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라, 그럼 너는 1광년 밖에서도 눈부실 것이다(2)
난생처음 겪어 보는 느낌이었다. 삶의 모토가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 절반 이상만 하자’인 사람이었지만, 요즘은 그저 하자 덩어리가 되어간다는 감정만 드는 것이다. 늘 마음속에 ‘나는 슬로 스타터다. 끝까지 가면 다 이긴다.’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재능이 넘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간단하다. 꾸준하진 않더라도 차곡차곡 경험을 쌓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어느 순간 어느 형태로 번뜩이는 영감이 된다. 또는 경험들이 새롭게 조합되어 창의력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경험의 기반이 되어주곤 했다.
그런데 내가 맡은 업무는 조금 달랐다. 모두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경험을 했다. 새로운 문제를 풀어낸다기보다 조금씩 변형된 문제를 푸는 느낌이었다. 어제는 A, 오늘은 A`, 내일은 A``, 글피는 A``` 조금 다른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직면한 문제라곤 A를 어떻게 푸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변형 문제를 지속해서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본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수박 겉핥기로 따라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과의 격차를 실감했다. 업무와 전공이 달랐던 것이 큰 변수였다. 주변 동기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커지니 실수가 잦아졌다. 원체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라는 것은 이전부터 깨달을 기회가 많았었지만, 처음 겪어보는 불안감에 기본적인 실수도 잦아졌다. 이젠 ‘신입사원이라서 저지르는 몰라서 하지 못하는 상황’인지 ‘알면서도 저질러버린 실수인지’ 구분이 안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사가 어느 아침에 읊조리는 말에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
“후... 발치하려다가 참았습니다.”
갑자기 회사에서 이를 뽑아버린다고? 보통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과 달랐다. 뿅망치로 정신이 번뜩 들게 하는 게 아니라, 쇠망치로 후두부를 가격당해 숨을 거두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때 상사가 했던 말은 발치가 아니라 발신 취소의 발취였다. 하지만 이때가 기점이 되었다. 상사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아마 자신감이 떨어지다 보니 더 많은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와 눈이 마주칠 때면 얼굴이 따가웠고 왠지 모를 한숨에도 다리가 휘청거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언젠가 돌아봤을 때 짧을 시간일 수 있는 입사 후 6개월이 되기까지의 하루는 길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다음 날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엊그제보단 어제의 시간이 더뎠고, 어제보다 오늘의 시간이 더뎠다. 오늘보다 더디고 느리게 갈 시간을 버티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지 못했던 시간을 지나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서야 하루를 버텨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퇴근길 밤하늘의 별은 유난히도 예뻤다. 터벅터벅 걷다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다. 달무리가 지는 날이 아쉬웠다. 다음 날의 비가 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산은 아무리 올려다봐야 지금 갇혀있는 듯한 삶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저 창살을 여과 없이 드러낼 뿐이었다. 그래서 밝게 빛나는 별이 좋았다.
언젠가 자기 일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의 눈빛을 본 적이 있다. 어려울 수 있는 전공에 대한 내용을 풀어 설명해주는 자리였다. 한마디로 강의 시간. 익숙하지 않은 학문이었지만, 시시각각 연사의 말에 빠져들었다. 특히 그 눈빛이 장관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면 보고 있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에 모든 신경을 빼앗겨 시각 외 모든 신경이 파업을 해버렸다. 청력을 잃은 상태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분명히 설득력이 있었다. 영상으로 담고 싶단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이 생동감을 놓치기엔 한순간도 아쉬웠다. 이내 눈에 담아야겠단 욕심으로 가득 차버렸으니 말이다.
난생처음 겪었던 애정이 담긴 눈빛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었고 설명해주고 싶었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함께 교육업을 하고 있던 재희였다. 강의가 끝나고 한 시간 뒤 재희와의 회의를 잡았다. 그리고 연사의 교수법에 대한 분석을 핑계 삼아 한없이 반짝이던 눈빛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헤아릴 수 없는 그 위대함에 대해 한참을 떠들어 댔다. 이야기를 마칠 때쯤 재희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가끔 보던, 조금은 음흉하지만, 긍정적인 표정이었다.
“우리 회의할 때 네 눈빛이 그래.”
“응?”
“너 일할 때 그런 눈빛이야. 늘 그래. 재밌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별것 아닌 것에 흥분해서 열을 올릴 때, 강연이 잘 풀려갈 때. 오늘 네가 어떤 눈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설명만 들었을 땐 내가 자주 보는 눈빛인 것 같은데?”
살면서 그만큼 거울을 자주 본 적이 있을까. ‘혹시 지금 눈빛은 어떨까. 그만큼 빛나는 걸까.’ 회의를 하다 말고 수시로 거울을 보는 나를 보고선 재희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계속 몰입을 깨면 그게 보일 리가 있냐? 텐션 좀 낮추고 다시 시작하자.”
지금은 빛을 잃은 것일까. 아니 잃어가는 걸까. 그래서 하늘의 반짝이는 빛을 보고 언젠가를 그렸던 걸까. 아니다. 분명 입사를 하고서도 빛나던 시기가 있었다. 언젠가를 그릴 것 없이 지금 순간이 빛나고 있었고 빛남을 느낄 때가 분명 있었다. 입사한 후 처음 맞닥뜨린 신입 연수 기간이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신에 대한 의심이 없을 때였다. 실수란 당연하였고 주어진 미션을 헤쳐나가는 것 또한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늘 해오던 것이었고 어찌 보면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경험을 쌓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던 시간이었다. 모든 것을 떠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회사라는 곳에서 이렇게 즐겁게 연수라는 것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그리고 절대 돌아오지 않는 딱 한 번 있을 만한 시간이라는 것. 주변을 신경 쓰기보단 오늘이라는 시간에 집중했다. 평소에는 소식하며 탄수화물을 줄여놓은 것도 잊은 채 삼시 세끼 고봉밥을 먹어댔다. 3주라는 시간 동안 7kg이 자연스레 몸에서 연소하였다. 잠을 줄이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잠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길게 쓰는 느낌이었으니 주변에서 몸을 챙기며 하라는 말이 귀에 담기지 않았다. 사무적이거나 실무적인 능력보단 열정이 가장 큰 덕목인 신입사원 연수 때는 걸음걸이에도 기품이 있었다. 분명히 빛나던 시간이다. 기억의 조각이 떠올라 맞춰갈수록 빛은 밝기를 더했고, 나는 과거에서 쫓아온 빛을 쫓았다. 정신없이 빛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추억으로 달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