골치가 아팠지만,

나는 대충 했다.

주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보며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꼼꼼함과 정확함, 신중함으로 똘똘 뭉쳐서 근무하는 게 보였지만,

나는 대충 했다.

왜냐고?

나는 저 잘난 공무원 할 생각이 1도 없었거든.

그러니 잘 보일 필요도 없었고. 생각만 해도 숨 막혀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그때 거기서 이 주사를 처음 만났다.

내 옆에 앉아서 내가 만들어낸-그 대충 작성된 종이 2장-을 건네받아 업무를 이어가는 이 주사.

이 주사라는 호칭? 명칭? 은 사실 공무원 6급인가 7급인가의 직급인데, 그 조직 내에서는 9급이든 뭐든 그냥 서로를 주사라 부르길래 나도 그렇게 불렀다. 처음에는 주사라길래 예방주사 같은 주사인줄 알고, 질병청 직원이어서 주사? 같은 애칭으로 부르나 한동안 궁금했던 건 너와 나만 아는 비밀. 쉿.


전염병이 터진 질병청에서 근무한다는 건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때부터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혐오했다. 철밥통이라는 안정적인 메리트 빼고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직업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전설로만 듣던 조선시대 공노비들이 이들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추가. 열심히 하면 그딴 식으로 한다고 욕먹고, 안 하면 안 한다고 욕먹지.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 아무것도 안 해버리게 되는. 그렇지만 철밥통에 위안 삼아 하루를, 그렇게 세월을 견뎌나가는.


물론 현대사회에 그 안정적인 게 가장 큰 메리트인 건 쌉인정! 그래서 그렇게 불나방처럼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한다만,

반대로 생각하면 공무원이 아니어도 본인의 능력을 계속 키우고, 그 능력을 갖춘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불안정한 사기업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닐 듯요.

아니면, 지금 나처럼 이렇게 떠도는 삶도 나쁘진 않은데.. 이건 나만의 생각이려나? 흠..

집이 부자여서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다. 부정은 하고 싶지 않지만, 부모님의 그 돈이 나한테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내게 배신감으로 빨갛게 물들어 있으시고, 나는 그 색을 연하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

지금도 나는 내가 벌어 내가 살고 있다.

그들은 부자지만, 나는 부자가 아니다.


아무튼, 아무래도 업무가 바로 연계되어 있었어서인지 사람에 대한 불신과 혼자에 익숙한 나조차도 이 주사에게는 눈길이 좀 갔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어서였겠지.

일단 이 주사는 책임감이 큰 사람이었다. 공무원으로 딱 적합한 사람이었달까? 본인의 몸이 부셔 저 나가고 있음에도 한 번의 웃음으로 힘을 내려하는 사람.


나는 늘 말했다. 아무리 그 잘난 국가, 국민들을 위해 일해도 그들도, 그 조직의 윗사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부담과 책임에 떡실신되면서 이 악물고 버티며 살 필요가 저얼대애! 없다고. 매일같이 말해도 그저 나를 철부지 보듯 서글프지만 따뜻한 웃음으로 달래주던 사람.

그래, 나를 캐나다로 보냈던 나의 부모님이 꿈꿨던 그들의 자식의 모습이 바로 저 이 주사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라 확신이 들었던 사람. 사실 부러웠다.


"콰쾅."


하지만 그는 미세먼지 하나 없는 어느 맑은 날 아침, 질병청 건물 11층 옥상에서 투신했다.

자살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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