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쁨문고 5시간전

직관을 가는 건 관성 때문일까요?

새로운 취미를 소개합니다. 러닝!

안녕하세요 주니님. 이번 편지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꿈이 무엇이냐는 말을 엄청 오랜만에 들었거든요. 우선 답을 해드리자면, 어느 시점부터는 연단에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 가진 인사라는 직무의 전문가로서도 좋지만, 사람들에게 크게 동기를 불러일으켜 줄 수 있는 사람 말이에요. 사실 답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만, 이를 위해 실천하거나 노력하고 있는 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크게 다를 바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꽤 무겁게 들리는 질문이라 일상을 돌아보며 추가적인 답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답장하는 지금은 평소 같으면 저울 위로 올라가기 싫어질 만한 추석을 보낸 직후입니다. 다행인지 몰라도 이번엔 몸무게를 재는 게 두렵지 않았습니다. 추석 연휴 중 3일간 야구장을 다녀왔거든요. 체감온도가 거의 38도까지 올라가는 낮 경기를 다녀왔기 때문일까요. 응원을 하면서 방방 뛰어다니지는 못했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절여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꽤 많은 물을 마셨는데도 화장실을 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체감되더라고요. 3연전의 직관을 하며 너무 무리한 탓에 컨디션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추석을 보냈는데, 왜 이렇게 진심을 다했나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떤 이유도 없이 열심히 했던 것들이 보이곤 합니다. 관성 때문에 멈출 수 없는 것도 있고, 때론 오랜 기간 쌓아온 시간이 아쉬워서 계속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러닝이었습니다. 어릴 땐 꽤 살집이 있었기 때문에 다이어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도 매 순간 살을 빼기 위한 시간을 보내곤 있지만, 그땐 좀 절실했던 것 같아요. 당연히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점도 주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보다도 더 크게 작용하던 건 눈앞의 목표와 건강이었습니다.


 우선 무릎이 아팠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체중 때문인지 조금만 오래 걸어도 무릎에 통증이 있었어요. 여러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체중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체중 증가의 또 다른 문제점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확실히 체중이 늘수록 잠이 따라 늘었습니다. 하루 십수 시간을 자리에 앉아 머리에 새로운 정보를 이겨 넣어야 하는 시기이니만큼 우선 깨어있어야 했거든요.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소위 똑똑하다는 친구들보단 집중력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 앉아서라도 공부의 절대량을 늘려야 했습니다.


 여하튼 제가 선택한 방법은 줄넘기와 달리기였습니다. 우선 줄넘기 1,000개를 목표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금방 끝날 것 같지만, 1,000개는 꽤 많은 숫자입니다. 개수가 늘어날수록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져서 걸리는 수가 많아졌고요. 그래서 줄이 발에 걸릴 때마다 주차장을 한 바퀴씩 뛰었습니다. 첫 번째 걸렸을 땐 한 바퀴. 두 번째 걸렸을 땐 세(1+2) 바퀴. 세 번째 걸렸을 땐 여섯(1+2+3) 바퀴. 세 번째 걸렸을 때 벌써 총 열 바퀴를 뛴 셈이죠. 네 번째, 다섯 번째…. 여덟 번째 걸렸을 땐 총 뛴 바퀴 수보다 현재 서른여섯 바퀴를 뛰는 중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다이어트에 성공했습니다. 매점을 끊고 먹는 양을 줄이고 매일 달렸거든요.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0킬로 이상이 빠졌습니다. 주변에서 인지할 정도로 외형도 바뀌었습니다. 자신감도 생기고 잠도 줄었고요. 역시 달리기의 힘이 컸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해둔 규칙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다 뛰어냈거든요. 저런 무식한 방법을 멈췄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줄넘기 1,000개를 해도 3번 이내로 걸릴 정도로 체력과 집중력이 좋아졌었거든요. 더 이상 이전과 같이 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관성으로 짬을 내어 달리기를 해왔습니다. 살을 뺀다는 목표가 있을 땐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이것도 못 뛴다면, 앞으로 어떻게 힘든 세상을 헤쳐갈 수 있겠어. 낙오자가 되기 싫으면 멈추지 않고, 다리를 굴려. 오늘을 이겨내면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어.’ 돌아보니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사 같네요. 일본 고교야구의 우승을 위해 훈련하는 주인공이 속으로 내뱉는 그런 대사 말이에요. 처음엔 이런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후엔 쉬지 않고 멀리 뛸 수 있다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스스로 기록을 경신하는 즐거움도 있었고요.


 혹시 제가 육군사관학교를 지망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었나요? 저는 당시 시험을 봤던 학생 중 오래달리기 종목에서 1등을 했었습니다. 기록을 본다면 군인일 때나 지금이 더 좋았겠지만, 처음으로 달리기에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훈련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입학하게 된다면 더 엄청난 사람이 많을 텐데, 여기서 하나로도 기록을 세울 수 없다면 너무 아쉬울 거라 여기고 뛰었습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계속 스스로를 돌아보는 듯한데, 어린 저는 꽤 목표 의식이 강했던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도 힘든 세상을 헤쳐가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말이에요.


 최근에도 가끔은 러닝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리지 않았던 취미 중 하나입니다. 역시나 여전히 하나의 취미를 오랫동안 지속하는 힘은 약하기 때문에 매일 꾸준히는 아니지만,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신 달리기에는 뚜렷한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기관지 때문입니다. 달릴 때면 숨이 가빠지고 입으로 많은 호흡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럼, 호흡 때문에 건조해진 기관지는 이내 감기로 연결이 되어버리는 거죠. 솔직히 달리기는 다리를 이어 움직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따로 배우거나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긴 합니다. 그래도 매번 감기로 연결되니 어느 이상 체력이 붙을 때쯤이면 앓아누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할 수는 없죠. 그래서 잘 뛰는 친구들에게 자문했습니다.


 “나 매번 감기에 걸려서 뛰질 못해. 방법이 없을까?”

 “너 거리를 정하고 그거에 죽어라 뛰는 편이지?”

 “어떻게 알았어?”

 “음…. 이번엔 시간을 정하고 뛰어봐”

 “응? 그럼 너무 힘든데? 그 시간 동안 답답해서 어떻게 뛰어.”

 “오래 달리고 꾸준히 달려보고 싶다며. 코로 숨을 쉴 수 있고, 앞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뛰면서 점점 페이스를 올리면 된다니깐?”

 “얼마나 뛰어야 하는데?”

 “일단 40분부터 뛰어서 50분에서 1시간 정도 뛸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 봐”


 주로 달리기를 할 때면 5~6킬로 미터를 설정하고 최대한 달릴 수 있는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 뛰었습니다. 어떻게 친구는 듣자마자 제가 달리던 패턴을 명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거리주’가 아닌 ‘시간주’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일정 거리를 목표로 두는 게 아닌 정해진 시간 동안 뛰는 달리기인 거죠.


 혹시 주니님은 케이던스라는 개념을 아세요? 일 분 동안 발 구름 횟수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케이던스가 올라가면 무릎에 무리가 덜 가고 부상 방지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모르겠고, 빠르게 다리를 구르는 것보다 크게 크게 뛰는 게 시원하고 좋아!’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바꿔야 했습니다. 물론 친구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젠 180 BPM에 맞춰 뛰고 있습니다. 1분에 180회 발 구름을 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요. 그래서 이어폰에다가는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45분까지 시간을 늘렸어요. 놀랍게도 벌써 8킬로 미터까지 거리도 늘어났습니다. 1킬로미터당 달리는 시간은 조금 늘려졌지만, 더 오래 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매번 달리기가 끝나면 다리의 통증과 목의 건조함이 당연한 증상이었는데, 그런 거 하나 없이 개운한 기분만 남더라고요. 그렇게 십수 년 해오던 달리기의 새로운 면을 느끼는 중입니다.

 



 직관을 갈 때면 매번 새로운 루틴을 짜는 주제에 십수 년간 해오던 달리기 습관을 고치는 데는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까요. 예전처럼 실패하면 나락에 떨어질 것 같던 절박함이 사라지고 이제는 순전히 달리기에만 집중하고 달릴 수 있어서이려나요. 아니면 아무나 모두가 할 수 있는 달린다는 행위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이 없어서였을까요. 고민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고칠 생각을 안 해봤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 같습니다.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직관을 가는 것도 관성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수만 명이 대기하고 있는 티케팅을 이겨내고 자리를 예매하고선, 유니폼과 응원 도구를 구매하고 어떤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꽤 복잡하고 많은 과정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과정이 관성에 절여진 모습 같기도 합니다. 제 입장에선 야구장에서 얻을 수 있는 도파민은 러닝과 견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번 추석 기간 야구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사실 이번 편지엔 오랜만에 만남을 담아볼까 했지만, 우선 주니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말을 돌려보았습니다. 그 전에 러닝이라는 취미와 새롭게 알게 된 부분까지 전해주고 싶었거든요. 아참, 저는 10월 말에 처음으로 10km 마라톤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걸 멈추지 않는 게 아이덴티티가 되는 느낌이에요. 여하튼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는 또 차차 들려드릴 테니, 다음 편지에서는 야구장에서 만남에 대한 주니님의 이야기를 먼저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매일 승리를 이어갈 자이언츠를 위하여.


 - 괜히 텐션이 오르고 있는 라이트한 팬 드리킴 드림 -



P.S 편지를 다 쓰고 되돌아보니 서두에 말씀드렸던 고민에 답을 찾은 듯합니다. 다양한 취미를 통해 여러 분야의 경험을 쌓고, 현재의 일에 충실한 모습이 꿈을 향한 제 노력이란 걸요. 어느 순간부터는 이를 의식하지 못한 채 이를 관성처럼 해나가고 있었나 봅니다. 덕분에 다시금 목표와 목적성을 상기시켜 주어 감사드립니다.


[이전 편지]

https://brunch.co.kr/@kc2495/204


이전 15화 오늘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