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아무리 말해줘도 모르다는 거야

'Merci beaucoup'

by 빨양c



#이것은 소설 (Ep11 중 8ㅕ덟번째 이야기)
#제 브런치 북 [어떻게회사까지사랑하겠어] 보고 오면 더 좋아요! 연결되는 유니버스? ;)

*Ep8 요약:
#수없이 많아진 왕들 앞에 선 공노비들.
#철밥통을 스스로 깨부수는,
#그래도 부디 메르시보꾸




하지만 그는 미세먼지 하나 없는 어느 맑은 날 아침, 질병청 건물 11층 옥상에서 투신했다.

자살이었다.


내가 근무를 시작한 지 정확히 4개월 하고 28일째가 지났을 때, 그러니까 나의 계약이 이제 한 달 남짓 남았을 때였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자리에 앉아 멍한 눈으로 얼죽아의 선구자답게 아아를 한 모금 빨아올렸고 어젯밤 야간 당직했다던 이 주사가 어디 갔는지 내심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뭐 밝게 인사는 안 했겠지만.


"콰쾅."


절대 들어선 안되지만 한번 들어본 사람은 안다.

오육십 킬로의 살색 덩어리가 저 파란 하늘에서 수많은 최신 빌딩 유리창들의 반사되는 빛을 맞으며 딱딱한 땅바닥에 내던져지는 소리는 생각보다 잘 들린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절대 단순한 "쿵" 이 아니다.

콰콰 카ㅗ카ㅘ콰코카ㅗ카ㅗ캉쾅 정도는 된다.

듣는 순간 그냥 안다.

뭔가 잘못된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이어지는 살갗을 타고 손가락부터 몸 안쪽까지 불붙듯 타올라오는 차가운 소름까지.


그렇게 하얗게 타버린 하나의 삶이

자살이라는 붉은 꽃으로 져버렸다.


눈물이 났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눈물을 처음 흘려봤다.

늘 혼자라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항상 누군가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내 거리에 들어오는 사람은 일방적으로 밀어냈던 나였기에 이것도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지만,

어느샌가 그는 나의 눈물을 끄집어낼 정도가 되어있었나 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애써 외면했다.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통해 억지로 내 귀에 꽂히는 이야기로는

항상 밝게 웃고, 주변 동료들에게 친절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힘내자고 본인을 다독였지만,

야간 당직 동안 전염병 환자가 질병청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 겨우 받아주는 곳을 찾아서 이송조치를 하였으나,

결국 그 환자는 사망했다.단지 그 이유 때문이냐고?

당연히 아니다.

그 환자의 사망 이후, 그 보호자의 항의가 이어졌다.

보호자도 전염병에 걸린 상태였고, 당시 지침에 따라 보호자는 사망한 환자의 임종을 볼 수도, 장례를 치르도록 외출도 금지되어있었다.

밤새 땀을 뻘뻘 흘리며 전화기를 부여잡고 병원을 알아보고 도움을 요청하느라 사색이 된 이 주사는 그 현실 앞에 좌절했겠지. 이 주사 성격에 당연히 사망한 환자도, 그 순간을 보지 못했을 환자의 보호자에게도 감정이 이입됐을 것이고.

무엇보다, 공무원으로서 국민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밤새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위에서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높으신 분들이 내려주신 그 지침 앞에서 9급 주사 따위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좌절감이 가득했던 것 같다. 당연히 평소 그 흔한 노동자의 인권이란 것도 공무원에겐 적용되기 힘들어 최소한의 노동환경도 지켜지지 못했을 것이다.

공무원이 본인들의 인권을 말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국민은 내 세금으로 먹고사는 니들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로 일축한다.

공노비는 옛날에는 왕의 말만 들으면 됐겠지만,

왕이 사라진 시대, 아니 모두가 왕인 듯 살아가는 시대에서 공노비는 셀 수 없이 많은 왕들에게 욕을 먹게 된다.


여기 캐나다의 공무원은 다를까? 문득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공무원이 안정적이라 좋은 직업이라 말하지만, 난 다른 의미에서 절대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보장된 직업을 스스로 끊어내는, 스스로 철밥통을 저 11층 건물에서 내던져 깨부수는, 그렇게 생각보다 숨이 고요히 져가는 분들이 많다는 걸 기억한다. 물론 그들을 옹호하거나 미화할 마음은 없다.

다만 세상은 단순히 다음날 뉴스 기사 한 줄로 그 귀한 삶을 차갑게 정리할 테고, 사람들도 안타깝네. 하고 아무렇지 않게 잊고 마는 현실이 슬플 뿐.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아무리 말해도 모른다는 거야."


그렇게 유서 위 한 문장이 빨간 핏빛으로 남겨졌다.

유서에 이 문장이 쓰여있다는 걸 듣는 순간 나는 또 눈물이 났다.

이 주사는 늘 책임감을 갖고 알아주지도 않는 그 국가와 그 잘난 국민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생떼를 부리고, 철밥통이라는 메리트만 끌어안고 사는 공무원들이야말로 최악 극혐이라 말했을 때도, 정작 공무원인 그는 아무런 말없이 웃어주던 그런 사람.


나처럼 욕이라도 실컷 했으면, 소리라도 마음껏 내질렀으면 그런 선택을 안 했을까?

내가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볼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지금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거지 같게도 그에 대한 생각은 모조리 과거형으로 끝난다. 현재나 미래형이 결코 허락될 수 없는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자살한 사람이 지인 중 있다면,

그게 친했든, 아니든,

평생의 시간을 하얗게 다 흘려보내도 잊히지 않을 자책감이라는 핏빛 머금은 날카로운 상처가 그를 아는 모든 이의 심장에 새겨진다.

" 때문에 죽은 같다"는 핏빛 상처가.


그래서 자살은 이기적이다.

사그라진 그의 삶만 편해지고,

주변 모든 삶엔 평생의 자책과 고통을 남겨주므로.

이보다 이기적인 선택이 또 있을까.

이렇게나 자살에 냉소적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 몬트리올 노트르담 성당 맨 뒷줄 왼쪽 의자에 앉아있다.

그리고 지금 막 무릎을 꿇었고 기도를 한번 해본다.

‘대충 이렇게 하는 게 기도겠지? 역시 어색하네 망할.’

종교가 없기에 누구에게 올리는 기도인지는 모른다.

다만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는 안다.


그곳 어딘가에서라도 이 주사가 본인이 하고 싶은 말 다 하며 그 서글펐던 핏빛 웃음이 정말 맑고 파란 행복한 웃음으로 변해있기를.


어쩌면 이미 나 같은 건 기억 못 할지도 모르지만,

이 먼 곳 어딘가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본인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그리고 죄책감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이런 철없는 나에게도

그- 평안이 오길.

'Merci beaucoup'

지금이라도 이 말이 그에게 닿길 빌어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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