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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Jun 20. 2023

Chapter 8. "쟤 다니면 저 안 다녀요!"

<학원강사가 바라본 알쏭달쏭 아이들> 

“아니, 쟤가 먼저!” 수업 중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다.     

 

내 수업은 5평 남짓한 강의실에서 이루어진다. 커다란 원형 테이블을 두고, 90분 간 5명 내외의 아이들이 둘러앉아 당일 수업 주제 관련 토론을 하고 글을 쓴다. 직접적 의사소통을 전제로 하는 수업이다보니 소소한 논박에서부터 격렬한 논쟁까지, 하루라도 부딪히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없다. 아이들 속에 숨어있는 한 줄기 이성을 밧줄 삼아, 그들의 분노를 칭칭 동여매 가라앉혀주는 것 또한 교사의 막중한 임무다.      


이 과정에서 의외로 힘든 것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다. 다툼이라는 행위 자체에는 남녀노소에 따른 차이란 없지만 중학생보다 유치원생에 더 가까운 아이들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 시기 아이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모든 사고의 중심에는 ‘네’가 아닌 ‘내’가 있다.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단정한다. 자신이 그렇다고 여기는 순간, 진실이 아닌 것도 진실로 굳건히 믿어버린다. 그렇기에 해당 연령대의 아이들에게서는 진심 어린 ‘거짓말’이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솔직함’이라는 무기를 손에 쥔다. 중요한 점은 이 무기가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이라는 것이다.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아이들은 주저함이 없다. 말에 거름망이 없다. 걸러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쟤는 왜 저렇게 이상한지’,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지’,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마음 속 의문들을 감추지 않고 솔직히 표현한다. 계곡물 속 각기 다르게 반짝이는 자갈들처럼 아이들의 사고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지라, 저마다의 솔직함이 맞부딪혀 파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왜 A한테는 사탕을 줬으면서 나한테는 안 줬지?’, ‘어떻게 수업 중에 이씨-라는 말을 할 수가 있지?’, ‘세상에, 지금 신발 밑창을 만지작거린 손을 입에 넣은 거야?’ 퐁퐁 피어오르는 우연한 의문들을 연기처럼 흘려보내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마음을 좀처럼 꾸며내지 못한다. 내뱉는 순간 이것들은 소란의 불씨가 된다. 어른의 관점에서는 별 거 아닐 수 있는 이 말들이, 표현들이, 표정들이, 아이들에게 백두산 폭발급의 대사건이자, 때때로 수년 간 쌓아온 가치관조차도 흔들어대는 격랑이다. 오죽하면 “쟤 있으면 저는 여기 안 다닐래요.”라는 하소연까지 나올 정도이며, 심해지면 부모님들끼리의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이다. 서로 다른 의견끼리 날카롭게 맞부딪혀가며,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견고한 알 껍질에 금을 내기 시작한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타인의 의견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배려와 공감의 시작이다. 말로 공격하고, 공격당하고, 관계의 균열과 봉합을 반복해가며 아이들은 상처 입거나 상처 입히지 않을 방법들을 깨달아간다. 날카롭게 벼린 말의 끝을 뭉툭하게 다듬을 수 있는 방법들. 수없이 서로의 가시에 찔려가면서, 쭉 더불어 존재할 수 있는 적정 거리를 찾아내는 고슴도치들처럼 말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교토식 화법’이란 것이 소소하게 화제였다. 타인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말을 부드럽게,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완곡어법' 중 하나로, 교토 사람들이 이러한 완곡 표현이 과한 나머지 '앞과 뒤가 다르다'며 가볍게 조롱하는 단어이다. 교토 사람들은 실제 속마음인 '혼네(本音)'를 배려 섞인 태도, 즉 '다테마에(建前)'으로 감추어 표현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느 식당에서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잘 먹었습니다.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주인장이 달려 나와 으레 "찻물에 밥을 말아 드릴까요?" 혹은 "차 한 잔 더 하시겠어요?"라고 묻는데, 이것은 형식상 하는 말이다. '혼네'는 식사를 다 하셨으니 슬슬 가셔도 된다는 것이다. 주인장의 속마음을 이해 못하고 손님이 "그럴까요?"라고 답하며 자리에 앉는다면 주인장은 하염없이 차만 내어준다. 속으로는 지지리도 눈치가 없는 손님을 비난하며 제발 좀 가라고 기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교토식 화법’이 조롱받거나 우스개소리로 소비될 만한 문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는 ‘존중’의 개념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혼네’가 어찌하든 상대방에게는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배려를, 단순히 겉과 속이 다르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섣부른 편견이다.       


완곡어법은 불필요한 다툼을 막아주는 쿠션이다. 이 완곡어법의 최상급 사용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외교 언어다. 외교관들은 직설 화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싸웠다’는 표현은 ‘서로 이견이 있음을 확인했다’로, ‘크게 싸웠다’는 말은 ‘합의할 것이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로 표현한다고 한다. ‘말이 통했다’고 해도 ‘상대방의 입장에 동의했다’ 정도로 마무리한다. 정체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나 개인적 감정이 드러나는 언어는 자칫 분쟁이나 불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만한 관계의 유지와 상호 이익을 위한 합의는 ‘배려를 기반에 둔 소통’으로부터 시작됨을 전제로 한 전략이다.      


조상들도 예로부터 ‘존중하는 말’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이들이 ‘진정한 소통의 힘은 배려에 있다’는 진리를 단단히 체득하기를 바란다. 또래 친구와의 충돌이 단순한 ‘대립’과 ‘반목’의 결과에 그치기보다, 내뱉는 말들에 푹신하고 따스한 솜을 가득 붙여줄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소통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 ‘나와 세상 간 관계’는 무너진다. 수 번 생각하고 걸러내는, 표현의 ‘지극함’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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